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페미니즘, 미러링의 풍경

in #kr7 years ago (edited)

   이 논의에서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여러 제약을 받는다. 일단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무슨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남자면, 일단 남자이기 때문에 이해를 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된다. 만약 내가 글의 첫문장에, 나는 엄마와 누나 둘, 외할머니의 손에 자랐다고 쓴다면, 그렇다는 이유로 너의 표현에 여성혐오가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물음을 받게 된다.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할 생각이라기 보단, 차라리 남녀의 불평등을 목격하며 자랐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무서워서,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득이다. 입을 다물지 말고 용기를 내 말을 하라는 성차별 폭로 캠페인 그 반대쪽에서는, 모순되게도, 결백하지만 입을 때면 안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나같은 존재가 생긴다. 요즘의 온라인 투쟁은 너무나 소모적이고 무조건 자기가 맞다 이기 때문에...

   나는 내 취미와 전공의 특성상 남자보다 여자들과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이 남자가 많은 곳에서 일을 하는 것과 어떤 능률에서 차이를 가지는지는 정말 모른다. 여러 원인이 얽혀 나오는 것이 결과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의 문제는 사실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자와 있으면 상당히 불편한 경우가 생긴다. 그 분들이 남자 욕을 하기 시작할 때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남자는 단순하다. 아무래도 남자는 여자보다 어리다. 내 남편과 자고 싶지 않다(이걸 왜 내가 있는 곳에서 꼭 말을 해야 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액자가 남편의 머리 위로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어봤다. 남자는 절대 이해 못한다... 등등이다. 그리고 늘 그런 말 뒤에는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은 나중에 그러지 마세요, 라는 말을 듣는다. 그 때 놀라는 바람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고 나는 아, 네, 네, 하고 만다.  

  그렇다고 모든 남자욕을 내 욕으로 들을 이유는 없다. 그렇게 듣지도 않고 그렇게 의도하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자 앞에서 남자가 자기들 끼리 주고받는 여성혐오표현은 어디, 그 여자가 들으라고 일부러 한 것인가? 그렇지 않듯이, 여자들이 내 앞에서 하는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도 순진하게 볼 수는 없었다. 

 사실 난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 발화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미주알 고주알 적는 일을 해본 적도 없고, 남자는 성희롱을 당할 수도 있다고, 조심하라고 교육받은 일도 없다.  

좀 더 적어보자. 나는 주로 문학작품에 대해 토론해야 하다보니 작품 속 인물의 남성성 여성성을 따질 때가 있다. 그때보면 늘 과격함, 폭력적, 가부장적, 강압적, 충동적인 성격은 남성적이라고 의식없이 이름 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부드럽거나 친절하거나, 희생정신을 보이거나 어떤 인물의 상처 치유에 기여하는 인물은 늘 여성적인 인물로 분류되곤 한다. 어머니의 이미지로 보는 것 정도야 문제로 삼기 그렇지만 무조건 여성적이다.. 로 보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나는 배우면서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 인물을 여성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는, 여성이라는 틀에 가두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근데 거기서 문제는, 남성우월주의자가 명백한 라캉을 들어서 늘 심리를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클라인펠터를 인용할 방법은 없을까.

학교 바깥에서도 이런 일은 많았다. 내가 내 소설을 냈던 문예지 편집자들(모두 여성분들이다)과 술을 마시면서 들은 말들이다. 사실 그분들은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직접적인 이성관계로 엮일 일은 없었다. 그러기에 더 많이 들은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 생각에는 지나가는 남자, 40대 이상이면 여성혐오 안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한 편집자 분이 내가 알기로 당시 40대였다. 늙은 남자들은 다 그렇다는 말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분이 40대라는 점을 내가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전부터 나에게 남성 비하 발언을 자주 하셨다. 언젠가 내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도 답답한 소리를 들었다. 여자친구가 자신이 살이 쪘냐 묻길래,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살이 쪘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화를 내어 좀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편집자분과 하게 되었다. 편집자분은, 여자는 무조건 예쁘다는 말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다투면 무조건 먼저 잘못했다고 말을 해줘야 한다, 이런 말을 했다. 그러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다른 이야기 끝에, '근데, 남자들이 대체로 어린 건 맞는 거 같은데...'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때 좀 발끈해서, 아니, 여자는 무조건 예쁘단 말 들어야 하고 살쪘단 말 들으면 안되고, 무조건 미안하다 소리 먼저 듣고 싶어한다고, 제가 여자는 어리다, 단순하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잖아요, 하고 반문했던 일도 아직 기억난다. 이게 요즘 많이들 한다는 미러링일까. 별로 통쾌하진 않았다.

