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2(역사이야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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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이 쓴 옛날 이야기 1(역사이야기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2016년 11월 2일에 쓴 글이다.

10월 30일 00:00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드디어 쉴 수 있겠구나. 추위를 벗어날 수 있겠구나. 얼어붙은 발을 질질 끌며 발을 내딛는다. 게다가 내일은 그토록 목놓아 기다리던 외출이 아니던가. 부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격려의 포옹을 나눈다. 추위 속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추위는 조용히 자취를 감춘다.

나는 아까 그토록 반성했던 광기조차 잊어버린다. 내일 '외출' 때 뭐 하면서 놀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다. 우선, 친구들에게 정말 정말로 힘들었다고 말해야지. 이렇게 추운 날씨에 5시간 동안 서 있으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줘야지. 또 뭐가 있을까.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무사유', '히틀러의 나치즘'이 어떻게 사람에게 작동될 수 있는지 설명해줘야지.

이런 행복한 상상을 펼치던 중에 으스스한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내가 걸어가는 곳이 경찰 버스가 아닌 200 명의 시민들이 시위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것이다. 아니, 자정이 넘었는데 아직도 시위를 할 수 있나...? 게다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 막차도 끊겼을 텐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지..? 꼬리를 무는 의문이 계속된다. 왜냐하면 나는 의무경찰로 입대한 이후, 자정을 넘어서 시위를 진압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정말로 200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청와대를 향해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었다.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구나. 새벽까지 남아있는 시민 200 명 때문에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겠구나.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시민 200 명을 향한 동경심이 강할수록, 내 가슴에 박힌 가시는 더 깊게 돋아난다. 이 순간, 나는 경찰 제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시위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꿋꿋하게 서있다. 한숨. 내 모습을 보면서 역사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200 명 앞에서 거침없이 발언하는 내 또래의 여자 대학생. 편의점에서 쓰레기 봉투를 사와 작은 담배꽁초 하나 남김없이 줍는 어머니. 편의점에서 손난로와 캔커피를 사와 한명 한명에게 나눠주는 아버지. 이 모습을 보고 조금이라고 보태려고 없는 돈을 들고 편의점으로 향하는 젊은 대학생 무리.

세종문화회관에 모여있는 200 명이 다함께 '박근혜 하야'를 외칠 때면, 가슴에 쓰라린 통증을 느낀다. 심장이 요동친다. 눈물이 조금 흘러 내린다.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이 감동의 순간을 사진 찍어본다. 찰칵.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시위를 막아야 하는 경찰이지 않은가. 옆 사람이 내 눈물을 봤을까봐 조마조마한다. 하품하는 척을 하며 눈물을 닦는다.

하지만 눈물을 흘린 지 30분 지났을까. 거센 추위는 내 몸 뿐만 아니라 감동 받았던 내 마음까지 얼려버린다. 그런데 이분들은 집에 언제 가는거지? 이분들이 집에 가야 나도 잠을 잘 수가 있는데... 예상치 못한 짜증이 치솟는다. 200명... 멋있긴 한데.. 대단한데... 우리, 경찰의 입장도 생각해줘야 되는거 아니야? 우리도 국방의 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무를 하는 누군가의 아들인데...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

혼자 투덜거리고 있는데, 옆 선임이 나에게 조롱 섞인 말투로 말을 건다.

"00야, 저기 있는 200명을 어떻게 생각하니? 저래도 저 사람들을 계속 옹호할꺼야? 인간적으로 화나지 않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쟤내는 경찰의 입장을 생각하기는 할까? 개념없지 않아 정말? 화나지?"

"솔직히 화가 나긴 하죠. 저도 피곤하고 추운데. 하지만 저희가 힘들다고 이분들을 강제로 해산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건 옳은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저희가 의무경찰로 군복무 하기로 스스로 선택한건데... 저희가 선택한거니까, 선택한 결과를 받아들여야죠. 그게 옳은거죠."

"아직도 00가 정신을 못차렸구나.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임마."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나도 누군가가 이분들을 강제로 해산시켜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나'말고 다른 '누군가'가 말이다. 물론 나도 시위자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행위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리고 강제 해산 명령이 떨어지면 정말 깊은 자괴감이 들꺼 같기도 하다. 그래도...그래도... 누군가 강제 해산 시켜줬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지금 너무 춥고, 너무 배고프고 너무 졸리다. 지금 시각은 새벽 2시다. 진짜 잠 좀 자고 싶다.

이 때, 한 아저씨가 정확히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서로 눈을 마주친다.

"박근혜랑 똑같은 놈들. 기득권 세력에 편승하는 파렴치한 자식들. 부끄럽지도 않냐 이 어린노무 자식들아. 너희들은 정부의 노예야. 노예. 나중에 나이 들면 깨닫게 될꺼야. 너희가 얼마나 쪽팔린 짓을 하고 있는지 말이야.

씨발. 진짜 씨발. 아저씨에게 욕을 듣는 순간, 오늘 내가 느꼈던 자괴감, 죄책감이 깨끗히 씻겨졌다. 내 눈 앞에서 시위하는 시민 200명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졌다. 빨리 강제 해산 시켰으면 좋겠다.

아저씨에게 묻는다. 마음속으로.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된 건 저보다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 친구들이 더 큰 책임이 있는 거 아니에요? 저희가 여기 서있고 싶어서 서 있는 거 아니잖아요. 저희는 군대를 가야 했고, 조금 더 편하게 하려고 의무경찰에 온 거뿐이에요. 의무경찰로 입대한 게 이렇게 욕먹을 정도로 잘못한 건가요? 아저씨는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될 동안 뭐하셨어요? 아저씨는 50년 동안 한번도 본인의 이익을 챙겨본 적이 한번도 없나요? 아저씨는 저희한데 욕할 자격이 없어요.

이후 우리 부대는 30분 휴식, 30분 근무를 아침 7시까지 반복했다. 지금 시각은 07:00.

나는 광기에 빠지지 않았다. 충분히 시민의 입장을 생각할 이성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 판단으로, 내 눈 앞에 있는 시민 200명을 증오한다. 시민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싶다. 빨리 시위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라. 시위를 그만둬야 되는 논리적인 이유를 대보라고? 그런 거 없다. 지금, 내가 너무 춥고, 너무 배고프고, 너무 졸리다. 이게 전부다. 니체와 칸트의 철학도, 하나님과 부처님의 말씀도 다 필요 없다. 개소리다. 내 몸이 말하는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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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힘든시기에 복무를 하셨군요~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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