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 살기] 여보, 아버님 댁에 cctv 놓아드려야겠어요?

in #kr6 years ago (edited)

인력사무소 소장에게나 업자에게나 미운털이 박힌 모양이다. 업자와 소장이 군소리 안하고 싼 값에 일하는 일꾼을 선호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덕분에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들이 점점 나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들은 잘 뭉친다. 어느 사무소가 일을 잘 보내주는지, 어디에 일이 많은지 낯선 타국인 이곳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아침마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인다.

덕분에 다시 그나마 일회용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지붕 있는 인력 사무소가 아닌 길거리로 나섰다. 세상의 막다른 길에 초라하게 서 있는 이 거지 같은 기분을 다시 매일 아침마다 느끼고 견뎌야 한다. 며칠 전 공구리를 같이한 반장도 그 초라한 기분이 싫어 그 업자의 일만을 한다고 한다. 차량이 와서 멈출 때마다 기웃거리며 몰려드는 사람들의 뒤통수들을 보면서 일과 상관없이 얼른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그때쯤 suv가 한대 서더니 차에서 내린 업자가 다가온다.
"벽돌 까는 일인데 갈라요?"
"도청입니까"
"일반 가정집"
"얼맙니까?"
"13개"
"네"

그렇게 삼사십 분 떨어진 외곽의 한적한 가정집에 벽돌 까는 일을 돕는 데모도로 간다. 차에 올라타니 조수석에 한사람이 더 있다. 둘 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돌 만지는 사람처럼 약간 날카롭고 다부져 보인다. 두 사람의 보조를 하려면 하루 종일 바쁠 게 눈에 선하다.

가는 내내 앞자리의 두 중년 사내는 몇 달 전, 며칠 전 그리고 며칠 후의 낚시 이야기를 반 토막씩 주고니 받거니 한다. 난 뒷자리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강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낚시에 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설령 잘 안다 해도 먼저 말을 섞어 봤자 십중팔구 시다하면서 하대 당하는 일만 앞당길 뿐이다.

입 꾹 다물고 도착한 현장은 국도 도로변에 위치한 조립식 가정집이다. 산비탈을 개간한 터에 강관과 판넬로 지은 조립식 집과 작은 컨테이너 두 동 그리고 앞마당과 뒤쪽의 경사진 밭까지 10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는 할머니 혼자 살고 경작하기엔 꽤 넓은 공간이다. 앞마당에는 어딘가에 깔렸다 교체된 빛바랜 보도블록이 잔뜩 쌓여있는 걸로 봐서 저걸 날라야 할 모양이다.

아침참을 백설기에 미나리 무친 걸 주신다. 붙임성 좋은 중년 사내가 음료수 대신 술 없냐고 넌지시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냉장고를 열다가 이미 속을 훤히 보여 버린 것을 직감한 듯 딸이 사다 준 외국 맥주라며 버드와이저 캔 맥주를 건넨다. 그리곤 맥주에 들러붙은 공짜 땅콩처럼 딸 자랑을 시작한다.

딸 자랑의 끝은 최근 설치했다는 cctv다. 집 안팎을 훤히 비추다 못해 멀리 있는 딸이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때 떠오른 어느 보일러 회사의 아주 오래 전 cf속의 대사가 이젠 이렇게 바뀌어야 될 성 싶다.

"여보, 아버님 댁에 cctv 놓아드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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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cctv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혼자사시는 부모님댁에 괜찮은 것도 같아요~

아.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2달 전 글이 마지막 글이네요.

건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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