편지 #2

in #mexico6 months ago (edited)

2024.10.6(일), BCS

그리운 어머니,

일주일에 한번 쉬는 일요일은 보통 늦게까지 잠을 자는데, 오늘도 결국 12시가 다 되어 일어났네요. 할머니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외가쪽 어른들이 다 잠이 많으신데, 저에게도 그런 유전자가 제대로 심겨있나봐요. 어머니 손자도 잠이 많아요. 얼마 전에는 밤 9시에 자서 다음날 오후 2시가 넘어서 일어났다고 하네요. 우리집안 잠꾸러기 유전자가 저를 통해 큰아이에게도 확실히 들어간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잠자는 시간이 너무 좋은데, 소중한 일요일의 절반이 이미 사라졌다는게 조금 안타깝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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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는 초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하늘에 아름답게 떠있는 초승달과 샛별을 봤어요. 가지런히 잘려 나온 아기의 손톱같은 초승달과 강렬한 빛을 반사하는 샛별이 정말 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가끔은 여기서 토끼와 여우, 그리고 다람쥐들이 내 차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는 박쥐들이 미친듯이 벌레를 쫒아 비행을 하기도 해요. 어찌나 정신없이 날라다니고 일반 성인 시선높이만큼 낮게 다녀서 박쥐들이 많이 보이면 몸을 살짝 웅크린 채 손을 얼굴 근처에 가져다 대고 다녀야 할 정도에요. 또 얼마전에는 이 동네를 지키는 개들이 짧고 두꺼운 홋줄을 보며 매우 흥분을 하서 물고 던지고 있었어요.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해서 노나보다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려다가, 개들이 너무 심하게 흥분을 하고 있어서 왜 그런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거기에는 커다란 방울뱀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어요. 저도 너무도 놀라서 그 다음부터는 어두운 곳을 지날 때면 항상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바닥에 혹시 뱀이 없나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이 곳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오지라 일반사람들이 쉽게 경험하기 힘든 정말 특이한 일들을 많이 겪어요.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벌써 몇 년 째 이런 곳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적응도 됐고 오히려 이 경험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게 느껴져요. 벌레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비명을 지르는 우리집 아이들이 이곳에 산다면 아마 이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럽겠죠?
오랜만에 아이들이 보고 싶네요.

한국이 이제 월요일이 시작하네요.
오늘 하루도 할머니와 함께 화이팅하세요.

#mexico #kr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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