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속에서 혼자 있던 날,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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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혼자있는 것이 좋았다. 누구로부터의 방해도 없는 , 오롯이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으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읽을거리를 찾아다녔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단어와 수사를 동원하여 축복하고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슬픈 것은 슬픈대로 기쁜 것은 기쁜대로, 그것은 그것대로. 어렸을 적 가난하고 불우했던 가정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난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하루 잘 먹고 잘 자는 것 이외에는 나로서는 문제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살도 채 되지 않는 아이가 알아봐야 뭘 알았겠는가. 옷투정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살지 않고 심지어 전기와 상수도도공급되지 않는 곳에서 슬레이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밤마다 귀신처럼 보이던 감나무가 무서웠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쁠 것도 없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창밖을 바라보며 빗물 냄새를 맡기도 했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일부로 몸을 적시기도 했다.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약간의 벌을 서야하는 수고를 해야했지만, 기꺼이 감내할 정도로 비 맞는것이 좋았다. 게다가, 젖은 옷을 핑계 삼아 발가 벗고 이불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면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빗물에 젖은 흙의 짙은 냄새는 여전히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빗물에 밖으로 꾸물꾸물거리며 올라오는 지렁이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이었다. 온 몸으로 꼬물꼬물 거리던 친구들을 도와줄 요량으로 꼬챙이로 주위의 흙을 치워주고 나면 한결 가볍게 기어 올라오는 모습에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이따금씩 홍수라도 만난 것 처럼 허겁지겁 짧은 다리를 발발거리던 땅강아지들이 밖으로 나오고는 했는데, 손안에 쥐고 가만히 있으면 내 손을 가렵혔던 촉감은 여전히 살아있다. 요즘은 쉬이 볼 수 없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게 다가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있고 싶었다. 따스한 봄날 보다, 햇살이 은은히 내려 앉은 때 보다, 차라리 살점을 여미는 빗방울의 한기가 가득한 그날이 좋았다. 잠을 청하기에도 좋았고, 사색하기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행복한 날이다. 지금은나이 먹고 처마가 없는 곳에서 살다보니 그럴 일은 좀처럼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타인의 시선을 피해서 오롯이 나 혼자일 수 있었던 외로운 호수에 풍덩 빠지는 일,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상처받는다는 것. 그게 뭔지도 몰랐다. 먹고 싶고, 입고 있은 것 그러한 것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는 어느 날, 우리 가족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슬프다고 말할 수도 없없다. 고백하자면, 슬픔이 뭔지도 몰랐고, 기쁨도 다를 것 없었다. 내가 가진 단어들로는 형용할 수 조차 없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빗방울 속에서 만큼은 왠지 알 것도 같았다. 역시 장문의 글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공감케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나는 분명 알 수 있었다.

가끔씩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어릴적 시간을 되돌아 본다. 아직도 불분명한 감정의 상태는 마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납득할만큼, 공감하게끔 할 수 있는 정도의 문장력의 부재를 실감하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혼자임을 자처했고, 또 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일찍부터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그 자체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타인으로부터의 상처에도 생각해보건데, 아무 이유없이도 슬프고 외로웠던 아픔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더불어 이후에 일어난 모든 가족간의 불협화음과 경제적인 궁핍 그리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가 끼쳤던 영향력은 논리적 보충이라도 하듯이 이를 명확케 하고 나선다. 슬프게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달리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우리를 빗줄기속으로 내몰아 세우는 것이 달갑지 않다. 지리멸렬히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수억만금의 부자에게도 역전의 부랑자들은 물론이고 숱한 노동자들에게도 예외없이 찾아든다. 우리는 어느 것이건 서툴기만 하고, 부족하고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삶이란 것은 그런 우리에게 정확한 기준이나 최소한의 방편 조차도 귀띔해 주지 않는 인색함과 무책임함을 보여준다. 일체의 일임해버리고 수수히 방관하고 있는 삶이란 것은 애당초 통찰력 따위는 제공하지는 않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팔짱을 끼고서는 엄하게 우리를 바라 보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면 언제든지 그 오만하고 불손한 면상에 대고 욕지기를 해주고 싶지만, 깎이고 닳히는 동안 치열하게 부딪히고 터지고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며 빗방울처럼 혼자인 스스로를 보면서 무지몽매한 우리는 그렇게 알음알음 삶을 채워가나보다.



