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이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motionalp 님과 @idea-list 두 분께서 진행하시는 방송이 있습니다. 불특정 소수를 위한 영감소, 줄여서 불소소 라는 타이틀을 단 방송입니다. 그동안 특정 물건을 주제로 방송을 진행해오셨는데, 이번 주에는 운동화를 주제로 방송이 업데이트 됐습니다. 물건에 대한 역사로 이야기가 시작돼서 물건에 담긴 에피소드, 문화 등을 풀어나가시는데 듣다 보면 몰랐던 스토리, 물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 등을 접해볼 수 있어서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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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주제가 운동화다 보니까 어렸을 때 신던 신발 추억부터 해서 중학생 시절에 신발 잃어버렸던 일까지 떠올라 재밌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이유가 뭐였는지 자세히 모르겠는데, 학교에서 농구화를 신지 못하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조던 시리즈가 유행하고 워낙에 고가의 신발이다 보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명찰에 두발에 신발에 뭔 단속이 그리도 많았는지요. 떠올려 보면 학생 시절이 아니라 스파이 시절을 보낸 것 같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뿐만 아니라 N모사에서 잠시 근무했던 기억도 떠올라 재밌었습니다.
N모사의 라이벌인 아디다스 제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적지만, 두 회사 모두 비즈니스 전개 과정이 비슷합니다. 초기에는 러닝에 방점을 찍고 제품을 개발했지요. 따라서 초기에는 아웃솔의 기능과 경량화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점점 기능이 확장되면서 분화가 되어 러닝, 스포츠웨어, 테니스, 트레이닝 등등으로 세그먼트가 나뉘었고, 패션이 결합하면서 멘즈, 우먼즈로 카테고리가 나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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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에서 에어백을 삽입한 신발이 대성공하면서 경쟁의 패러다임은 경량화에서 쿠셔닝으로 옮겨갔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탄성이 좋은 아웃솔과 미드솔을 개발하는데 집중했고, 발바닥의 쿠셔닝에서 선수를 뺏겼으니 리복 같은 회사는 펌프 시스템을 개발해 발 전체를 감싸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기도 하면서 한창 경쟁이 치열했었죠. 나이키는 경쟁 우위를 점하려 계속해서 새로운 개념을 찾았습니다. SHOX 를 개발하면서 아웃솔 기능 향상에 집중을 했는데, 사실 시장의 반응이 에어백 때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쁘지가 않았으니까.



따라서 기능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Luna foam 을 개발했는데, 루나 시리즈는 굉장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루나 폼은 일단 가벼웠고, 체중이 실리는 특정 포인트에만 넣으면 되니 크기도 작았던 데다가, 밀도가 높아서 두껍게 만들 필요도 없었죠. 쿠셔닝은 좋지만 무거웠던 에어백이나 무겁고 디자인까지 하기 힘든 샥스를 개선하기에 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이키의 루나 시리즈를 보면 신발들이 날렵하게 이쁜 모델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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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디다스에서는 헥사 구조의 변형된 에어백을 택해 아웃솔과 미드솔 사이에 집어넣거나, 아웃솔의 구조를 변형해 탄성을 높이는 등의 대응을 했지만 나이키가 치고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쿠셔닝에서 어느 정도 개선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자 바로 아웃솔의 유연성에 포인트를 찍고 제품 개발 드라이브를 시작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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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말랑말랑하면서 내구성이 좋은 소재를 찾아 헤매고 적용해 나갔는데, Hot knife 라는 기술을 통해 아웃솔이 극단적으로 꺾일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신발의 toe 부분을 잡고 위로 꺾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Vera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발 혓바닥 까지 toe 부분이 닿을 정도의 유연성을 구현해 내기도 했죠. Hot knife 는 아웃솔이 땅에 닿는 지점을 기준으로 해서 아웃솔의 3/4 높이까지 순간적으로 녹이며 칼집을 내는 개념입니다. 이 경우 러닝 시 아웃솔이 꺾이는 타이밍에서 저항이 적어지니 훨씬 러닝이 편해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까지도 개선점을 찾아야 하니 근무할 때 반드시 운동화를 신어야 했고, 사내에 러닝을 장려하는 문화가 뚜렷했죠. 트레드 밀에서 뛰고 있을 때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사람과 동급으로 취급해 아무도 터치하지 않고, 트랙 위에서의 러닝을 장려했으며, 마라톤 대회 참가는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습니다. 직접 신고 뛰어봐야 장단점을 찾는다는 논리. 그래서 만우절에는 아디다스 신발 신고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경쟁사 분석!



