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빙그레 캡틴 컵라면

in #kr7 years ago

가끔 이것이 몹시 먹고 싶어진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컵라면이지만 이제는 먹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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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캡틴 컵라면>이다.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맛, 빙그레 캡틴 컵라면. 빙그레는 라면사업에 늦게 진출했다. 백년대계를 바라보았던지 앞으로 빙그레의 흑자를 서서히 늘려줄 젊은층과 학생층을 타겟으로 삼았다.

90년대는 미국이 세련이자 미래이던 시절이다. 영어를 아무리 못해도 전국민이 알 만한 흔한 영단어로 온갖 제품명, 상호를 만들어 트렌디함을 뽐내곤 했다.

그리하여 캡틴 컵라면. 에러다.

라면도 컵라면도 일본에서 유래했지만 한국인이 라면에서 추구하는 맛은 대체로 한식이다. 그런데 생뚱맞게 한국어도 아니고 어떤 맛도 연상이 안 되는 캡틴이라니...

여기서 아이러니는 캡틴 컵라면이 한식의 국물맛을 놀랍도록 멋지게 구사했다는 것. 소세지 건더기 등 어린것들의 싸구려틱한 입맛을 배려했음에도 신토불이스러운 국물맛과 잘 어울렸다. 캡틴 컵라면은 뒷맛이 개운하기까지 해서 소주안주로도 그만이었다. 캡틴의 맛은 현재 전설의 레전드로 기억된다.

  • 캡틴이라는 정체불명의 영어 이름.
  • 놀라운 수준으로 구현된 한식의 맛.
  • 젊은 층 공략.

이 세 가지 요소는 충격과 공포의 TV CF를 탄생케 했다.

1

캡틴의 대표 CF. 정체를 알수 없는 놈들이 떼거지로 실미도 같은 곳에서 해병대 훈련을 받고 있다. 보트를 머리에 이고 달리고 타이어를 두들기다가(탄약이 떨어졌을 때 적을 죽이는 훈련 같다) 타이어를 끌고 달리기도 한다.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웨이트, 피티체조, 그리고 노젓기까지 하는데 무슨 세뇌를 당했는지 밝은 기운이 넘친다.

주최측이 실컷 학대를 하고나서 기껏 컵라면을 하나씩 주는데 이놈들은 그것도 좋다고 잘만 먹는다. '유통기한 확인으로 가족사랑 나라사랑'이라는 자막이 지나가면 여죄수들도 뜨거운 뙈약볕 아래 뜨거운 캡틴 컵라면을 먹고 있다. 마지막은 '느낌이 팍!'이라는 대표 슬로건이 장식한다. 캡틴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정체불명의 슬로건이다.

2

94년도 작품이다. 격렬한 운동을 마친 미식축구부 일진(보다시피 최민수가 연기했다.)이 "푸짐한거 뭐 없나?"라며 아마 자기보다 싸움 못할 거 같은 동료에게 묻는다. 장면이 바뀌면 고기나 단백질보충제가 아닌 캡틴 컵라면을 흡입하고 있다. 물은 남이 끓여오도록 했을 게 분명하다.

이 광고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미식축구 복장을 한 주장이 구수한 아버지의 말투로 빵셔틀(카메라)를 향해 "야 이거 집에서 끓인 거 같다 야 이거"라고 말하며 감탄한다.

니가 집에서 국물 비슷한 거라도 끓인 적은 없겠지. 아들내미 미식축구 장비 사줄 돈 아끼느라 입은 게 몸빼바지밖에 없는 니 엄마가 끓였겠지. 어디서 아빠 입버릇 흉내를 내니.

집에서 끓인 국물맛과 미식축구 코스튬의 조화라니 얼마나 파괴적인가? 90년대는 토속적이면서도 글로벌했다.

3

나중에는 캡틴 공기밥도 나왔다. 건조한 찐쌀이 별첨으로 들어가 있다. 면도 먹고 밥도 먹는 한국적인 코스다. 왜? 캡틴 컵라면은 국물이 정말 훌륭했으니까.

광고가 시작되면, 당시 기준으로 한국 연예계 데뷔를 앞둔 재미교포를 연상케 하는 차림의 청춘남녀가 LA 동네 마트처럼 생긴 세트장 안을 건들거린다. 물론 그들은 캡틴 컵라면을 먹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청계천 헌책방거리 지게꾼같은 대사를 던진다.

"아깝다! 라면국물"
"아쉽다! 공기밥"

물론 캡틴 공기밥이 있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해피엔딩이다. 얘들은 하버드대를 가든지 한국에서 연예인이 되든지 아무튼 잘 됐을 거다.


캡틴 컵라면은 빙그레가 라면사업에서 전면 철수하면서 사라졌다. 빙그레의 마케팅은 지금 보면 황당하지만 라면사업부의 적자를 좀 더 오래 견뎠으면 어땠을까 한다. 나는 분명 왕뚜껑, 도시락, 육개장 큰사발보다 먼저 캡틴을 찾았을텐데. 다른 건 몰라도 캡틴만큼은 빙그레의 효자상품이 되어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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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기억이 안날까요?캡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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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맛일지 참 궁금하네요. 먹어볼 순 없지만~
지금의 라면과 비교하면 어떤 라면과 맛이 비슷할까요?ㅎㅎ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저아직 젊은가바요.. 이라면 생각이 안나네용

저런 라면은 처음 봅니다..하하.

우히히 라면은 기억이 안나지만 광고는 다 기억 나네요 ㅎㅎ

캡틴컵라면은 처음 보네요..공기밥도 잇다니 지금에 와서 이렇게 프로모션하면 홍보꽤나될것같은데말이죠 ㅎㅎ 재밌는글잘읽었습니다 팔로우하고갈께요^^

캡틴 김치랑 공기밥까지 참 사랑하고, 뉴면도 참 좋아했는데 빙그레가 사라지면서 전부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공기밥 타먹는 신선함과 후첨스프라는게 특이했던 뉴면 맛이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캡틴이랑 뉴면 맛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라면을 모른척 하고 싶긴한데 기억이 나는 건 어쩔수 없네요~
97년, 98년 가량에 많이 사먹었습니다. 뭐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인기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안에 있는 공기밥은 가볍고 퍽퍽해서 참 별로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보팅이 안되지요..ㅠㅠㅠ 광고는 기억나는데 라면맛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라면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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