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질
유튜브에 오랜만에 ‘BEHEMOTH 베헤모스’가 떴다. 좋아하는 팀이라 정신없이 봤다. 폴란드 Poland 메탈 밴드다. 강력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폴란드의 고딕 메탈 밴드 ‘시라 Sirrah’도 무척 좋아한다. 이 지역의 밴드는 뭐랄까. 특유의 서정적인 어두움이 마치 한국과 유사한, 한의 정서. 같은 것이 음악 깊숙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요즘 핀란드 Finland 걸 그룹(이라기보다 우울질의 인디 밴드 감성이 충만한 자매 듀오) ‘maustetytöt 마우스테티퇴트’에 푹 빠져 있다. 매일 한 번씩 듣는다. 폴란드. 핀란드. 이름에 '란드(land)'가 붙은 지역의 음악들은 뭔가 다른 건지. 그냥 우연히 알게 된 몇 팀에 끌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들 음악에 끌리는 이유는 역시. 단연. ‘우울질’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각본/감독)’의 핀란드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 Kuolleet lehdet / Fallen Leaves>에 마우스테티퇴트.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제7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고 한다.
2025년이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가 될 듯하다. 노동자들의 힘들고 우울한 삶을 사실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와 비슷하지만, 블랙코미디 형식이라 보기에는 훨씬 편하다.
영화 속에는 반복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뉴스가 아날로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등장하는 소품(옛날 영화 포스터 등)이나 배경이 요즘 시대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뉴스가 ‘바로 지금의 현실’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름답고 슬프고 희망적이며 절망적이고 가벼우면서도 무겁다.
영화 중간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남자 주인공이 간 술집에서 ‘마우스테티퇴트’가 공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 듣는 노래에 바로 꽂혀 버린 경험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바로 ‘마우스테티퇴트’에 빠져들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매일 이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있다. 가사도 너무 좋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상황과도 잘 맞았다.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이 교차되면서 이 밴드의 가사가 자막으로 나온다. 특히 마지막 가사가 좋았다. ‘난 슬픔 속에서 태어나 환멸에 갇혀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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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엔 곰팡이 핀 커피 바닥엔 더러운 접시들
비가 창문을 씻어 주니 직접 닦을 필요 없지
그 무엇도 내가 떠나는 걸 막을 수 없어
하지만 두 발은 시멘트에 굳은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짐이 날 짓누르지
문턱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이러다 죽기 전까지 못 나갈 것 같아
난 이곳에 영영 갇힌 신세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어 마침내 수명이 끝나면 넌 날 끝도 없이 파묻겠지
난 슬픔 속에서 태어나 환멸에 갇혀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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