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8] "우리는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는 아직 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씽어 쏭입니다. 출근길,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해보니 참으로 불쾌한 이야기만 가득하네요. 아침부터 기분이 몹시 ‘상쾌’합니다.
작년부터 꾸준히 이어진 미투캠페인, 드디어 올해 제대로 터졌습니다. 사회각계각층을 가리지 않고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는데, 이제 정치권만 확실히 터지면 될 것 같네요. 남녀노소 상관 없이 자신의 막대한 권력을 앞세워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린 모든 자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표현이 다소 거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무튼 밑구녕까지 싹싹 털어 관련자들을 엄중히 벌하는 게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성폭행․성추행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지만 그 중에서도 제게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이 ‘수없이 자행한’ 성폭행 사건입니다. 평소 뮤지컬과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가슴아프고 매우 화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윤택이 연극계에서 어떤 입지에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간략히 묘사하자면... ‘연극계 이창동 감독’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이창동 감독님 죄송합니다. 달리 비유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해서요. 아무튼 그의 필모그래피만 놓고 보면 솔직히 대단한 사람인 건 맞습니다. (그래봤자 ‘인쓰’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이력은 따로 기술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분’을 어떤 연극인이 감히 거역할 수 있을까요? 순간의 치욕만 견디면 괜찮은 배역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데요. 연극과 뮤지컬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실 겁니다. 이쪽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다른 이유는 다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작품당 캐스팅 될 수 있는 배역의 수 자체가 매우 적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주조연, 단역까지 다 합쳐 수십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있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죠. 뮤지컬보다 연극이 더 심합니다. 10년 넘게 대학로에서 무명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현재는 충무로 인기스타가 된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딱 한 번 만이라도 무대에 올라보고 싶었다”
무대에 서고 싶은 배우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검은 손을 뻗치는 사람들. 그들은 단순히 이들의 육체만을 범한 게 아닙니다. 무대에 대한 열망, 소중한 꿈, 그간 수없이 흘려온 피땀눈물을 모두 더럽힌 것입니다. 오직 무대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이들이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진실을 말한다는 것,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요?
학창시절 청춘을 모두 바쳐 죽도록 공부만 한 뒤 어렵게 사법시험에 패스해 검사가 된 여성.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힘든 공부를 버텨냈을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많은 이들에게 성폭력 피해자로, 검찰 내부엔 그저 똥물을 튀긴 오점 정도로 기억될 것입니다. 얼마나 치욕스러울까요.
성폭력 피해는 반드시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심리상담사이신 어머니께선 다양한 연령대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잘 견디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우울증, 자살충동, 무기력, 분노조절 장애 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어릴수록 더 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쾌활하고 밝던 아이가 친아빠의 성폭행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손목을 긁고,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만 보면 몸이 굳어버립니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올바른 연애관’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건 더 이상 자기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불결하다고 생각해 그냥 될대로 대라 자신을 놓아 버리는 경우입니다.
몇 주 전 연합뉴스 기사를 보니 성폭력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다른 어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보다 충격이 크고 오래 간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돼 있더군요.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는) 연구 내용과 결과만 인용하겠습니다.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충남해바라기센터 연구팀은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성폭력 피해자 40명과 일반인 83명의 정신과적 임상특성을 비교한 결과를 2015년 대한불안의학회지에 보고했다. 조사 대상 피해자와 대조군 모두 여성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들 가운데는 피해를 경험한 지 2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 유형은 강간 30명(75%), 강제추행 8명(20%), 성매매 2명(5%)이었다. 이들 중 31명(77.5%)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8명(20.2%)은 주요우울장애(우울증)로, 1명(2.5%)은 정상지능과 지적장애 사이에 놓인 '경계선지능'으로 진단됐다. 연구팀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점수가 60점 이상으로 ‘전쟁을 경험한 환자와 맞먹는다’고 평가했다.
‘전쟁을 경험한 환자와 맞먹는다’ 상상이 가십니까? ‘성폭행 경험=죽음의 고통’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흔히 성폭행을 가리켜 ‘인격 살인’이라는 말을 쓰는데 저 실험 결과가 사실이라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언제 또 같은 일이 벌어질까 전전긍긍하며 평생을 불안 속에 살아야하고, 그 날의 참혹한 기억이 자꾸만 되풀이 될 것이며, 결코 그 날 이전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전쟁과 성폭력은 같은 선상에 있겠네요.
문득 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이 한 말이 떠오르네요.
“우리는 비록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는 아직 지지 않았다”
앞으로 더 큰 충격과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움츠려 들지 않고 목소리를 내겠다 마음 먹은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제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이들의 전쟁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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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권력으로 타인을 짓밟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되선 안될것입니다. 더군다나 평생 트라우마를 남기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더더욱이요.
이 썩은 사회를 얼마나 씻어내야 할지...아직 끝이 보이질 않네요
성과 권력의 문제는 아주 원시적인 사회부터 있었기 때문에 완전 해소되긴 불가능하겠죠. 적어도 남녀노소 모두가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권위와 권력에 기반한 성폭력과 동시에
일상에 만연한 성희롱도 좀 사라졌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회사 상사가 "***씨 너 화장하니 퇴폐적으로 보인다 야, 마담같다"
해서 "그거 성희롱입니다" 하니 이쁘다는 말이라고 얼버무리시더라고요 미안하다고. 몰랐다고.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아요. 제 주위에는 '딸 같아서 그랬다'는 개소리보다 '기분나쁠지 몰랐다'는 분이 많더라고요.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일단 본인의 단어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사람들이 국어 공부를 다시 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 ㅅㅂ
듣는 사람이 성적으로 기분나쁨을 느꼈으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고 하죠? 다만 전 국어공부에앞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단어부터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그렇게 가르치니 모를 수도 있거든요.
한번 털떄 제대로 털어줬으면 합니다. 높은자리에 있던, 낮은 자리에 있던 절때로 성추행, 성폭행, 성희롱은 용납될수 없다는걸 보여줬으면 합니다.
일단 전 옥수수부터 털어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무기삼아 남들에게 트라우마와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은 정말... 사회적, 법적, 인간적으로도 매장시켜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젠장
그렇죠 젠장....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먼듯합니다.
어떤 일이든 '꾸준함'이 생명입니다.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