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검사 時歷檢査] 공화국의 슬픔
사람들은 모두 슬픔에 빠져 있다. 분노와 좌절을 넘어, 세상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어 슬픔에 빠졌다. 폭도라고 말하고는 그들이 머리에 뿔 난 외계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이웃 시민이라는 사실에 슬픔에 빠지고, 사형과 처단을 쉽게 내뱉으며 더 이상 어깨 걸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에 슬퍼한다.
눈에 불을 켜고 증오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슬픔이 있다. 같은 뜻과 의견을 가진 동지를 만난 반가운 마음 뒤에는, 배척당해 온 시간이 켜켜이 쌓인 슬픔 마음이 어려 있고, 이내 다시 발견하게 된 노선의 차이에는 또 다른 슬픔이 덧쌓인다.
슬픔의 원인은 '우리가 모두 하나'라고 주장해 온 주입의 시간들로부터일 것이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를 하고, 같은 텍스트를 배웠는데,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똑같은 사건을 목격했는데 왜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걸까?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너도 다르고 나도 다르고. 한 배에서 나온 형제와 자매도 다르고. 낳아 준 부모와도 다르고. 같은 교육을 받은 친구들도 다르고. 한 나라에 살고 있을 뿐 시민의 생각과 감정이 모두 다르고 다르고.
다름을 목격한 마음은 슬퍼진다. 내가 아는 그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환상이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슬픔을 강제한 적이 없다. 문화와 정서의 다채로움은 축복이지 슬픔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프다.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던 슬픔, 부모를 떠나 객지로 향하던 슬픔,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둥지를 떠나던 슬픔, 품속의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슬픔, 그리고 언젠가 맞이할 세상과의 이별을 예견하는 슬픔. 분리는 언제나 슬프다.
그러나 분리는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제국은 그 슬픔을 딛고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역사는 분리를 통해 신세계를 창조한다. 얼마나 더 많은 분리를 겪게 될까? 인류는 이제 빅뱅을 시작했을 뿐이다. 인류정신의 분리개별화는 이제 겨우 탯줄을 잘랐을 뿐이니.
슬픔 마음은 두려움을 앞세운다. 분리는 버려짐을 내포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리는 버려짐이 아니다. 분리는 독립의 시작이다. 온전한 개체로 자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리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배를 대고 바닥을 기던 아이가 마침내 제 발로 우뚝 서듯이, 우리는 슬픈 마음을 두려움으로 방어하지 말고, 자신의 다리로 자립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공화국의 슬픔이 이 나라의 시민들에게 몰아닥쳤다. 우리는 나와 다른 이웃들을 목격하자 두려움을 앞세워 응징하고 자제시키려 겁박하지만, 두려움은 폭력을 정당화할 뿐. 슬픔으로 돌아가야 한다. 먼저 나의 슬픔을 돌아보고, 나와 같이 슬픈 마음일 이웃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애도하지 않은 슬픔이 폭력으로 자신을 위장하지 않게, 다스려지지 않은 슬픔이 힘을 모아 자신의 집을 불태우지 않게. 슬픈 마음들을 위로해야 한다.
팩트는 없단다. 모두가 슬픔에 빠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