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없지만 마음이 가득찬, 각인 갤러리
제주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지만,
조천 골목을 걷다 보면 반가운 녀석들을 자주 만나게 돼.
대놓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기도 하고,
처음 온 녀석이네, 하는 표정으로 바라봐주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낮잠 자는 녀석들까지..
너희는 이 동네 사는구나. 반가워, 하며 인사를 건네다 보면
조천 앞바다를 만나게 돼.
꽤 오래 서로 밀고 당긴듯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이 고르지 않아.
해안선은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그 둘레를 따라 집들이 자리잡고 있어. 자연스러워 보여. 저 울퉁불퉁함이. 직선은 인간의 라인이니까.
다시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파란색 간판 하나가 보이더라고.
각인 사진갤러리라고 적힌.
원래 동네 슈퍼였다고 하는데.
예전 슈퍼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쉽게 연상이 되는, 딱 그 정도 사이즈의 공간이었어.
이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님이 무인으로 운영하는 곳.
살짝 들어가봤어.
크지 않은 공간인데, 구석구석 작가님의 손길이 가득찬 곳이야.
작은 테이블과 사진 엽서들과 책들..
손수 만드셨을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방문했던 사람들이 남긴 낙서를 보기도 하고
안쪽 의자 자리를 살피다가
위트 있는 글에 피식 웃기도 하고.
마치 아는 이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기웃거리는 기분이랄까.
무인으로 운영하시다 보니
방문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우셨나봐.
작가님은 그럼에도 서로 인사를 나누길 원하는 게 보여.
테이블에 놓인 노트에는 그 마음에 응답하듯 말을 걸어.
그리고 작가님은 글 아래에 답을 적고.
인사와 인사가 이 노트에서 만나고 작별해.
아마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전에 자신이 적은 내용에 무슨 답이 있을지, 노트를 뒤적거리겠지.
그래서인지 지난 노트들도 차곡차곡 정리해두셨어.
그냥 단순히 쉴곳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라, 작가님의 마음으로 만든 공간을 내어준 듯.
애씀이 보여. 느껴져.
만나지도 못할 누군가를 위해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 그리고 인사를 건낸다는 것.
마치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 보내는 편지처럼.
조천 마을 골목을 걷다보면,
작은 구멍가게 처럼 생긴 무인갤러리가 있어.
윤슬 작가님이 운영하는 '각인' 이라는 이름의.
각인, 머릿속에 새겨 넣듯 깊이 기억됨. 또는 그 기억
작가님은 기억되고 싶으신 것 같아. 기억하고 싶거나.
그렇다면, 성공하신 것 같아.
각인 갤러리
제주시 조천읍 조천7길 20
010-2992-8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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