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 살기] 공구리

in #kr7 years ago

오늘이 후덥지근한 날이었는지는 라디오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만큼 냉방시설이 잘된 곳에서 지내서가 아니다. 어제 업자의 전화를 받고 공구리 작업을 한다는 현장에서 투입됐다. 포장된 도로가 없는 밭까지 트랙터나 트럭이 왕래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농로 포장 사업쯤 될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밭주인이 시청에 신청을 하면 예산과 우선순위를 따져 길을 닦아주는 것 같다.

업자는 시청과의 그런 계약을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서 여러 군데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열흘 정도 쉬다 나간 일이라서 아침 일찍 농수용 저수지의 개구리도 새소리도 반가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미콘이 올라올 수 없는 협소한 농로라서 큰 길의 레미콘에서 세렉스라는 다목적 4륜 트럭에 타설할 콘크리트를 조금씩 싣고 올라와서 차례대로 부어주면 경사도를 보고 평평히 길을 만들고 그 안에 와이어 메쉬라는 격자 모양의 사각 철심을 넣어서 양생 후의 콘크리트 균열을 방지하는 그런 작업이다.

이런 공구리 작업은 초보가 힘으로 하는 작업이 아니라서 연세가 지긋하고 경험이 많은 노인분들이 전담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반장과 나 둘 뿐이다. 뻔하다 인건비를 아끼려는 업자가 3명 정도가 해야 할 일을 둘에게 시키는 거다.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한다. 겁먹는다고 해결될 것도 없다. 농로 한켠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장화로 갈아 신는다. 얼굴과 옷에 온통 공구리가 묻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물과 자갈 그리고 시멘트로 섞여진 콘크리트는 땅에 쏟아져 내리면서 물처럼 튀기 마련이다.

게다가 장화를 신고 공구리 속에서 삽질과 갈퀴질 등을 하다 보면 양생 전의 콘크리트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1000리터(1m3)의 물의 무게가 1톤인데 레미콘의 1루베(1m3)의 무게는 2-2.3톤 정도 된다. 레미콘 한 차에 6루베 정도를 싣고 다니므로 보기와 달리 공차중량 14톤에 콘크리트 무게까지 대략 27톤 이상의 무게를 가진 대형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회전하는 로터리에서 레미콘 옆을 빠른 속도로 회전 한다든지 덩치가 있는 대형차에 비해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나 광고판처럼 레미콘의 원통이 빙글빙글 돈다고 만만히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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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 느긋하게 먹을 수 없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콘크리트가 굳기 시작하기 때문에 점심은 김밥 두 줄, 그것도 채 다 먹기 전에 콘크리트가 쏟아진다. 그래서 보통 일을 끝내면 조기 퇴근하는 돈내기를 많이 하는데 오늘 일은 5시를 넘길 분량이다.

4시쯤 되자 몸은 이미 파김치다. 반장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나보다 일은 더 한다. 마무리를 하면서 내려오면서도 한 순간도 쉬질 않는다. 둘이서 마실 물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는 업자 욕을 양껏 하고 서로 껄껄 웃는다. 업자는 세렉스에 공구리를 싣고 오면서 창문을 조금 내리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 그때까지도 날씨가 더운 줄 몰랐다. 그저 한 시라도 얼른 이 물새는 장화에서 발을 빼고 내 무게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6시쯤 일이 끝났다. 업자가 일당을 은근히 깎으려 한다. 미리 정하지 않았으니 또 한 번 신경전을 해야 한다. 한 사람분의 인건비와 경비, 참값, 점심시간, 휴식 없는 10시간, 한 시간의 연장까지 업자가 챙겨간 이득은 일언방구도 없다.

오늘은 후덥지근한 날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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