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를 위한 글
글을 적는다는 행위가 애초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이를 포괄하는 삶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일 경우가 많아서, 글은 결국 말하기와 내보이기를 위한 매체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효율적으로 일상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잘 골라내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심하게 된다. 눈에 띠는 제목을 찾아보거나, 초반의 시작이 흥미롭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최소한 그간의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괜찮았다고 느껴지는 작성자의 글을 위주로 읽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낭비"로 여겨진다는 것이 슬픈 일일 수 있겠으나, 애초에 모든 발화가 같은 중량감으로 같은 때에 닿을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적는 글 또한 누군가에는 쓰레기가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럭저럭 들을만한 글이 되는 것이다. 닿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닿아서 버려지는 것보다 나을 상황이 올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반응이 글쓴이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서 꾸역 꾸역 뭐라도 쏟아내는 것이겠지만.)
애초에 듣기를 위한 글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소재 같은 건 없는 것이다. 촘촘한 정보의 맥락 대신, 성기게 배치된 파편들 - 여백들만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아무런 의미나 핵심은 지시되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와 '듣기'는 - 독자들의 반응을 듣기 위한 글쓴이의 선택적 듣기를 제외하면 - 서로 어울리기 힘들지만, 어떤 글이 글쓴이의 '듣기'를 위주로, 독자의 '말하기'를 위주로 전개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실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글'이 아니다. 변기도 파이프도 아니고.
라디오 작가들은 듣기 위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닐까 문득 떠오르네요. 오디오북과 관련해서 살롱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자연스럽지 않고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 때문에 집중이 덜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말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위한 컨텐츠를 담는 것이 아닌, 듣기를 위한 여백만을 발화하는 상황이 과연 가능할까요- 여기서의 듣기란, 청취자의 듣기보다 말하는 자의 듣기를 가정한다고 하면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형태로서 전달이 될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물론, 실시간으로서야 전통적인 형식의 '대화'가 있겠지만, 이마저도 발화하는 자의 메세지가 담기곤 합니다.
목소리가 "없거나 거의 희박한" 형태로서의 글이 가능할까 하고 상상을 해봅니다.극단적인 듣기를 추구하는 말하기와, 말하기를 추구하는 듣기와 같은 전복적인 상황 같은 것 말이에요. :)
윤율을 살리는 글이 그렇지요
어떤 말들이 노래처럼 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ㅎ
저는 가끔, 읽는 자들에게 자극적일 수 있는 의견을 글로 표현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습니다. 여기 스팀잇에서는 한번도 없지만요. 그런 경우, 내 의견을 피력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듣고 보고 싶은 생각에 그렇게 쓰기도 하죠.
결국, 내가 옳았구나! 를 확인하고자 하는 일종의 답정너라고 할까요. 그럼에도 그런 방법이 아주 훌륭한 Red-Team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주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거나, 애초에 오프라인에서의 삶에 휘둘리지 않을만큼의 느슨한 관계를 독자로한 글이라면 -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면 - , 레드팀을 형성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글을 굉장히 잘 쓰시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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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씀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