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용기!!를

in #kr7 years ago

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1(역사이야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https://steemit.com/kr/@yuoyster/wagdg

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2(역사이야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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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이 쓴 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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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4(군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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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용기

(1)

터무니 없는 소식을 들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황당한 소식이었다.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가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록됬다는 이야기... 부대원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한다. 너가 틀렸다고. 백남기씨는 물대포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빨갱이들의 선동질에 너가 놀아났다고. 경찰은 잘못이 없다고. 나는 썩소.

믿기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백남기씨 관련된 뉴스를 뒤적거렸다. 사망원인이 '병사'라니. 어떤 놈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을까. 내 상식으로 납득이 안된다. 도저히. 범인을 찾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는 권모씨다. 사망진단서에 최종 서명을 한 권모씨. 나는 그에게 인간 실격 판정을 내린다.

정말 눈물이 찔끔 흘러 나왔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내 웃음꽃 피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그것은 권모씨가 남긴 의무기록이다. 이례적으로, 권모씨가 의무기록에 유가족과 '백선하' 의사의 충돌 정황을 상세하게 기재한 것이다. 백선하 교수가 지시해서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작성한 내용. 유가족이 승합제(생명을 연장하는 약)투여를 반대하는 데도, 강제로 승합제를 투여한 내용. 현재, 권모씨가 남긴 의무기록은 백남기씨가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는 정황을 보여주며, 경찰과 법정투쟁을 벌이는 유가족을 도와주는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단다.

병사로 기재된 사망진단서에 최종 서명을 한 권모씨. 그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담당 교수의 부당한 명령에 무릎꿇은 사람이다. 불의에 저항해 가시밭길을 걸을 수 있는 위인이 아니다. 하지만 권모씨는 작은 용기를 냈다. '백선하 교수의 불의'를 기록한 의무기록. 권력 앞에서, 정의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소소한 반항이었다.

권모씨가 낸 작은 용기를 보고, 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평소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 권력 앞에 당당하게 서있고 싶었던 나. 하지만 정의는 내 이익 앞에서 무참히 짓밟힌다. 특히 계급사회인 군대 안에서 정의를 배신한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느낀다. 부당한 명령, 악습에도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는 나. 혹여나 내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침묵한다. 정의를 외면하는 순간 세상은 참 편안하다.

(2)

배달 온 도시락을 4층 식당으로 옮겨야 했다. 도시락을 옮기는 일은 '막내'가 하는 잡일 중 하나인데, '막내'가 없다. 동주가 생활실에 없다. 하필이면 이 순간, 동주는 여자친구와 콩닥콩닥하고 있었다. 생활실에서 동주를 향한 욕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동주는 자유시간에 전화하러 갔을 뿐인데. 부대원은 동주가 도시락을 옮기기 싫어서 전화하러 갔다고 생각한다. 동주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동주를 미워하는데 익숙하다. '동주=개념없는 놈'의 공식. 얼마나 편한가. 동주가 무슨일을 하든 위 공식을 대입하면 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도시락을 옮기러 갔다. 몆몆 후임이 나보고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동주가 해야되는 일이란다. 동주를 불러 오겠단다. 나는 후임의 만류를 뿌리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후임들은 어이 상실, 어안 벙벙. 저 미친놈이 왜 저럴까 하는 표정이었다.
도시락을 옮기면서 생활실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쟤 왜 멋있는 척 하냐.",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해.", "동주한데 아이스크림 얻어 먹었나 보지.". 코웃음이 나온다. 그래. 멋있는 척 할게.

동주가 식당으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글썽이는 눈동자. 새파랗게 떨리는 입술. 후임한데 한소리 들었나 보다. 가슴이 아파온다. 동주는 고개를 숙인채 연신 죄송하단다. 지겹도록 죄송하단다. 동주의 모습은 비참했다. 정말로. 동주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건 우리 부대원들이다. 그리고 '나'다.

