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제3장 대담 ‘뫼비우스의 띠=무아(無我)’의 깨달음-3

in #kr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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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고 평안하라!
온 생명 부디 행복할지라!!!”

코이케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불교적으로는 그런 자유가 없음을 철저히 인지하고 마음에 피드백 시키면, 자아가 점점 붕괴되어갑니다. 자신이 인지한 정보에 대해 ‘이것은 뇌의 대본에 따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대본이고, 대본이라고 인식하고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대본이다 … 이런 식으로 반복하며 속도를 높이다 보면, 자아라고 믿고 있던 거대한 풍선이 쏟아지는 강타를 견디지 못하고 펑 터지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자아가 붕괴하는 순간이죠.

그런데 그 순간 ‘앗, 대본에 휘둘리다니 정말 바보 같았어!’ 하고 자기가 대본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중하게 대본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마음이 노예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을 조종하던 것 자체에 대해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거죠.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의 깨달음‘입니다. 교수님의 저서에선 자유의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하셨죠. 또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힘을 모르면 자유롭다고 믿으며 지낼 수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이케가야 : 네, 그 부분은 제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코이케: 불교에서는 자유가 없는 게 싫다는 느낌을 철저하게 들여다보면, 진정한 자유가 도달한다고 봅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죠.

이케가야 : 사실은 자유가 없는데도 자유를 느끼며 살도록 조종당한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과, 처음부터 자신은 자유롭다고 맹신하며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뫼비우스의 띠를 둘러싼 경험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죠.

더 생각해 보면, 자유를 부정하는 것도 자유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까지 파고들다 보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게 되죠. 다만 그런 과정에서 자기 붕괴를 한번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코이케 : 반응 양식이 변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무대 뒤쪽을 보면서, 전체 그림을 설계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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