이런 일 말고도 많았다. 다른 편집자분은, 대뜸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스포츠바에서 어울려 맥주를 마시다가, 호주 럭비를 보며 열광하는 남자들을 보고, 아유, 남자들이란, 진짜 원시적인 동물들이야. 치고박고 저걸 왜 하는 거지? 동시에 럭비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한 폭력성과 단순함을 '남자들이란' 에 넣어 비꼬며 몇마디 덧붙였다. 남자는 나말고도 있었다. 다들 못 들은척 다른 이야기를 했다. 헤테로.. 뭐 그런 어휘도 썼던 것 같았다. 그럼 여자는 너무 섬세해서 십자수를 했느냐, 그러다가 후대에 와서 그만큼 섬세하지 못한 당신같은 분들이 그것을 보며, 여자를 여성성의 테두리에 가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냐.. 뭐 그런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굳이 만들어서 내가 미러링을 해야 했을까? 난 술자리 말다툼 같은 걸 해본 적도 없고 어차피 일과 관계되지 않은 부분에서는 많은 마찰이 필요 없기 때문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그 조롱이 별 것 아니었는데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으면 또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선생님 너무 예민하시다!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은 럭비의 폭력성을 굳이 남성성에 붙여 꼬아 말한 그 예민함은 그 순간 쿨함으로 바뀌어서 나를 달래려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들은 일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실컷 내가 있는 곳에서 남자욕을 한시간 반쯤 한 여자분 가운데, 두세분 정도는 나중에 따로 만났을 때 그 날 혹시 불편하지 않으셨냐고 물은 일이 있다. 나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하다가, 다른 분이 물었을 땐 사실 좀 그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에이,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선생님이 역시 감수성이 있으셔서 안그래도 걱정을 했어요. 하고 말했다. 가장 찰지게 욕하던 사람이 왜 이제와서 부드러운가. 나는 괜찮다며 웃으며 인사했다. 실컷 불편한 소리 들은 뒤 상사 앞에서 웃음 짓는 여사원처럼 말이다.


내가 겪은 일은 이렇듯 아주 사소하다. 하지만 원래 일이란 것이, 당한 사람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으면 사소하지 않은 일이 된다.

차별에 대한 논쟁에 가지는 나의 관심 정도, 나의 젠더 감수성, 그리고 다른 모든 곳에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내가 얼마나 예민한가, 이것을 굳이 말하며 나의 위치를 조각한 뒤 어떤 주장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분명 복합적이고 남들만큼의 실수를 하며 살아가는 보통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의 감정 말고 남들의 감정에도 조금 예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자신이 겪은 일에만 예민하고 남의 일에 그러하지 못하면서 반성없이 자신의 섬세함을 주장하는 것은 예민이 아니라 기능고장일수도 있다. 그것이 요즘 많이 보이는 과격한 페미니즘과 미러링의 풍경아닐까. 미러링이라는 것은 거울질이다. 못난 것을 비추었을 때 못나야지, 아무거나 추하게 비출때는 거울의 기능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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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치의 문제 같습니다.
요즘은 그 기준치를 극단적으로 높게 요구하는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쓰고나서도 저마저 기준이 뒤죽박죽인걸 보니 역시 힘든 문제 같아요 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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