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괜히 - 광교호수공원에서 1

in #kr7 years ago

사람을 만나기 싫어졌던 날들 끝 광교호수공원으로 물너울 만나러 갔더니 오리떼 울음소리에 헛헛한 마음 마른 크래커처럼 마냥 바스러졌다 높고 낮음도 길고 짧음도 없었던 오르페의 흐느낌이 기포처럼 바글대던 물가에 깊은 숨 하나 내려놓고 주저앉다 그저 사람이 만나기 싫어지고 그림자마저 거추장스러워진 안개 위 짙은 낮 호수는 달 같은 해를 감추지 못해 작은 울렁임으로 밝음을 토해 놓고 나 몰라라 하는데 그 꼴이 그리도 싫더라

안개가 달과 해를 숨긴 날의 정적이 눈부시지 않아 좋았고 물 속 부유물처럼 깊게 가라않은 마음을 까불러 일으키던 시간의 발작도 숨 끊어지지 않았다 갓난쟁이처럼 애달팠던 삶의 경계에서 이젠 애증이 되어버린 가위눌림을 겪다 안간힘으로 되돌아왔더니 사람이 고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간 광교호수공원은 반전처럼 아파트의 투영과 오리발의 허적임과 풀들의 살랑임까지 담아 조롱했고 그런 울렁임이 마냥 싫지 않아 텅 빈 벤치 위 쓰다만 지우개처럼 널브러졌다

벅벅해진 각막 뒤 낡은 홍채는 실핏줄 터뜨리며 자꾸만 멀어지던 미세먼지를 놓치고 습기 자욱한 어느날 작다리 짚고 건들거리며 걸었던 수변산책길에 수줍은 갈대와 연잎 대는 미지근한 물살에 헤프게 살랑거려서 그냥 미웠다 거짓말처럼 꼬리연 하나 둥실 띄우던 물가 풀씨처럼 한없이 나풀대던 먼지 속 눈물 한 방울 마주하다 술 한 잔 하고 싶었던 메마른 봄날 아지랑이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졸갑증이 먼저 고개를 디밀던 좁은 여우길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사람이 싫어진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이 싫어졌다는 어쭙잖은 실언을 울음처럼 내뱉고 돌아서는 등이 왜 그리도 시린지 몰랐다 막창집 주인의 괜한 살가움도 친절하지 않은 공간 너머 완강했던 공기도 버겁던 시간의 날카로운 촉수 그 시간의 침묵 속에서 사람 속 낯설음을 거부할 수 없었던가 지친 영혼을 격렬하게 흔들던 격한 충만의 가녀린 떨림 그 시간 나는 상처 입은 하이에나처럼 미치도록 누군가를 물어뜯고 싶었다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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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람이 싫어질 때 저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이 싫어지는 거, 공감해요!

네. 아주 가끔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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