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3타석3삼진 감독이 전하는 승전보. 지피지기보단 지기지피가 백전 일승의 시작인 것 같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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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같이 펼쳐지는 스포츠는 재미있다. 보는이들이 생각치도 못한 플레이가 나올 때는 환호성이 나온다. 전에 포스팅에도 올렸지만 관중석이 아닌 필드 위에서는 어떠할까.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며 일갈하던 현재 월드컵 대표팀의 주장이 하는 말을 이해해주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가 그 당시 어려서 치기어린 마음에 던진 말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기아타이거즈의 팬이다. 전임이었던 선동열 감독은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그가 팀을 말아먹던 시점부터 나는 지금의 감독, 김기태를 떠올렸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지만 보이지 않는 플레이는 감독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화야구가 일년만에 바뀐 것만 봐도 그러하다.

김기태 감독이 생각하는 철학이 좋았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캐치프라이가 좋았듯 김감독이 생각하는 '동행'이라는 철학이 좋았다. 사람이 미래다라고 말하는 학교를 나왔지만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밖에 앉아서 응원과 비난을 하는 것과 안에 서서 뛰고 운영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김기태 감독은 너무 동행한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이 다른 것이 있겠지라며 지켜보지만 결과를 놓고 봤을 때는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많다. 꼭 저래야만 했을까, 선수들이 말아먹은 게 아닌 감독이 말아먹는 게임이 많다. 그의 옆에 있던 조계현 수석코치의 빈 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기분좋게 이겨 승리투수가 된 투수가 쏘는 고기와 술을 먹고 와서 그런지 이야기가 길어진다. 일년에 한팀과 열두번 이상을 싸워야 하는 프로와 달리 사회인야구는 계속해서 리그를 유지한다 해도 상대팀과의 게임은 일년에 한번 뿐이다. 작년에 졌다고 해서 지는 법은 없고, 쉽게 이겼다고 해서 당연히 이기는 법도 없다.

금요일은 주중 경기를 참가할지 불참할 것인지 투표를 마감하는 날이다. 감독으로서는 9명, 10명이 참하는 것이 오더를 내는데 수월하다.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주는 11명이 참을 달았다. 중요한 수비위치에서 실책이 많고 타율도 낮은 감독은 더그아웃에 있는 것이 팀에 보탬이 된다. 참이 11명이니 지명타자를 세우면 10명이 경기를 뛸 수 있다.

경기 당일이 되어 친구 하나가 못 뛸 것 같다 연락이 온다. 자신이 생일인데 가정을 지키는 게 맞지 않겠냐 한다.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당일에 연락이 온 걸 보면. 한 다리는 가정에 나머지는 팀에 걸쳐 놓고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 수화기 너머로 느껴진다. '사람이 먼저다'도 좋지만 '가족이 먼저다'가 더 우선한다.

못 나온다고 한 놈은 팀의 대들보였다. 4번타자 없이 다시 오더를 짜려니 막막했다. 이미 한게임을 실험을 한답시고 하위팀에게 뼈아픈 패배를 맛 본 뒤었다. 반드시 이겨야 했다. 머리를 굴린다. 상황을 그려본다. 이렇게 저렇게 짜서 저렇게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싶게 라인업을 새로 짠다. 계산대로 된다면 정말 땡큐다.

똘기태라고 눕방를 시전하시는 김기태 감독도 이렇게 저렇게 짜서 저렇게 이렇게 해주겠지하며 오더를 짜겠지 그게 맘처럼 되나. 물론 나는 김기태 감독을 좋아한다. 못해도 잘해도 뛰는 건 결국 선수들이니.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서 오더를 냈는데 이렇게 저렇게 계산대로 1회가 시작된다. 아싸! 그럴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나만 잘하면 된다. 첫타석 삼진, 두번째 삼진, 세번째도 삼진. 내가 타석에 있을 때 팀원 모두는 다 담배를 피러 갔다...흡연율 90프로 팀, 망할놈들.

밀고 당기는 승부는 마지막이 되어 치열해졌다. 공수 몇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정해지는 룰이므로 15분을 남기고서는 공수를 무조건 진행한다. 우리팀은 선공이었고,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1점 차의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들어갔다.

투수가 흔들린다. 뒤를 책임져 줄 투수는 없다. 역전당하면 다음 공격에서 점수를 내야한다. 점수를 낼 분위기가 없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선두타자 볼넷. 주자가 쌓인다. 투수가 좌투라 쉽게 뛰질 못하는 것은 다행. 다음 타석에 들어선 상대팀 4번타자. 기어코 공을 때려낸다. 쭉쭉 뻣어나간다. 나는 1루에서 우리팀 중견수를 지켜본다. 어라, 타구판단 미스네.

동점이다 싶었다. 1루에 있던 주자는 무조건 넘겼다 싶었는지 타구판단도 하지 않은 채 냅다 뛰기 시작한다. 그 사이는 정말 찰나였다. 중견수를 보던 친구의 차를 타고 왔다. 어제 4년을 만나왔던 결혼을 약속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했다. 평소에도 브레이크를 모르던 차는 더욱 더 칼을 베어 물었다. 4번타자였다. 두번 모두 삼진. 전 이닝 수비는 알을 깠다.

