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의 문제들, 피에르 부르디외
Questions de Sociologi, Bourdieu Pierre (1981)
사회학의 문제들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과 사회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엮여있다. 중간 후반부의 기호의 변신들, 어떻게 스포츠 애호가가 되어가는가?, 오트 쿠티루와 오트 퀼튀르, 누가 창조자를 창조하는가?,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와 정치, 파업과 정치 행동, 지성의 인종주의는 발표문과 칼럼을 수록했다. 부르디외는 서문에서 대중을 상대로 발표했던 글들을 책으로 묶었다면서 사회학과 타 학문의 인식에 대해 언급한다.
“사람들은 물리학이나 철학, 기호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사회학에 대해서 만큼은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어째든 사회학은 ‘전문가적 권력과 역량’이 행사하는 독점권이란 위험한 것이며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문이다. 만약 사회학이 오로지 전문가들을 위한 전문적 지식이 되어야 한다면, 그런 사회학을 위해서는 단 한 시간도 노력할 가치가 없다." -서문 중-
주관적 경험에서 사회학을 위해서는 고도의 객관성에 도달해야 한다. 사회 행위자들의 ‘체험’을 통해서 사회적 실천들의 진실을 형성해야 한다. 이렇듯 사회학은 사회적 실천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객관적 조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학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은 레이먼드 크노가 “이론화란 개론서 만들기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듯이 이론적 문제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지지자들의 논쟁 속에서 변화한다.
부르디외의 사회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아비투스는 실천들을 연구하고자 하는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궁극적 목적론과 기계론의 양자 택일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아비투스는 무엇인가?
아비투스는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며 단순한 담론을 생산하는게 아닌 하나의 ‘상황’이며 하나의 장에 적응된 담론을 생산한다. 부르디외가 아비투스 개념만을 사용하는 이유는 아비투스가 에토스의 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에토스(ethos)는 윤리적 차원의 성향들의 총체이다. 윤리가 명시적 원칙들의 논리 정연한 체계라고 한다면 에토스는 ‘실천적’ 원칙들이다. 부르디외는 오래된 개념인 아비투스를 끄집어 내었다.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실천적 원칙들은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아비투스는 논리적인 동시에 도덕적, 가치론 적이며 실천적이며 이론적이다.
국내학자들은 아비투스와 가장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습속’을 사용한다. 아비투스의 개념은 습관과는 다르지만 습관이라는 개념이 상징하는 것과 흡사하다. 후천적으로 획득하고 항구적인 성향의 형태로 육체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현된다.
- 아비투스는 하나의 자본! 과거의 조건화의 산물로서 과거 조건들의 객관적 논리를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 아비투스는 역사에 의해 생산되었지만 역사로부터 상대적으로 떨어져 나온 개념으로 성향들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 아비투스는 단순하며 부분적으로 대체 가능한 원칙들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포괄하는 원칙들은 아비투스의 생산 조건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역되지 않는 무한한 해결책을 창안할 수 있다.
- 아비투스는 적응하는 힘으로 매우 드물게 전복되는 사회적에서 급진적으로 쉬지 않고 적응해 나간다.
아비투스는 하나의 ‘상황’에서 적응된 담론이라고 개념 짓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상황’은 무엇인가?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는 하나의 ‘장’에서 적응된 담론을 생산한다고 일컫는다.
장은 공간과 시간적으로 위치를(혹은 지위들)의 구조화된 공간이다. 위치의 속성은 공간 내에서 다른 위치에 의존한다. 위치들은 위치 점유자 들의 특성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장들은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매번 새로운 장을 연구할 때 특수한 장에서 고유한 속성들이 발견되는 동시에 다른 변수에 의해 특수화되는 여러 장들의 보편적인 체계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사회철학에서 말하는 공간과 장이 어떠한 연관이 되는지는 앞으로 탐구해야 할 사항이다. 공간이 여러 변수들에 의해 규정 지어진다는 것이 장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장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유희의 내재적 법칙들과 내기 물에 대한 지식 그리고 내기 물들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인정 할 수 있는 아비투스의 보유자들을 필요로 한다. 장은 구조화된 공간으로 그 장의 구조를 변형시키는 전략들을 원칙으로 한다. 모든 장에서는 하나의 투쟁을 발견 할 수 있다. 투쟁들은 그 장을 특정 짓는 특수한 권위에 의한 합법적인 폭력의 독점을 붕괴시키려 한다. 특수 자본을 독점하는 기존 권위자는 보전 전략을 지행하고 신참자는 전복의 전략, 즉 이단의 전략을 추구한다. 그리고 양쪽 모두 장 안에서 투쟁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 동의한다.
장을 연속적인 무대로 해서 이루어 지는 부분적인 혁명들은 유희의 근본 자체, 근본적인 공리, 유희 전체가 근거하는 최종적 믿음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장은 저항하고 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혁명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장의 지배 효과가 장의 변증법과 장의 투쟁 둘 다를 불가능하게 만들 때 장은 하나의 기구가 된다. 기구는 특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기능주의를 끌어들인다.
부르디외는 독특한 자신만의 시각으로 아비투스라는 사회학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사회학이 현실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는 사회학 존재를 제시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축적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부르디외주저서인 <구별짓기 상, 하>를 읽고자 한다면 대중적 저서를 묶은 <사회학의 문제들>을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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