동주와 3분간 대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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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야.
이경 이동주.
군대에 적응좀 했어?(약간 미소)
... 아직 못한거 같습니다.
군대 힘들지?
예... 힘듭니다.
나도 막내때 힘들었어.
...예...
소대원들이랑 좀 친해졌어?
...아직 못 친해졌습니다.
내가 봐도 그런거 같더라. 소대원들이 좀 무섭지?
...예
소대원들이 너한데 좀 차갑게 대하는거 같아.(어깨 동무을 한다)...........
사실 소대원들이 너 싫어해. 너도 알지?
예... 그런거 같습니다.(쓴 웃음)
왜 싫어하는지 알지?
...예 알꺼같습니다....
너가 맨날 여자친구랑 전화하는 거 때문에 그래. 막내 일도 제대로 안하고. 그리고 눈병 때문에 공짜로 7일 휴가 나갔다 왔자나. 얼마나 질투나겠냐. 그리고 너가 일을 안하면, 너 대신 누군가 일을 해야 되거든. 여기는 계급사회자나. 너를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그런데 솔직히,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너가 여자친구랑 전화하는게 어때.... 너가 근무 시간에 전화하는 것도 아니고. 너는 그냥 자유시간에 전화하러 가는건데, 사람들이 널 싫어하네. 시발. 너한데 존나 눈치나 주고 있고. 나쁜 놈들이야 진짜.
.....
미안한데, 너가 선택해야 돼. 눈치 보면서 전화 못하고 소대원들이랑 어울리거나. 지금처럼 전화하거나. 물론 중간이 가장 좋은데,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는 않자나.
계속 여자친구한데 전화하면서 우리한데 미움 받을지, 전화를 포기하고 소대원들이랑 친해질지를 너가 선택하면 되는거야. 여긴 x같은 군대니까.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니가 그 결과를 감당해야겠지?
....예
나... 사실 오래전부터 너를 지켜봤어. 소대에 적응을 못하는거 같더라고. '무한도전'을 보고 싶어도 뒤에서 주눅든채 서있으니까. 내가 다 미안하더라고.
그리고 여기 사람들 정말 별로야. 안착해. 진짜. 이기적이야. 물론 한명한명은 착한데, 뭉치면 안착해. 비정상이야. 내가 오래 있어 봤자나.(등을 토닥인다.)
아무튼, 나는 너가 무슨 선택을 하든지 뒤에서 응원할게. 정말로. 힘내고. 무슨일 있으면 나한데 물어보고. 아무거나 물어봐도 돼.(웃음)
근데 사랑을 위해서 군대에서 미움 받는건 견딜 수 있지 않냐?(가슴을 친다)
남자가 말이야.(같이 웃음)
겁을 준건지, 위로를 해준 건지 모를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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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을 전해주지 못해서 아쉽다. 무뚝뚝한 나로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랑 대화를 나눈 이후, 동주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동주는 나를 '진심'으로 느꼈을까, '위선'으로 느꼈을까. 깨지기 쉬운 유리같은 남자 동주. 조금만 지나면 곧 깨져버릴꺼 같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동주는 깨지지 않았다. 나의 태도를 '위선'으로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를 마주칠 때면 환한 미소를 짓는게 아니던가. 미소는 구역질 나올 정도로 징그러웠지만 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기도 했다.

(3)

우리 부대에서 축구 에이스(?)를 담당하는 나는 동주를 강제로 축구팀에 합류시켰다. 부대원들은 이 결정을 강하게 반대했다. 동주도 부대원들이랑 축구하기 무섭다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밀어 붙였다. 동주가 축구팀에 합류하면 부대원들이랑 친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남자끼리 어울리기 가장 좋은 스포츠는 축구 아니던가. 축구를 함께 하면 '적'도 '동지'로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축구 경기에서 아깝게 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동주의 실수가 있었다. 동주에게 짜증이 났다. 정말. 축구팀에 합류시킨걸 후회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동주가 부대원들이랑 함께 웃고 있는게 아니던가. 처음 본다. 동주가 부대원들이랑 해맑게 웃는 모습을. 동주의 군생활은 이제 시작이다.

동주를 위해 작은 용기를 내봤다. 아주 작은 용기를 말이다.

<추신>

글을 쓰는 내내 변명하는거 같았다. 동주가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부대원들의 잘못이라고. 하지만 나도 부대원들 중 한사람이었다.

글을 쓰면서 계속 내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나 확인해봤다. 부대원들과 나의 관계. 나와 동주의 관계. 부대원들과 동주의 관계. 그리고 동주를 위해 작은 용기를 내야 했다. 내가 사는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되니까. 내가 꿈꾸는 공동체는 이런 낙오자가 발생하면 안되니까.

흠... 이건 허풍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만약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런 용기를 내지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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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제 동생도 군인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글이네요
제가 군대는 안 가봤지만.. 군대 이야기하시는 남자분들 얘기 들어보면 두 부류로 나뉘더라고요
군대 무용담을 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군대의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로요
사실...용기있는 행동을 한다는 건 어디서든 쉽지 않은 일이죠
화이팅입니다

동생도 군인이시군요 ㅎㅎ 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정말 많은 분들이 짱짱맨 태그를 사용해주시네요^^
행복한 스티밋 ! 즐거운 스티밋!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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