놓쳤다 싶었던 공이 손을 쭉 뻗으니 글러브로 쏙 들어갔다. 주자는 이미 2루베이스를 넘었다. 중계만 잘한다면 더블아웃이다. 결국 아웃카운트는 하나밖에 못잡았지만 경기를 잡았다. 그걸로 모든 것을 잡았다. 놓쳤다면 무사 1,3루 아니면 동점에 무사 2루가 될 공이었다.

역시 계산대로 되는 것은 없다. 분위기는 계산에 넣을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실책은 더 큰 것을 낳지만 눈을 넘어서는 플레이는 없던 것도 만들어낸다. 힘이 빠지던 투수는 없던 힘이 생겨난다. 호우를 외치는 호날두 형이 K리그에 온다면 그 팀은 리그를 씹어먹을 수도 있겠지만, 베이브 루스가 온다 해서 그팀이 KBO 선두가 될 수는 없다. 그래도 축구나 야구나 분위기는 중요하다.

야구가 축구와 다른 건 약속된 플레이다. 오늘은 그것만 잘하면 되었다. 매일 그것때문에 졌다. 한 베이스를 더 가서 이기고 못 잡아서 지는 게 야구다. 한 베이스를 더 보내면 분위기가 죽어 투 베이스를 보내고, 한 베이스만 갈 것을 투 베이스를 지나면 분위기가 살아서 이긴다.

호수비 하나에 분위기를 가져왔지만 기록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플레이가 많았다. 안타수가 상대방에 비해 적었지만 그래서 이긴 것 같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가져올 때가 많다. 그래서 실체로 보이지 않는 코인도 많이 올라야 한다. 보이면 더 무서울 때 비로서 더 무서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자다. 보이지 않았을 때 잡았으니.

1년에 한 번 보는 팀, 그 팀이 상위권을 달리던 하위권을 달리던 계산하면 꼭 진다. 방심해서 지고, 주눅들어 진다. 상대를 얕잡아보던 이미 쫄고 가기보다 결국 지피(知彼)보다는 지기(知己)해야 반절은 이기고 간다. 우리팀은 아직 지피지기보다는 지기지피해야하는 팀이다.

생산적이지 않은 공놀이로도 매 번 배운다.

오늘의 교훈 : 적을 알고 나를 알기보다, 나를 알고나서 적을 알자 그래야 이길동 말동 하지.
모든 것에는 배움이 있다.

플레이오프 가즈아ㅏㅏㅏㅏ, 나만 잘하면 돼.................삼진은 이제 노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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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석에 있을 때 팀원 모두는 다 담배를 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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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질투하는 남자. 탈세도 두렵지 않은 남자.
부럽...그래도 제 맘속에는 메시보다 호우형.

제맘속에는 여전히 제라~~~ㄹ~~~드님 ㅎㅎ249C83D6-6924-4F08-9D8C-261D3B383A43.jpeg

제라드 형 이번 챔스 결승 때 얼마나 아쉬웠을까요.ㅎㅎㅎ

내말이요 ㅜ

사회인 야구는 투수 출석률 놀음이다~ㅋㅋ 저는 이번 주 일정이 없어 주말 내내 방바닥만 긁었네요. 승리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

팀 포인트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 팀 투수가 출석율 백프로입니다. ㅎㅎㅎ7월말까지 매주 경기가 있는데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우리에겐 '장마'라는 게 있잖아요~ ㅋㅋ

승리하고 먹는 고기와 술은 그야말로 꿀맛일거 같아요! 축하드려요! >,.<

남이 사주는 고기와 술은 더 꿀맛이죠. 감사합니다!^^

어제 기아 끝내기를 보면서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고 또 취미로 하는 이유가.. 살면서 이렇게 극적인 체험을 할 일이 스포츠가 아니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음 생에는 끝내기 안타 10번 치는 야구선수로 태어나고 싶습미다 ㅎㅎ

엊그제가 되었으니 답글이 늦었네요.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선수가 큰일을 내면 더 극적이죠. ㅎㅎㅎ현생에서 홈런 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사회인야구 감독이시군요..
깨알같은 코인 언급이 웃음을 줍니다. 승리 축하드려요.

술 한잔 먹고 쓰다보니 횡설수설한 것 같아요. ㅎㅎㅎ
축하 고맙습니다!

삼진은 이제 노노 ㅠㅠ ....ㅋㅋㅋㅋㅋㅋ (흠흠 웃으면 안되는데 ㅠㅠ ㅋㅋㅋ )
감독님이라니 !! 감독님 화이팅하세요!!!
저는 요즘 프로야구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한화팬이거든요 흐흐흐 )

삼진은 이제 제발. ㅎㅎㅎ3타석 3안타 치고 글을 또 쓰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
정말 쏠쏠하시겠네요! 감독 하나 바뀐다고 이렇게 바뀔줄이야...
최!강!한!화! 이제 거짓말이 아니게 될 것 같아요 ㅎㅎㅎ

내가 타석에 있을 때 팀원 모두는 다 담배를 피러 갔다...흡연율 90프로 팀, 망할놈들 ㅋㅋㅋㅋ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부연설명 좀 ㅋㅋㅋ

별 기대를 안한다는 뜻이죠.....ㅎㅎㅎㅎㅎㅠㅠ기대에 잘도 부응해서 너무 슬픈 주말이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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