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면서 깨달은 규칙(씁쓸...)

in #kr7 years ago

갈매기에게 새우깡 주기

강릉에 도착한지 2일째다. 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아니, 바다를 내 온 몸으로 느끼려고 발버둥친다. 나는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캔맥주 두 캔을 훌쩍훌쩍 마신다. 캔 맥주에 들어있는 알코올은 바다와 나를 이어준다. 거친 파도가 나를 덮친다. 거친 파도는 내 몸 속에 숨어있는 불순물을 갖고 멀리 도망친다. 아이고, 시원하다. 평화의 피가 내 몸 속에 흐른다. 내 몸 속에 흐르는 알코올과 평화의 피가 나를 안정시킨다. 열이 빠져나간다. 춥다. 모래를 털고 숙소를 향해 걷는다.

숙소를 향해 걷는데 갈매기 50마리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들은 바다 넘어 있는 외딴곳을 고뇌에 잠긴 채 바라보고 있다. 꼭 죽은 친구를 애도하고 있는거 같았다. 누구는 친구의 죽음에 분노하고, 누구는 친구의 죽음을 어쩔 수 없노라 외치며 담담히 받아들이는거 같다. 나는 갈매기들이 느끼는 슬픔을 사진으로 담으려다 포기한다. 주머니 안에서 손을 10초 이상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손이 시리다.

숙소를 향해 통통 걷는다. 걸어 가면서 후회한다. '사진 찍을껄.' '어떻게 손을 내기가 귀찮아서 그 멋진 장면을 안 찍을 수 있지?' '무기력한 자식.' '아니야, 나는 그 멋진 순간을 마음 속으로 담아뒀어.' '이 정도면 충분해. 아니야,' '충분하지 않아. 나는 뒤돌아선다. 갈매기 떼를 향해 달려간다.'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1200원 새우깡을 들고.

새우깡을 움켜쥐고 갈매기 떼에게 살금살금 다가가지만, 이들은 내 진심을 외면한다. 내가 다섯 발자국 다가가면, 이들은 열 발자국 뒤로 도망간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너희들을 잡아 먹을 생각이 없어.' '너희들에게 새우깡좀 나눠주려고 그래.' 아무리 외쳐봐도 갈매기는 내 진심을 들어주지 않는다. 결국 나는 다섯 발자국 뒤떨어진 채 새우깡 한 움큼을 이들을 향해 던졌다. 어라? 어떤 갈매기도 새우깡을 먹으러 오지 않는다.새우깡이 본인들 무덤인 줄 알았나보다. 나는 뒷걸음질 친다. 내 뒷걸음질을 보며 갈매기 5-6마리가 후다닥 날아와 새우깡을 먹는다. 눈알을 굴리며 새우깡을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도 행복했다.

나는 새우깡을 신나게 뿌렸다. 야구선수 출신 답게 힘차게 새우깡을 뿌렸다. 갈매기 떼도 내 진심을 느꼈는지 50마리 모두가 눈치 없이 새우깡을 향해 덤벼든다. 몇몇 갈매기가 경쟁을 뚫고 새우깡 먹기에 성공한다. 마치 결승전 승부차기를 보는거 같다.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올해 들어서 가장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너희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스친다. 이것이 바로 봉사의 즐거움일까? 신이 난다. 사람들에게 해주지 못한 봉사활동. 갈매기들에게 실컷 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봉사도 계속하면 누가 중독된다고 말하지 않던가. 나는 슈퍼로 달려가서 큼지막한 3000원 새우깡을 사왔다. 큼지막한 새우깡 봉투를 본 갈매기들이 노래 부른다. 나는 노래 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신이 나서 새우깡을 뿌리는데, 내 눈이 이상한 현상을 포착했다. 내가 뿌린 새우깡을 향해 50마리 모두가 덤벼드는데, 정작 새우깡을 먹는 갈매기는 5마리 남짓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갈매기는 새우깡을 먹지 못했고, 움직임이 민첩한 소수의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약해보이는 갈매기를 향해 새우깡을 뿌려도, 민첩한 소수의 갈매기들이 잽싸게 새우깡을 낚아챈다. 아니, 약탈한다.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난다. 나는 갈매기 50마리 모두에게 새우깡을 나눠준 줄 알았다. 50마리 모두에게 행복을 나눠준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나는 5마리에게만 새우깡을 잔뜩 줬고, 45마리 갈매기는 소수가 새우깡을 독차지하는 것을 바라보며 질투하고 있었다. 갈매기 공동체에게 행복을 주려고 했던 행위가 이들에게 분열과 갈등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나는 욕심 많은 갈매기 5마리를 증오했다. 욕심쟁이 녀석들은 주변 친구가 굶주리는데도 양보할 생각을 안한다. 오히려 새우깡을 못 먹는 친구들을 놀린다. 도대체 얼마나 더 먹어야 욕심쟁이 녀석들은 약자에게 양보할까. 나는 새우깡 뿌리는 것을 멈추고 욕심쟁이 녀석들을 무섭게 쏘아봤다. 녀석들은 내 분노를 의아해한다. 녀석들은 말한다. 우리는 공정한 상황에서 경쟁을 통해 새우깡을 먹었을 뿐이다. '새우깡 먹기'는 빨리 먹는 놈이 장땡인 규칙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 규칙을 지켰고, 경쟁에서 이겼을 뿐이다.

어안 벙벙하다. 그리고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약한 갈매기들도 충분히 새우깡을 먹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 끝에 방법을 찾았다. 나는 모래사장을 깡충 깡충 뛰어다니면서 새우깡을 멀리 멀리 뿌렸다. 한번 새우깡을 먹으러 날아가면 최소한 3번 정도는 새우깡을 먹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결국 갈매기는 흩어졌다. 경쟁도 사라졌다. 50마리 갈매기 모두는 새우깡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니, 온몸에 땀이 맺혔다. 불쾌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괜찮다. 조금이라도 느린, 약한 갈매기가 새우깡을 먹을 수 있는 보습을 보니. '너희들도 오늘 새우깡을 먹어야, 내일 강한 녀석들이랑 다시 경쟁을 할 수 있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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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스팀의 지금 상황이랑 비슷하군요... 하지만 여러 뉴비분들을 배려해주시는 고래분들도 계시니... 저처럼 약육강식은 아닐꺼라 생각해 봅니다.

맞습니다!! 뉴비를 많이 배려해주시는 거 같아요!

사람이나 갈매기나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네요ㅎ

맞아요 ㅠㅠ 씁쓸함을 많이 느꼈어요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모래사장을 깡총깡총 뛰어다니다니.. 덕분에 45마리의 갈매기는 질투심도 속상함도 없이 행복했겠어요~^^

Nice post! I will follow you from now on.

야구선수 하셨어요? 저도 야구 엄청 좋아하는데...^^
새우깡 그냥 한꺼번에 뿌려야지 조금씩 먹는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꺼번에 왕창 뿌려보지는 않았네요 ㅎㅎ 네 ㅠ 저 야구 7년정도 했엇어요 ㅎㅎㅎ 야구 좋아하신다니 ㅎㅎ 반갑네요!!

롯데팬...ㅋㅋㅋ

갈매기들을 위해서 열심히 뛰셨다니 그 녀석들 오랜만에 평등하게 골고루 나눠 먹었겠어요^^

네 ㅎㅎ 정말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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