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단편선
1. 1월에 관한 이야기.
패배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무리한 12월 겨울을 지나 1월이 왔다. 알 수 없이 더 나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순조롭게 졸업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진 않았지만, 역시, 갈 곳의 결정 없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맞이한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다. 하루하루가 텁텁하고도 무미건조했다.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서 16살 먹은 강아지가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알람을 세 번 정도 무시한다. 늦은 오전에 일어나면, 하루를 깎아먹었다는 죄책감이 든다. 여김 없이, 사람을 찾는다. 위로의 대상을 찾는 건지 그냥 심심한 건지 모르겠다. 각종 메신저와 블로그를 한 번 둘러보고 난 뒤엔, 동기부여를 받을 테드 영상을 뒤진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조금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에 파묻혀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가 다가온다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는 날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였다. 늘 그래왔었다. 근데 어째서인지, 이번은 좀 다르다. 텁텁함이 가시지 않는다.
2. 비수기
그러니까, 비수기. 비수기라는 단어가 내 상태를 설명하기엔 적절하겠다. 붐비지 않는 기간. 내일도 모레도 그냥 같은 날이다. 나 자신에게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해서 계속 찌른다. 스크린 너머로 올라오는 이미지들을 몇 개 보고 나선, 밖으로 나섰다. 날씨가 더 추워진 듯하다.
3. 상담
상담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취업센터 상담사분이 말하길 '예술형'이랑... '진취형' 점수가 높네요. 그리고 '사회성' 점수도 꽤 높게 나왔어요. 수호 씨 뭐 만드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창작에 관해서는 부끄러움이 많다. 그래도 몇 번 털어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남들이 쏟아내는 비난이 조금은 무서워서 다른 걸 해보겠다는 선언 같은 건 안 한다. 대신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내 공간에 조심히.. 소심하게 올려본다. 가끔씩 반응이 좋으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는데, 반대로 반응이 없을 때면 조금 슬프다. 그래도 공들이고 생각해서 눌러 담은 건데. 심리검사가 좋은 점은 내 예상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젠체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아예 없다고는 말은 못하겠다. 예쁜 것이든, 생각을 건드리는 몇 가지 단어들이든, 살아오면서 그런 것들이 내가 좋다고 말하는 것들이지 않을까?
4. 면접
면접을 보았다. 남들 앞에 '나'라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 2주간 훈련을 했다. 훈련인지 자가 훈육인지 모르겠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쏟았다.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다. 시간을 온전히 쏟진 못했다. 스터디라는 강제적인 시간을 만들어서 나를 바꾸기 위해서 조금 내몰았다. 가기 전에는 조금 걱정됐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오묘한 동정심과 평온함이 동시에 왔다. 몇 명은 나를 보는 듯하였다. 일련의 테스트에 계속 날 놓아두고 긴장을 바짝 세운 뒤 말 몇 번을 토해내게 했다.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해보고, 면접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뒤 나열한다. 질문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이런 꼬챙이로 후벼파는 질문들을 몇 번 받고 나서, 나라는 놈을 앞에 세우기 위해 고치고 고친다. 사람들을 만나서는, 말을 많이 해선지, 날씨에 건조해져서 그런지 입술이 갈라진다. 두꺼운 입술에 핏색이 조금 돌았다. 몇 명은 날 걱정해주기도 하는데. 조금 신기하면서 고마웠다. 그들도 동정심으로 날 봐주는 건가?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었다. 면접날은 유독 날씨가 추웠는데, 추워서 그런지 긴장이 더 심해졌다. 전날 구입한 액상 청심환을 생각하며, 면접장에서는 떨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혹은 나보다 더 나은, 혹은 나보다 구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어색하고도 비참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5. 탐색
내가 생각하기에 자가 훈육이라고 불리는 시간을 몇 번 지나친 뒤에는 어떤 '대안'들을 세워놓기 시작했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틈을 벌려놓고, 상황에 따라 약간씩 수정해서 대답하면 되도록. 이런 식으로, 자기 탐색을 하기 시작했는데. 직업에 맞는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서 조금은 불쌍했다. 그래, 사람들이 말하길, 어차피 가면 쓰고 일하게 된단다. 상관없다. 어차피 살아오면서 수백 번이고 숨기는 걸 많이 해왔다고 생각한다. 일련의 자기탐색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진행돼도 되는지 불안하다.
독백에 묻은 고민이 담담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수호님 입장이 잠시 되어본 기분.
@홍보해
울림이 있을겁니다. 많은 분들이 공유하시길
헐..쇼루님 감사드립니다 변변치 않은글 응원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ㅠㅠ
직업이 나를 선택하는게 아닌, 내가 자연스레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이상적이면서도 어려워요.
글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재미를 느껴도 되는 내용이 아니지만)
인생의 비수기라는 말도 와닿고. @steamfunk님과는 다르게 여유 있는 시기는 아니지만 행복은 없는 지금 저의 삶도 비수기라고 정의내리고 싶네요.. 킁킁
피기펫님 글 정독해주셔서 감사해요!
학교 다닐때는 마냥 내가 직업을 선택하고 막연히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직업을 가질꺼라는 생각만 하는 어린애였는데.. 막상 사회로 던져지니 단순한게 아닌듯 하네요. 여러모로 비수기인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게 사치인지도 모르겠지만, 일상을 이어나가기 위한 소소한 행복함이라도 찾아서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약이다”
그런 비수기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더라구요. 힘든 시기에는 시간만한 약이 없으니 힘내세요 스팀펑크님💪🏻🤠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겠지만 그것도 욕심이겠죠..? 방문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힘내시고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니 나가기가 좋은 날이네요.
힘내세요! 짱짱맨이 함께합니다
감사합니다 짱짱맨.. ㅠㅠ
그것을 보는 것 같은 일출에서는 아침이 밝다
단편선이라는 제목을 보고 가수 얘기인 줄 알고 들어왔었네요 ^^;
'소심하게 올려본다' 에서 공감하고 갑니다..
회기동 단편선과는 무관한지라 ;^^;
댓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