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 살기] 패턴

in #kr7 years ago (edited)

하루 종일 걷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지금 걸음이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바삐 움직이기엔 아직 무리다. 며칠 더 오월 햇살을 멀뚱히 피해 다녀야 한다. 런닝 머신 위의 걷기나 뛰기는 할 수 없지만 근력 운동은 가능하다. 다음 주면 체육관이 한 달 넘는 긴 휴관에 들어간다. 그전에 하루라도 더 가기로 하고 운동복을 주섬주섬 챙긴다.

적당한 플라타너스 그늘에 차를 세우고 기형도 시집을 꺼낸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로 시작해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로 끝나는 <질투는 나의 힘>에 이어 외울 시를 골라본다. 몇 줄 되지 않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노골적이고 직설적이다. 외우지 않기로 한다. 제목을 <노인들>이라고 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체육관이 한산하다. 한 사람만이 목을 늘어뜨리고 구부정한 어깨로 기구들 사이의 통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두 번 반사된 거울 속에 비춰진다. 그 노인이다.

없는 정수리 머리를 옆머리로 몇 가닥 단정하게 올려서 가린 대머리와 안경, 호리호리하고 큰 키, 구부정한 어깨, 신경질적인 주름들,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 이 곳을 다닐 때부터 마주치던 노인이다. 일주일에 많아야 두 번 올까말까한 나와 가장 많이 마주치는 걸로 봐서 매일 오는 게 분명하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운동기구를, 자신의 순서대로 밀로 당긴다. 자신의 운동 패턴 사이에 끼어 든 타인의 자리를 쉽게 건너뛰지 못한다. 그것은 융통성이 아니라 자신의 룰, 패턴을 깨는 것이다. 이제 겨우 한 세트 끝난 타인에게 가서 다 했냐고 묻는다.

처음 이 노인이 내 눈에 띈 것은 밖에서 신은 신발을 그대로 신은 채로 들어온 신참 아줌마를 신경질적으로 나무랄 때였다. 흙과 먼지가 묻은 신발을 그대로 신은 채로 실내를 돌아다니면 그 흙과 먼지를 누가 마시냐며 신랄하고 야멸차게 꾸짖었다. 아줌마는 한 마디도 못했다. 아줌마 쪽을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겸연쩍은 웃음을 연신 주워 담고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으레 켜 있기 마련인 텔레비전을 꼭 리모컨을 찾아서 타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꺼버려 체육관을 고요하게 만들곤 했다. 반대로 오늘은 꺼져 있는 텔레비전을 켜서 야구중계에 채널을 맞췄다.

세 번째 눈에 띈 것은 랫 풀다운이라는 등 운동 기구를 아주 욕심껏 당기다 못해 상체를 모두 뒤쪽에다 실어 누울 듯이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지적해 드릴까 몇 번 망설였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구부정하고 마른 노인네가 왜 그리 무게에 욕심을 내는지 안타까움은 곧 꼴사나움이 되었다. 마치 그 정해진 무게를 들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감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연신 숨을 쉬쉬 몰아쉬며 숨 가쁘게 하는 동작이 볼 때 마다 늘 한결 같았다.

순서 또한 등 운동과 허벅지 운동 순으로 한 세트를 정해서 어김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운동 사이사이의 쉬는 시간은 저쪽 통로를 돌아서 이쪽으로 쉬쉬거리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오는 중간에 누군가가 잠깐 통로를 막고 있으면 다른 통로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던 걸음을 멈춘다. 비키라는 것이다. 좁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옷장과 거울 사이를 오가는데도 엄격한 규칙이 있는 듯이 비켜가지 않았다.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할 수밖에 없는가?

잘 늙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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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ㅎㅎㅎ
그 허물어짐에 기품이라는 것이라도 더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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