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師心) 없이

in #krsuccess5 hours ago

체호프의 단편 <문학 교사>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진지한 태도로 늘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만 한다.

“예, 멋진 날씨로군요. 지금이 5월이니까 곧 진짜 여름이 올 겁니다. 여름은 겨울과 다르지요. 겨울에는 난로를 때야 하지만, 여름에는 난로가 없어도 따뜻하답니다.”

아마도 체호프는 이 인물을 통해 진부한 이론을 펴는 소위 ‘지식인’들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심사하는 자리에 갈 때마다 꼭 이런 심사위원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디자인을 잘하려면 디자인을 잘해야 합니다.”라는 식을 말을 사뭇 엄숙하게, 이런 핵심을 찌르는 말은 아무나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심(師心)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곤 한다.

*사심(師心): ‘스승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스승으로 삼는 것. 자신의 주장만을 펼치려고 하는 것.

하지만 ‘이뽈리뜨 이뽈리띠치’는 그런 ‘지식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그는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다. 뻔한 말을 시작해도 누구를 가르치려 들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인기는 없지만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가 갑자기 죽었을 때 (소설을 읽지 못한 분에게 죄송) 안타깝고 슬펐다.

요즘에는 심사 자리보다는 소셜 미디어에서 사심(師心) 넘치는 캐릭터들을 가끔 본다. ‘이뽈리뜨 이뽈리띠치’처럼 사랑스럽다면 좋았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인물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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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어도, 앞으로 ‘이뽈리뜨 이뽈리띠치’처럼 사심(師心) 없이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2024년은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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