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기] 버닝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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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동 감독/유아인,전종서,스티븐 연 주연

영화와 썩 어울리는 제목 같지 않다.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시] 그리고 [버닝] 갑자기 이창동 감독이 작가 시절 쓴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단편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영화제목을 이런 식으로 지었으면 어땠을까? 영화라서 더 건조하게 제목을 짓는 건가? 아무튼 무지막지하게 찌르고 자르고 피 흘리는 여름겨냥 공포영화가 연상된다. 비슷한 제목의 외산 공포 영화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태우다나 태움보다 나은 건가? Burning.

관객들이 다양하다. 이십대는 물론이고 다정히 손잡고 온 중장년층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영화 상영 시간이 길다. 두 시간 반쯤 되는 것 같다. 중간에 몇 분은 영화를 끊고 화장실 가신다. 근처에 앉은 중년층들이 자꾸 들썩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군것질거리들을 싸온 비늘봉지들이 자주 부스럭거린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데 지루하고 평이하게 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때쯤 남녀 두 주인공 사이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위대한 개츠비" 스티븐 연이다. 이젠 뭔가가 시작되겠구나. 하지만 포르쉐 911 카레라 S를 탄 남자 스티븐 연와 낡은 기아 더블캡 봉고트럭을 탄 유아인은 여전히 탐색 중이다.

카메오로 이제는 MBC 사장이 된 뉴스타파의 최승호 피디와 배우 문성근이 유아인 아버지역과 아버지 친구이자 아버지를 변호하는 변호사역으로 출연한다. 문성근에겐 독백에 가까운 장황한 대사가 있다면 최승호에겐 피고석에 말없이 앉은 옆모습조차 멋쩍고 어색하다. 역시 배우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보다.

영화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괜찮다는 입소문이 돌고 있다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극장엘 갔다. 영화 초반 남녀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마트 바로 옆 건물사이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두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침과 가래를 차례대로 뱉어가며 담배를 피우는데 감독 눈에는 한국의 이십대를 대변하는 행동양식에 저 모습이 꼭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긴 언제부턴가 외국 나가서 저렇게 담배피우는 동양인 젊은이들 중 십중팔구가 한국말을 쓴다.

세 주인공은 논밭 뒤편 산등성이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다 대마초를 나눠 피운다. 스티븐 유가 펄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꺼내어 태우는 것으로 들었는데 그런 은어는 없고 한국에서는 떨이라고 한다는 검색결과로 봐서 그걸 잘못 들은 듯하다.

합법적으로 필 수 있는 몇몇 나라와 미국의 몇 개 주가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안 된다. 앞으로도 합법화는 남북통일보다 더 어려울 듯하다. 언제 합법화 되어 피워보나 기대한 나 같은 이들에겐 이 영화가 그 길을 더 요원하게 만드는데 일조할 성 싶다.

여주인공 전종서가 대마를 나눠 피운 뒤 석양을 바라보며 웃옷을 훌훌 벗고 마치 새가 된 듯 날개 짓 하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그 뒤 여주인공이 정신까지 놓아버리니 한국마약퇴치 우짜고 하는 단체의 홍보영상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아무리 알츠하이머에 효과가 있고 의료용 가치가 입증되고 담배와 비교해 중독성이 미미하며 술처럼 폭력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타워팰리스보다 높이 쌓여도 관문마약 역할을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담배와 술은 되고 대마초는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은 21세기 전반부를 지배할 성 싶다.

배우는 역시 훌륭한 감독을 만나야 한다. 최근 누적 관객 수가 6명인 한국영화를 인터넷을 통해 보면서 제 아무리 뛰어난 기량이 입증된 배우라 하더라도 감독 하나 잘못 만나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끝까지 보기를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이창동 감독이 발굴해 낸 원석 같은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세주인공 중 유아인만 아는 배우였는데 나머지 두 배우 역시 결코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대체로 지루하고 힘이 없다. 복선은 때때로 너무 친절하고 도식적이다. 보는 내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와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떠올랐는데 문외한인 내가 이 정도면 아마 다른 분들은 상당히 많은 작품 속 장면들을 떠올렸을 듯하다. 역시 세상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참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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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먼저 읽고 싶어지네요
연기는 걱정 안되더라고요 ㅎㅎ

저 태국에 있는데 다음주에 여기서도 개봉합니다. 한 번 보러가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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