글, 사진 ; 우유에 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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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사람을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맞춰가는 삶의 퍼즐이 누구보다 예쁘면 좋겠지만..
우리도 삶이 처음이기에,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들로
그 퍼즐을 채워갈수 밖에 없나봅니다.
이 퍼즐 조각을 끼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끼워지게 되는.
이 퍼즐 조각은 더 넣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그렇게 퍼즐 조각을 하나, 하나씩 채우던 어느날.
문득 빗소리에 고개를 돌려보고,
그곳에서 또하나의 퍼즐 조각을 찾아 낸 어느날.
그 조각도 이 퍼즐판의 어느 한 귀퉁에 자리하게 되겠죠.

삶속에서의 그 알음알음으로 채워가는
많은 퍼즐조각 하나하나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퍼즐판은 꽤 예쁘지 않을까요?
아픈 기억도 있고, 슬픈 기억도 있지만.
그누구의 퍼즐판보다 그만큼 다양한 색과 모양을
가진 퍼즐판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냥 우유님 글을 보다가 저도 생각이 흘러가는데로 적어봅니다.
오늘도 따뜻한 하루가 되길.

모자란 글에, 이리도 훌륭한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이 퍼즐 조각은 더 넣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그러다 자칫 퍼즐을 망가뜨릴까봐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또 그렇게 할 수 있기로서니, 이전의 그림보다 못한 그림이 나오지요.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입니다.

'됐고 첫사랑 얘기나 해보세요' 드립을 칠 수 없는 글이군요. 그 당시의 감정을 오롯이 옮길 수 없는 건 문장력의 부재가 아니라, 어쩌면 어느 정도는 필수불가결하게 보정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기에 실재와의 간극을 용인하기 힘든 무의식의 개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횡설수설 하나는 참 잘해요. ;) 첫사랑이라...음... 네.. 정리가 되면요. 제 글도 정리가 되고 머리가 좀 간결해지면 그때, 생각 해보죠.

'모르는 것이 약'이었다가 '아는 것이 힘'이 되는 것. 사실 이 두가지 모두 자신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그때 그때 달라지는 말일 것 같아요~ 상처받기 싫은 만큼 누군가의 상처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어요:) 추운날씨 감기조심하세요~!

글에서 흙의 짙은 냄새가 전해져 오는 것 같네요. 조금 쓸쓸해졌어요.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테니, 우리 모두에게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오는 삶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그러게요. 충분하게 고민해 보지 않고 글을 썼네요.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오는 삶은... 씁쓸하게 미소 짓기보다는 담담하게 눈물 흘릴 수 있는 삶?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저도 흙냄새 참좋아하는데요.. 여기 저와같은 동지가 계셨네요
그 바닥에서 부터 올라오는 그 냄새~

특히 그 냄새 좋아합니다. 한 해를 고이 보낸 잎사귀들이 함께 썩어 갈 때의 그 냄새요. 거름이 되고 다시 나고, 언제 만나도 생경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들과의 재회는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내리는 비와 내리는 감정이 일체가 된 듯 합니다. 어느 것이 비고 어느 것이 삶의 비애인지 모를 정도로요.

'빗물에 젖은 흙의 짙은 냄새'
이건, 코끝에서 냄새가 아니라
여전히 추억과 기억 그 어느 가운데 있는 듯해요 늘~~^^

땅 속 깊은 곳, 밑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나무며 흙이며 온데 섞인 그 짙은 냄새, 아시나요? ;)

그럼요^^
가끔 그런 냄새의 기억이 나는 곳에선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있기 도 해요~^^
제 플필의 땅이 그런 곳 이죠^^~

맞아요. '웅크리고 앉아서.'

타인의 시선을 피해서 오롯이 나 혼자일 수 있었던 외로운 호수에 풍덩 빠지는 일,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표현이십니다. 어린 시절 저도 꽤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감정이입이 후욱 되네요 ㅋㅋㅋ 에구 가난은 가난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괴리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음.

정말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이 놈의 사회는 갖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한군데 모아 노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통제하려고 하고, 간섭하려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학교가 가지는 그 의미 자체보다는 그곳에서 확인해야 했던, 외면하고 싶었지만 결국 마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실이 저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다양하지도 않는 생각들과 강요되는, 또는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상하거나 낙인이 찍히고 놀림을 받는.

차마 다행인 것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더 이상의 정규 교과 과정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굳이 내가 만나고 싶지 않으면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지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나마 덜하지요.

가슴이 속이 왜 멍멍한가 했는데.. 그 이야기에 저도 포함이 대는것같아
조금은 슬퍼지네영 ......

그건 아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어쩌면 빗방울 같아서 일지도 모릅니다.

작가님도 글 쓰시는 분이였군요... 느낌이 다릅니다~ 순수문학 책을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역시 어울리지 않는 감상평이지만..이 구호를 남겨야죠. 가즈앗!!!

함께 가시죠. ;)

가즈앗!!!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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