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너와 만난 자리에서 - 0. 프롤로그
1. 독백
- 음성 메세지 001
어렵네.
그래도 네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하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래. 오랜 시간이 흘렀지. 그래, 오랜 시간이 흘렀어. 비가 오던 때였나? 갑자기 내가 너에게 물어봤잖아. 이제 우리가 못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라고. 넌 농담하지 말라 그랬는데.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는데 널 보니까
걱정하는 눈빛이었어.
이런 날을 예감했던 것인지도 몰라. 여자의 예감은 빠르다고 하잖아? 하찮은 이별 노래나 들으면서 우울한 앞날을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암튼 네 눈빛을 보니까
쉽게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웠어.
뭐랄까... 기대?
네 기대를 꺾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먼저 떠올랐으니까.
...
...
쿤! 쿤, 오, 세상에. 지금 이럴때야? 빨리 준비해!
금방 갈께!
내 목소리만 녹음되길 원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네. 케인 알지? 아니, 모르던가? 아무튼 말야
이제 가야해. 열쇠는 아마 어딘가 있겠지. 넌 늘 긍정적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긍정적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이 메세지를 들을 때쯤이면 난 어디 있을까? 아마 고대 왕들의 계곡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어때? 생각해봐.
너의 그 좋은 예감으로 맞춰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쉬운 이야기는 아니었어. 알지?
쿤!
간다, 가! 안녕 내 사랑 아.......
치.................
2. 이방인
지독하네. 옷을 털면서 헤드라이트를 껐다. 모닷불이 일렁이며 방 안을 밝혔다. 온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자국들이 가득했다. 얼마나 심하게 긁었는지 빨간 피가 길게, 길게 그어져 있었다. 션은 침낭을 펴고 있었다.
"이런데서 자도 되는거야?"
션은 묵묵하게 자기 일을 했다. 침낭을 펴고, 배낭을 풀더니 태양신 상을 붙잡고 기도를 했다. 말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녀석이었군.
삼 일째. 지금은 폐쇄된 수도원을 탐색 중이었다. 의뢰인이 이곳에 단서가 있을 것이라고 보냈는데 사실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긴 했다.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은 곳인데다 이단 시비가 심하게 붙어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몰살 당했다고 한다. 벽에 저 흔적들이 그 증거랄까? 배낭을 풀고 침낭을 꺼냈다.
"큰일이네."
션이 혼잣말을 했다. 혼잣말도 하는구나 싶어 보는데 녀석 앞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정말 큰일이네."
여자랑 대화하는건가? 그런데 션 목소리 외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뭐야, 누구야? 누구랑 말하는 거야?"
여자가 돌아봤다. 그리고 션이 쓰러졌다. 여자는 백옥의 피부를 가진 소녀였다. 그 하얀 피부에 검은 눈동자가 너무 짙어서 기이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큰일이네."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말에 놀랐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녀는 아름다웠는데 기이했다. 그 아이의 입술에 점점 미소가 지어졌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아이였다.
"정말 큰일이네."
소녀가 입을 벌렸다. 생각보다 크고 큰 입이었다. 크고 크고 큰 입이 점점 내게 다가왔다. 점점...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