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않고, 버렸다

in #krsuccess9 days ago (edited)

책 두 권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책들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으면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책을 ‘버린’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보낸 적은 있어도 버린 적은 없었다.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은 동네 헌책방에 가져다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책을 보낼 때는 노끈으로 묶어 재활용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달랐다. 책들 사이에 꽂혀 있는 그 두 권의 책이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번져 주변의 책들을 오염시킬 것 같은 느낌에 더는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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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개인의 못된 습성이 알려지면 그 작업이 아무리 좋더라도 굳이 감상(소비) 하지 않게 된다. 인품도 훌륭하고 작업도 좋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역시, 드물긴 하지만,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위대한 작업을 남기는 ‘못된’ 창작자들도 있다.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창작자 개인과 ‘작품’을 분리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죄송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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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도. 오늘 버린 두 권의 책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번지는 곰팡이를 닦아내듯 개운하게, 산뜻하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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