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전투의 의의와 6월 25일 춘천지역 기상
춘천전투는 국군 6사단이 소양강 일대에서 지형적 이점을 최대로 이용해 3일 동안 치른 방어전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 2사단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으며, 사단의 상급부대인 북한군 2군단은 춘천 축선으로의 진출이 지연되었다. 결과적으로 북한군 2군단은 예하의 병력을 춘천-홍천-이천-수원 축선으로 우회 기동시켜 국군의 병력증원과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1단계 작전에 기여한다는 작전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반면, 국군은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다.
특히 춘천전투는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준비하고 싸운 전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의 진지공사 지원, 전쟁발발 했을 때, 춘천사범학교 학생 및 교사, 지역 주민들의 포탄운반, 춘천시민들의 자발적인 급식지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노고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군사작전을 수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이를 군에서는 METT-TC요소라고 부르며 이에 대한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 참고로 M(mission), E(enemy), T(terrain and weather), T(time available), T(troop available) C(civilian)을 지칭한다. 위의 순서가 중요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에서 지형과 기상은 세 번째로 언급될 정도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이번 글에서는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던 날 춘천지역의 기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상청은 1960년대부터 자료를 축적해 1950년대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사자료, 당시 참전자들의 증언과 기타 자료 등을 토대로 1950년 6월 25일 기상을 추적해보려 한다.
우선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에서 1982년에 발간한 『38도선 초기전투(중동부 전선편)』에 기상과 관련된 부분이 다소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야반부터 내리는 가랑비로 칠흙 같은 어둠이 온통 산하를 뒤덮고 있었다.(35쪽), 날이 훤해지고 비가 멋은 얼마 뒤.....(56쪽), 어느새 따가운 아침 햇살에 땀이 몸에 배이기 시작할 무렵(58쪽), 부슬비도 멎고 하늘이 개이기 시작한 일요일(25일) 아침(63쪽)”. 6월 25일 비가 내렸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한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2005년 공간사(참전당사국 정부 공식 전사연구기관에서 발간한 전사) 『6.25전쟁사2 북한의 전면남침과 초기 방어전투』에는 6월 25일 당일 기상을 언급한 부분은 없다. 다만 전반적인 춘천지역의 평균 기상을 적고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 기온은 평균 22℃로써 고온 다습하고 중순부터는 장마철로 접어들어 평균 100-250㎜의 강우량을 보이며, 고온으로 인한 낮은 안개구름으로 피아간의 행동을 용이하게 한다”.(413쪽)
『초산전사』(1986년 제7보병연대 발간)에는 “57㎜ 대전차포 1문은 포다리가 진흙 속에 깊이 빠졌기 때문에 그곳에 유기하였다”(63쪽)고 언급되어 있어 간밤에 내린 비와 오전까지 내린 비로 인해 지면이 질척거렸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전자들의 증언은 당일 기상을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한종(7연대 3대대 10중대 소대장)은 1977년 4월 7일 증언에서 “지암리 방면은 6월 25일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고 언급했으며, 같은 날 이금열(7연대 1대대)은 “춘천시내에는 그리 비가 쏟아지지는 않았으나 가랑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지암리는 6사단 7연대 3대대가 배치되었던 38선 경계지대였다. 이 둘의 증언을 분석해 보면 개전 당일 전방지역에는 폭우가 내렸고, 7연대 예비인 1대대가 배치되었던 춘천시내 인근에는 소량의 비가 내렸다. 6월 25일 개전 당시 제16포병대대 군수장교 직책을 수행했던 김운한은 1966년 5월 20일 증언에서 “그날 춘천에 비가 왔을 거예요”라고 했으며, 1986년 5월 24일 증언에서는 “보슬비가 내렸다”고 언급했다. 제16포병대대의 위치가 소양교 인근에 위치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춘천시내 지역은 다소 적은 량의 비가 내린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오봉환(7연대 대전차포중대 소대원)은 1980년 12월 17일 중언에서 “나는 주번(오늘날의 일직근무)이 끝나면 나갈려고 외출복 준비도 했는데 비가 와서 나갈 생각이 없어 그대로 있었다”고 언급했고, 송인규(7연대 3대대 인사장교 및 본부중대장)는 같은 날 증언에서 “6월 25일 09:00이후...(중략)... 계속해서 철수하여 마사리에 오니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그쳤다”고 말했다. 오봉환이 소속된 대전차포 중대는 춘천시내에 위치했고, 송인규는 전방 좌측 대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38선 경계지역에는 비가 오전까지 내렸고, 춘천시내에도 외출을 포기할 정도의 비가 내렸다. 춘천지역의 강우량에 대해서 이우상(7연대 1대대 3중대 소대장)은 1966년 2월 18일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우리가 9시 정도...(중략)... 낮에 정도 되었는데 적은 나타나지 않아요. 그 때 25일 날 춘천에 비가 왔어요. 아침나절부터 계속해서 왔을 겁니다. 보슬비가 오는데 젖을 정도는 아니고...(중략)
필자의 생각
6월 25일 새벽 경계진지(38선) 지역은 비가 많이 내렸고, 주저항진지와 춘천지역은 보슬비가 내렸던 것으로 보이며, 오후에는 비가 그치고 날씨가 개었습니다. 노면은 간 밤(6월 24일) 내린 비로 젖거나 질퍽한 상태였습니다. 전사기록이나 증언자들의 증언 내용으로 판단해 볼 때 시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해가 뜨면서 주저항진지(지내리-발산리를 연하는 선)에서는 개활지 약 1㎞시계가 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가 춘천전투에서 기상과 시계를 우선 다루려는 이유는 이후 분석되게 될 전투에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옥산포 전투는 기상과 시계가 주는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Nice post. Keep it up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곧 좋은글 준비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생각에 의견 있으시면 보내주세요.
이름을 00으로 처리할 이유가 없을 듯 합니다.
출처를 달아주면 좋겠습니다.
각주처리가 되지 않으면 활용성이 떨어집니다.
춘천전투에 대해 직접 내용을 작성하기 보다 개략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작성할 것인지 개략적인 목차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목차 구성에 대해 토의해서 올려보겠습니다.
목차구성과 내용이 어느정도 갖추어지고 집필진이 구성되면 지원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지원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집필하실 분들과 협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 좋은 컨텐츠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느꼈지만 이런 이야기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지요.. 전 일본에서 일본정보 위주로 스팀하고 있는 신입입니다,. 좋은소식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춘천에서 한순간에 뚫려버렸다면 .. 부산으로 후퇴하기 전에 이미 전쟁이 끝났을수도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컨텐츠의 글이네요~ 전쟁이야기를통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