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만 기억된 첫사랑의 추억, 그 기억을 떠올리다.
새해를 며칠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솔로였던 친구와 나는 저녁부터 동네 유흥가를 찾았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그 기회로 그녀를 알게 되었고, 곧 크리스마스와 새해라는 다소 뜻깊은 행사로 인해 외롭지 말아야 할 기회를 서로에게서 찾기로 했다.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었고 이전까지 변변하게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한 나에게 그녀는 첫사랑이었다. 당시 나는 어린 나이였고 또한 지내온 생활환경이 남자들과 유독 많이 지내온 탓에 여성의 마음을 얻기는 영 쉽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늘 실수였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했던 행동조차도 또 한번의 실수를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헌팅에 참여했던 그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가 그녀와의 데이트에 동석하기 시작했고, 그 후 몇 번의 만남들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친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느꼈고. 그녀는 유난히도 내 친구의 눈과 아이 컨택을 하려 빤히 쳐다보는 것이 종종 목격되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날, 물론 만남에 나갈 당시에는 마지막이 될지 알지 못했다.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나와 내 친구, 그녀와 그녀 친구 이렇게 4명이 모였다. 늘 술을 마신다기 보다는 입에 대기만 하는 그녀가 연거푸 소주를 두 잔이상 들이키기 시작했고, 그 풀리기 시작한 눈으로 내 친구와 아이컨택을 계속 시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는 술김을 빌어 내 친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음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이제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화가 치밀었지만 화가난 감정이 실리지 않게 최대한 신경써서 평어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내 친구한테 고백하는게 어때? 내 친구도 너한테 관심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부끄러운 듯 씨익 웃기만 했다. 나에게 이 상황은 너희 둘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너와 난 연인이란 말이다. 부끄러운 듯 씨익 웃는게 아니라 나에게 정색을 하고 따져야 함이 옳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말이 되는 얘기냐고..
그녀의 친구가 그녀를 부추기기 시작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말해!"
그 말에 난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다면 이를 지켜보는 내 친구라도 이성을 차렸을까? 아니다. 내 친구도 그녀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백을 직접 들으려는 듯 아주 조용히 말이다.
결국은 그녀의 입에서 고백이 나왔고 3명은 얼굴의 웃음을 띄며 조용히 기쁨을 나눴다. 내 눈치를 보느라 크게 축하는 못했겠지. 그렇게 난 이 세명에게 바보가 되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이제는 더이상 난 여기 모인 3명과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 내가 여기서 화를 내고 이 테이블의 분위기를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한들 내가 얻는 것은 없다. 난 그냥 떠나기를 선택했다.
내가 화가 났다는 마지막 표현을 새로 딴 소주병을 잔 없이 원샷하는 것으로 표출했다. 이 때 알았지만 소주병 원샷은 쉽다. 다만 몇 분 후에 토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둘이 서로 전화번호를 공유하는 것을 보고는 계산을 치르고는 쿨하게 나왔다. 쿨해 보이기를 원했지만 내 기분 상태는 절대 쿨하지 못했다. 그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내 내 친구가 나를 따라왔고, 따라와서 한다는 말이 그냥 '미안하다'였다. 나를 제외한 그 3명 중 내 편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어야만 했다. 내 고통이 조금 덜하게 말이다.
하지만 다음날 오후에 내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받지 않았다. 그러자 문자메세지를 나에게 보냈고 난 그들을 증오할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란다. 둘 중 누군가는 핸드폰을 잃어버린 탓에 잠깐 핸드폰이 없었고, 그렇기에 손으로 쓴 전화번호가 메모지에 오간 모양이다. 그 전화번호를 본인들이 틀리게 썼던 것이다. 결국 둘 사이에 실수가 나온 것이지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내 친구가 알고있는 그녀의 전화번호는 숫자 하나가 틀렸다. 숫자 하나만 친구에게 알려주면 될 일이지만 정말 그 것은 하기가 싫었다. 둘 사이를 연결해준 것만 해도 난 어마어마하게 큰 고통을 겪었는데, 세부적으로 전화번호까지 알려줘서 더더욱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는다는 것은 내 남은 자존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짓이었다. 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고, 너희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짓을 그만 하길 바랬다. 친구는 집요하게 하루종일 전화와 문자메세지로 나를 괴롭혔다. 어차피 이렇게 도와주는거 제대로 도와주라며..
