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산발, 치매, 선탠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4 years ago
  1. 전화가 온다. 더 자고 싶었다. 모르는 번호다. 전화를 받는다. 차를 빼달란다. 알겠다 대답하고 일단 눈을 감는다. 일어나야지.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고 나갈까 하다 귀찮아서 잠옷 차림으로 나갔다. 전화 한 사람은 이웃 여자였는데, 남자들이 같이 있다. 잠옷 차림에 산발..을 하고 나온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눈으로 훑는다. 어쩔 수 없다. 뒷마당에 주차했던 차를 빼서 앞마당으로 옮긴다. 앞마당 쪽 문이 잠겨있다. 열쇠가 없다. 다시 뒷마당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 다시 아저씨들과 마주쳐야 한다. 어떡하지 고민하면서 이왕 나온 김에 마당을 서성거리며 바람을 좀 쐬고 있었다. 혹시 엄마가 테라스 쪽으로 나와서 나를 봐주진 않을까 2층을 올려다본다. 아무도 안보인다. 그런데 마침 엄마가 앞문을 열고 나온다. 엄마 차도 빼달라고 연락 받았단다. 다행이다. 다시 아저씨들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 집에 올라와서 양치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돌아와서 나보고 왜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었냐고 물어본다. 왠지 엄마가 올 것 같아서 라고 대답하는 와중에 푸흐흐 웃음이 난다. 아침부터 빵 터짐.ㅋ

  2. 옷가게를 하던 엄마 지인분이 어느날 갑자기 장사를 접게 되었다.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치매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치매에 걸린 아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다. 노부부가 등장했던 아무르 라는 영화가 기억난다. 예전에 재밌게 봤던 일리있는 사랑 이라는 드라마도 언뜻 스친다. 거기에 등장했던 치매 환자 역은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65세 이상에 진단을 받으면 노인성 치매라고 한다던데, 단순히 나이가 듦에 따라 잘 걸리는 병이라고 하기엔 많은 병이 그렇듯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예상대로 여성 환자 비율이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기에, 소위 말하는 정신이 오락 가락 하는 상태를 경험했던 것 같다. 실수가 잦아지고 말을 할때 단어와 단어 사이 텀이 생기고 인지 기능이 퇴화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다. 엄마 지인분도 최근 들어 좀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고 했다. 말을 하는 도중에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때가 종종 포착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저 사람이 좀 맹해졌다고 여겼다 한다. 60대 초반으로, 치매 진단을 받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이기도 하니 주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 같다. 엄마가 덧붙인 말에서 무언가 좀 힌트를 얻은 것 같기도 한데, 평소 남편이 치매 진단을 받기 전부터 아주머니를 '아기 다루듯' 대했다고 한다. 종종 함께 골프를 치러 나가면 부인 옆에 붙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나 하나 알려주는 모습, 화장실도 늘 함께 가서 밖에서 가방 들고 기다리는 모습들이 자주 보였다고 했다. 여성, 스트레스, 의존성...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3. 요즘 햇볕이 좋아서 오전에 선탠을 하곤 하는데 그저께는 잠깐 나가 있었는데도 기온이 너무 높았는지 하루종일 머리가 어질 어질 했다. 오늘은 태닝오일을 바르고 나갔는데 향이 달콤했는지 벌 몇 마리가 날아와서 엉덩이를 쏘였다. 이제 그냥 얌전히 실내에서 지내는 걸로..

  4. 선크림 냄새. 태닝오일 냄새. 코코넛 냄새. 여름의 향기들. 여름의 끝, 가을의 문턱에서 맞는 늦은 여름 냄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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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영화 정말 진지하게 봤어요. 아모르. 아내의 입을 틀어 막았어야 했던 남자, 그게 답인가 의문은 아직도 드네요.

아, 영화 본지 좀 되면 내용을 잘 기억 못하는 편이라 잊고 있었는데^^; 다시 떠올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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