이렇게 극한까지 몰아붙인 개선, 개발이 한계에 부딪히자 그 후로는 갑피에서 차별화의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신발에서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드는 부분이 갑피입니다. 아웃솔이야 틀 짜고 찍어내면 그만인데, 갑피는 봉제사들이 일일이 갑피를 봉제해야 했다 보니, 봉제 선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제조 원가 절감의 핵심 과제였기도 했죠.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타겟 마켓 별로 가죽 사용에 제한이 생기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인도 시장의 경우 소가죽 대신 돼지가죽으로 갑피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또 돼지가죽은 가공이 힘든 애로 사항도 있어요.



따라서 이 갑피 부분에 자동화를 꾀하면서 Fly Yarn 기술이 나오게 됩니다. 시작점과 끝부분이 있으면 각 점을 한 땀 한 땀 꿰매서 잇는 게 아니라 시작점에 강력하게 태킹을 하고 바늘이 훅 끝점으로 옮겨가 마무리 태킹을 하는 방식입니다. 양 포인트 사이 실의 텐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계가 해치웁니다. 인건비 세이브죠. 또는 신세틱 소재를 갑피에 적용해 디자인 포인트는 레이저로 깎기도 했습니다. 올려놓고, 버튼 띡, 지이잉- 치지지직 하면서 깎아버리는 거죠. 사람 한 명이면 됩니다.



핫멜트라는 기술을 통해 여러 레이어의 소재를 파트 별로 그냥 붙여버리는 기술도 나오게 됐습니다. 그네들 기밀이라 자세한 기술은 힘들지만, 디자인 때문에 여러 레이어의 소재를 꿰매면 투박해지고 안 이쁩니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사이에 전쟁의 서막이 오르는 거죠. 죽이네 살리네. 근데 핫멜트를 사용하면 위치에 맞춰 파트 별 소재를 올려놓고 열만 가하면 서로 붙습니다. 평화가 찾아오고 인건비도 세이브 됩니다. 근데 개발 초기에 co-worker 가 테스트한답시고 뜨거운 물에 빨아봤더니 각 레이어가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 주르륵 떨어지는 이슈가 있었습니다. 문제점을 찾아서 다행이었지만 당장은 일거리가 늘었기에 당시 팀에서 이런 조크가 유행했습니다.


아니 신발, 국 끓여먹을라고 했음?



이렇게 진화하기 시작한 갑피는 최근에 Fly Knit 로 오면서 정점에 달한 것 같습니다. 아 모르겠고 그냥 갑피 전체를 짜버려. 가볍고, 기계가 다 해주면서 이쁘잖아. 모르긴 몰라도 불량률도 획기적으로 낮췄을 것 같습니다. 아디다스도 아예 갑피 전체를 knit 로 짠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최근에는 socks 형태에 아웃솔만 붙인 운동화까지 스토어에서 보이고 있네요. 아예 봉제선을 없애기로 작정한 듯 삼선이나 Swoosh 도 기존의 봉제 방식이나 고주파로 붙여버리는 방식에서 탈피해 스프레이 작업으로 대체하는 추세가 눈에 띕니다. 제가 보기에는 갑피에서 더 이상 차별 포인트를 찾아내기가 힘들 것 같은데, 조만간 이들의 경쟁 포인트는 다시 아웃솔로 옮겨 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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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과 패션은 공존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능성에 기반한 차별화와 디자인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이게 힙한 거야 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마케팅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야만 합니다. 이렇다 보니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마케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을 잘하는 게 아니라 마케팅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아디다스 입장에서는 스트릿 같지만 기능도 우수하다는 걸 소비자 뇌리에 심어야 하고, 나이키는 뭔가 운동 그 행위 자체에 더 적합할 것 같지만, 우리도 힙 하다라는 걸 어필해야 합니다. 이 둘을 잘 버무리려면 마케팅의 힘이 없으면 안 되고, 그렇게 운동화는 더 이상 그 목적뿐만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화를 그 안에 담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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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자세하다 했더니 실제 회사에 계셨었군요! ㅎㅎ
한창 나이키만 신다가 요즘은 아디다스로 넘어온 1인입니다 ㅋㅋ