몇 시간이 지나고 부터는 그녀에게까지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를 틀리게 써준 것 같으니 내 친구에게 자기 전화번호 좀 제대로 알려달란다. 다들 내 고통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걸까? 저 것들이 사람은 맞는걸까? 이렇게 되면 저들이 서로의 연락처를 몰라 결국은 못만나게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전화기를 꺼버렸지만 결국은 다시 켜서 둘에게 서로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생각을 바꿨다. 저들의 연락이라도 없어야 빨리 잊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둘은 3개월만에 헤어졌고 친구는 다시 나와 잘 지내자며 지속적인 연락을 해왔지만 도저히 옛 기억이 남아 그러지 못했다. 딱 한번은 보게 되었다. 친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과했지만 도저히 내 마음이 1도 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들을 다시 보지 않았고, 평생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나의 첫사랑이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편하게 말 할수 있지만(웃으면서 말할 수는 없다), 당시 그 고통은 정말 엄청났으며 생각보다 오래갔고 그 배신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직도 그 둘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에게도 그 때의 기억이 평생의 후회로 남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고 죽기 전에 내 고통을 한번쯤을 겪어보기를 바란다.
난 그녀와 1년여 가량을 만났다. 하지만 17년간 만나고 결혼까지 했는데도 알던 누군가에게 뺏겼다면 그 고통은 과연 말로 다 할수 있을까? @kimthewriter 님의 분노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배신의 분노는 상실의 슬픔보다 아주 크다. 단순히 잃어버린게 아니라 내 지인에게 강탈당한 것이라면 더욱더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는 말이다. 누가 먼저 좋아했건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둘 중 누구라도 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한 사람의 결정만으로도 새로운 연인관계는 맺어지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은 아무도 내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 상대방이 사과를 한다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럴 때는 그냥 안 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될 테지만, 상대방은 여기에서 이미 터를 잡을 터라 여기서 나가실 기미는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어쨌거나 세 사람의 개인사이기 때문에 깊숙히 관여할 수는 없다. 나 또한도 평소 성격이 집단에서 갈등을 일으키거나 한쪽 편에 서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김작가님의 심정을 어느정도는 이해하기에 부탁을 구해보자면, 상대방분께서는 김작가님께 마지막 배려를 해주셨으면 한다. 김작가님께 어떤 것을 내어주던 김작가님이 겪은 고통에는 훨씬 못 미칠 것이다. 이게 나의 생각이다.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감사합니다^^
스토리가 너무 절묘하네요. 그런 관계에서 17년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셨군요, 사연이 찡한 건지, 아니면 기쁜 건지 분간이 안되는 군요.
아닙니다 ㅜㅜ 전 그렇게 헤어졌고 17년은 다른 분 이야기로 넘어간 시점이입니다.
헐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상황 인데요 ㅜㅜ
그런가요? 저의 체험기는 맞습니다.ㅜㅜ
하아....ㅠㅠ 그 분노와 배신감은.....ㅠ
그러게요 ㅜㅜ
이게.. 잘못된 만남 일까요..
김작가님은........
아마도요?
뀨형.
지금 행복하게 사시며 창작활동 하시잖아요,.
난 뀨형에 포스팅이 엄청 반갑습니다.
다음 포스팅까지 또~~ 옆구리찌르기 외 끼어들기..^^
네 항상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포스팅해주셔서
뀨형에 대하 알게 될 기회를
준신게 더 감사합니다. ^^
ㄲ
아... 그렇군요 후..
뭐 전 그냥 그렇다구요^^
모든게 안타깝고 힘든 상황들이네요
할말을 잃습니다
그러게요~ 이 또한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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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hewriter님이 처하신 상황의 전후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musiciankiyu님이 당시 경험한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지금 kimthewriter님의 상황에 더 쉽게 공감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몰입하셨다니 부끄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