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핸드폰이 고장나 서비스센터를 갔다.

in #kr7 years ago (edited)

KakaoTalk_20180114_225332769.jpg

제발 한적하길 바라고 바랐지만 역시나 인산인해였다.

직원분에게 핸드폰 상황을 설명하자 접수를 도와주었다.

"찾으시는 기사님 있으세요?"

"아니요. 아무나 상관없어요."

"그럼 여기 화면에서 직접 선택해주시겠어요?"

모니터에는 기사님들 이름과 대기인원수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대부분 5~6명의 대기인원이 있었지만 유독 한 기사님에게만 2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난 바로 그 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기사님 수리석에 가 바구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그 후 난 고객들을 위해 비치되어 있는 공짜커피를 한잔 뽑아 마시고 그 옆에 비치된 샘플용 최신형 핸드폰을 만져봤다.

'와 요즘은 J시리즈도 완전 좋게 나오네. 이 정도면 굳이 S 살 필요 없겠다.'

그리고 노트8을 만지면서 '그래도 역시 플래그쉽은 플래그쉽이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핸드폰을 만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다른 사람들은 불려지는 이름에 따라 바쁘게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이상하게 내 이름은 불려지지가 않았다. 대기인원수는 2명 밖에 없었는데 분명 뭔가가 이상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자리에 가보니 내가 핸드폰을 바구니에 넣을 때 수리 받고 있었던 베레모 쓴 할아버지가 아직도 수리를 받고 있었다.

'뭐야? 뭘 고치는데 이리 오래 걸리지?'

괜찮았다. 아직 노트8은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 신기능들이 많았고 5개월 후 약정이 끝나는 지금의 핸드폰을 대체할 차기 핸드폰을 심사숙고하는 과정은 나름대로 즐겁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시 체험존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만지며 빨리 내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렸다.

15분쯤 지났을까. 이미 내 차기 핸드폰은 A8 2018로 정해졌음에도 내 이름은 불려지지가 않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보니 아직도 그 베레모 쓴 할아버지가 수리를 받고 있었다.

대기현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봤다. 내 수리석에 대기인원은 나밖에 없었다. 분명 15분전에는 내 앞에 한명이 있었고 내가 처음 왔을때 수리 받던 할아버지는 그대로이니 아마 내 앞에 한명은 다른 기사님으로 옮긴거 같았다.

'아 그래서 이 기사님의 대기인원이 적었던거구나. 오래 걸리니까 다 옮겼던거구나.'

대체 뭐가 그렇게 박살이 났길래 30분이 넘게 수리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수리석 바로 뒤 소파에 앉아 그 할아버지와 수리기사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음성인식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제였다.

할아버지는 계속 되게 해달라고 말을 하는데 기사는 이게 최선이다 이 이상은 기계성능상 불가능하다 뭐 대충 이런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할아버지는 자꾸 안된다는걸 해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5분 정도 더 기다리자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헀다.

'아 쫌!! 왜 안된다는걸 자꾸 해달라고 떼쓰고 있어. 뒤에 사람들 기다리는거 안보이나. 혼자서 몇십분을 잡아먹는거야 진짜 짜증나네.'

'아니. 할아버지 그게 안된다잖아요. 그런 기능을 지원을 안해준다잖아요. 고장난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게 없다잖아요. 아니 저렇게 설명해주는데 왜 자꾸 해달라는거야 뭐하는거야 이게.'

뒤에서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며 난 속으로 계속 할아버지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그 때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그 할어버지에게 다가오더니 뭐라고 속닥거렸다. 그리고 할어버지는 기사에게 알겠다는 말을하고 일어났다.

할아버지가 일어나는데 그 아저씨가 할어버지를 옆에서 부축해줬다.

'몸이 불편한가?' 라는 생각이 들 찰나 할아버지가 뒤 돌아섰다. 할아버지는 아주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랬다. 할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대체 그 음성인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어버지에게 불평을 쏟아냈지만 그 할아버지에게 음성인식은 많이 중요한 기능이었을거다.

난 1년에 몇번 쓰지도 않는 기능이었겠지만 그 할어버지에게는 일상 그 자체였을 것이다.

순전히 모든 걸 내 기준으로 생각하고 난 그 할어버지를 진상 부리는 꼰대로 판단했다. 그 할아버지는 진상이 아니라 간절함이었을텐데 말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성숙해졌다고 스스로 생각을 한적이 있지만 여전히 난 미성숙한거 같다. 그냥 내 편한대로 생각하고 내 시선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을 매도한다.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었을거다. 만약 그 할아버지가 자리를 뜨는 순간 그 선글라스를 못봣다면 난 그 할아버지를 욕한것에 어떤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겠지.

내가 평소에 이렇게 지나쳐간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만약 그 할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 아닌 정상인이였다면 그 할아버지를 욕한게 합리화 되는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 부끄러운 감정을 느낀것은 정말로 내 부족한 그릇을 객관적으로 내려다 봐서였을까 아니면 단지 장애인을 배려해주지 못한 정상인으로서의 약간의 우월감에 대한 반발때문이었을까.

생각이 많아 복잡한 밤이다.

Sort:  

저도 괜히 부끄러워지네요
정확한 사정을 모르면서 감정때문에 남에게 상처주거나 하지는 않았는지ㅜㅠ
그런일 겪으면서 더 성숙해지는거겠죠??

더 성숙해질거라 믿어요 ㅜㅜ

저처럼 깨어계신 분이 또 계셨군요.
아 글을 읽고 저도 뭔가 부끄러워지는 밤입니다.
내 당장의 불편함만 짜증낼 줄 알았지 남을 살피지도 못하고...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사람을 욕할 자격은 있는 것인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보팅하고 갑니다~ 어여 주무시와요^^

그러니까요.. 생각이 많아지네요 ㅠㅠ

아차 싶은 순간을 겪을 때마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는 거겠지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yhna님 꾸준히 찾아 뵌 보람이 있습니다.
노가다 아저씨와 분유 이야기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또 이렇게 따뜻한 글로 감동을 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감동을 드렸다니 다행이네요. 늘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c1h님!

저도 왠지 반성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조금만 더 생각해주었더라면...하는 후회도 많구요. 마음이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yhna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울리네요...

오늘도 들려주셔서 고마워요 수지님! 우리 모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로 해요.

그럴 때도 있죠~ 누구나 한 번 즈음 겪는 이야기라 공감하고 갑니다~ 저부터도 반성해야겠습니다. 가즈앗!!!

튜터조님의 일기 잘 읽고 있습니다 가즈앗!

안녕하세요!! 노래 작업을 포스팅 하는 뉴비입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됐습니다 ㅎㅎ
여유가 되신다면 즐기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네요...

저도 그 순간 그런 느낌이였어요 ㅜㅜ

바쁘게 돌아가는 삶속에서 놓치고 살아가는부분이 많으거같아요...
저도 제 하루하루를 뒤돌아보게됬습니다.

자아성찰의 시간..ㅠㅠ

좋은 경험하셨어요. 덕분에 저희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네요. 사회 생활 연차가 쌓여갈수록 상대의 입장을 덜 고려하고 점점 내 입장을 고수해져가는 제 모습에 반성하고 갑니다.

좀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댓글 고마워요!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20
JST 0.034
BTC 89515.30
ETH 3067.76
USDT 1.00
SBD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