짧게 나마 밥 벌어 먹고 살았다 보니 주워들은 게 좀 있습니다.ㅎㅎㅎ

저도 나이키만 신다가 최근에 아이다스로 넘어왔습니다. 부스트 쿠셔닝은 정말이지 너무 편하네요. 나이키 리액트 보다 아디다스 부스트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D

좋은글 즐감했습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와우!친근한 운동화 이야기가 이렇게
심오하고 재밌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감탄하면서 즐겁게 읽었어요!
덕분에 신기한 것들 많이 알게 됐네요ㅎㅎ

유익...한 내용이 있었..나요?ㅎㅎㅎㅎ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브랜드다 어떻게든 사람없이 빠르게 커스터마이징으로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에 총력을 기울이는 듯 해요. 미국 내에서는 시범적으로 리테일을 이미 선보이고 있기도하고요. 언제쯤 확장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문제일 것 같아요. 분명 명과암이 있겠죠. 운동화 브랜드에서 일하신 적도 있으시군요. 방송듣고 요렇게 연장선의 글까지 써주시니 넘 뿌듯하고 좋으네요. 제가 몰랐던 부분도 또 알게 되고!! :)

어떻게든 생산 리드 타임과 제조 원가를 줄이고 낮추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연구를 합니다. 생산 리드 타임 분석해서 최적화 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이노베이션이라고 제조 원가 줄이고, 신소재 찾아다니는 팀도 있고 다양합니다. 시장에 빠르게 반응하는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향하는 세그먼트도 있고, 스테디 셀러는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하고.. 굳이 한 생산 방식에 얽매이고 싶어하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마켓 리더이니 가능하겠지만요.ㅎㅎ

굉장히 편했었는데, 편해서 그만둔 이유도 있네요.
게다가 일이 편해도 사람이 힘들면.. 뭐 그 다음은 다들 아실테니 요기까지만.ㅋㅋㅋ
방송 잘 들었습니다. :))

단순히 디자인 측면으로만 보면 나이키가 완전 우세한것 같습니다.

요새는 아디다스 디자인이 더 잘 나오는 것 같아요. :D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왕... 신발이란 주제 하나로 이렇게 글을 쓸수 있다는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스팀잇에서 이런 글들 읽으면서 놀아야지;;;
제 글로 돈을 번다는 생각은...ㅋㅋㅋㅋㅋ

친화력 갑 찌찌님께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SNS 는 소통이 최고 아니였나요?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고 그 친화력이 알씨 때문에 효력을 못보고 있습니다....ㅜㅜ
완전 벙어리 됐다가 임대 쪼금 받고 이제 활동 시작했습니다. ㅋㅋㅋ
sns는 소통이 최곤데 알씨가 막고 있네요 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조던시리즈 좋아하면서 나이키 팬이 된지 오랜데.. 요즘엔 아디다스나 다른 브랜드로 조금씩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ㅎㅎ

저도 최근에 아디다스로 넘어왔어요.
물론 집에는 평생 신어도 남을 만큼의 나이키 신발이 아직 쌓여있습니다만;; 아디다스 부스트를 신어 본 이후로 나이키를 안 신게 되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

재밋어요.
운동화라는 주제로 이렇게 이야기를 해볼수도 있겠네요 오홍~~
전 니트로 된 신발은 왠지 못사겠던데 말이에요 ㅎㅎㅎ 많이 나오긴하더라구용.

니트로 된 신발에 길들여지니까 이제는 메쉬도 답답해서 못신겠더라고요. -.-
오랜만입니다. :))

오랜만이죠~^^
오호 또 그런매력이 있나요. 한번 신어볼까 팔랑이네요 허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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