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 설, 샤먼 여행기 1일차

in #kr7 years ago

1. Into the air


2월 16일 오전 9시 45분, 샤먼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타보는 국적기 대한항공. 타자마자 땅콩을 요청해 승무원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호기는 부리지 않기로 한다.

대한항공이면 다 크고 좋은거 아닌가. 비행기가 땅콩만했다. 하늘을 제대로 나는지 의심이 갔지만 의심이 가면 뭐 어쩔건데?

타자마자 화가 치솟는다. 중국인 관광객 한 명당 500kg 정도의 쇼핑백을 들고 있다. 선반에 물건을 올리느라 하세월이다. 내 자리로 가보니 이미 선반은 옆좌석 아저씨의 짐으로 가득하다. 한숨을 쉬고 가방을 껴안는다. 뭐 규정을 어긴건 아니니까.

비행기가 이륙 직전인데도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여전히 선반에 쇼핑백을 꾸겨 넣고 난리도 아니다. 승무원 중 중국인이 있었는데 이 여자조차 중국인들에게 엄청 짜증을 부린다. ㅋㅋㅋ 나만 웃긴가?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내 선반을 모조리 차지한 옆자리 아저씨가 숨을 쉰다. 입냄새가 쩐다. 농담 하나 안하고 이 아저씨가 지금 시트에 똥을 싸나??? 싶었다.

아조씨, 아니죠?

2. 샤먼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샤먼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샤먼은 겨울에도 16도 정도로 매우 온난한 지역이다. 반팔을 입고 가방을 정리하고 손을 씻고 페이퍼 타올을 찾는데 옆에 수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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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A, B, C에 차례대로 손을 닦았다. 세 수건 모두 축축했다. 셋중 하나가 비데용 수건은 아니길 빌며 화장실을 나선다.

원래 이 여행은 중국에 주재원으로 있는 친구의 계획이었다. 중국 마스터가 되라며 회사에서 일년 내내 중국을 여행할 시간을 준다. 경비는 물론 회사의 몫이다. 고급차 렌트에서 파이브스타 호텔까지 중국인이 경험할 수 있는건 모두 다 해본다. 좋은 회사다. 그런데 이 좋은 회사의 친구놈이 공항에 나타나질 않는다. 유주얼서스펙트 급 글로벌 빅통수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우리 사이라면 이런 장난 정도는 껌이니까.

3. 민족의 대명절 설


명심하라. 민족의 대명절 설(춘절)에는 중국의 그 어떤 가게도 문을 열지 않는다.

한참이나 늦게서야 호텔 직원을 동반하고 나타난 녀석은 휴대폰이 박살났다며 울부짖었다. 문을 연 가게가 없어 고칠 수도 없었단다. 시내를 이잡듯이 뒤져(정말로 가게 문을 하나 하나 두드려 열어달라고 했다) 딱 한군데를 찾아 수리를 맡겼다고 한다. 나는 이때까지만해도 그저 엇갈리지 않고 친구를 만난걸 반가워할 뿐이었다.

차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데 거리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공기보다 사람이 많은 중국이다. 쾌적한 여행이 되겠군.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음식점도 문을 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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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빅통수에 걸린 것 같다.

4. 르 메르디앙 쥬니어 스위트룸


휴대폰을 고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샤먼에 도착한지 수 시간만에 겨우 호텔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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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메르디앙 샤먼. 쉐라톤보다 한 급이 높은데라느니 쥬니어 스위트룸이 어쨌다느니 주절대는걸 보니 뭔가 잘못됐음이 느껴진다.

침대가 하나다.
남자는 셋이다.

우리의 우정은 땀내 나는 남자 셋이 한 침대를 같이 쓸 정도다.

앞으로 한달간 밀가루를 끊겠다는 내 말을 듣고 친구가 유명한 딤섬집에 예약을 한다. 민족의 대명절 설에도 문을 닫지 않는 크고 거대한 밀가루의 왕국으로.

유비, 관우, 장비가 울고가겠네.

5. 끊기는 개뿔


샤먼은 바닷가다. 해산물이 유명해 어느 음식점이나 관련 요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딤섬과 만두만을 쏙쏙 골라 주문하는 친구의 기민함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결국 난 봉인을 풀고 그 사악한 곡물을 입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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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조개. 조개가 사람을 먹겠는데?


명심하라. 민족의 대명절 설에는 대부분의 기사도 고향엘 간다. 샤먼은 대중교통이 부실하다. 중국의 우버 디디추싱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민족의 대명절 설에는 디디추싱 할아버지가 와도 차가 안 잡힌다. 아무리 짧은 거리를 가려고해도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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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과 디디추싱 대결을 벌이는 친구. 현지인은 결국 포기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택시를 타고 샤먼항에 도착한 우리는 여권으로는 구랑위행 페리의 탑승권을 예매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이 모든게 계획된 어긋남이라면 내 친구는 정말 지능적인 놈이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주재원이 될만하다.

6. 샤먼으로 오세여. 중국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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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은 중국인을 위한 완벽한 휴양지를 추구한다. 그 철저함을 위해 그 어떤 투어가이드에도 다른 언어를 병기하지 않는다.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세!

7. 우리는 친구입니다.


다시 디디추싱의 늪. 갑자기 친구가 뛰어! 라고 소리를 지른다. 왜? 어디로? 우리는 뛴다. 그리고 버스를 탄다. 싸다. 깨끗하다! 처음으로 뭔가 잘 풀리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한참이나 현지인의 대화를 듣던 친구가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방금 탄 중국인들도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데? 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사드 배치가 어쩌고 저쩌고 해도 중국인과 한국인은 친구다.
한국인이라곤 단 셋 뿐인 이역만리에서도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이 지구에 바보가 우리뿐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까.

8. 걸어서 대륙 속으로


우리는 내키는대로 버스를 타고 가다 내리고 싶은데서 내렸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걸었다. 그렇고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드디어 민족의 대명절 설에도 사람으로 붐비고 가게들도 문을 연 중산대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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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심하라. 민족의 대명절 설에는 중산대로에 사람이 넘쳐난다(중국에는 어디에나 중산대로가 있다는데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국부 쑨원의 별명인 중산을 붙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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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특산물 설탕 땅콩국 한 그릇을 얻기 위한 치열한 전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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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식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땅콩국


우리는 땅콩국을 정복한 뒤 정처없이 대로를 종단하기 시작했다. 걸어서 대륙속으로. 휘리휘리휘리리리~~

그런데 잠깐만.

어디선가 배꼽 때가 썩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방금 지나간 쓰레기 차가 주인공이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하수도?

하지만 여기엔 하수도가 없다.

그 주인공은 바로 취두부.
악명 높은 사탄의 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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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당신의 검지로 발톱 때를 벗긴 뒤 배꼽을 후벼파고 코 속에 넣어보라. 바로 그것이 이 검은 음식의 냄새다.

그... 그런데

막상 입에 넣고 씹어보면 고소하면서도 톡 쏘는 숙성 음식 특유의 깊은 맛이 난다!! 먹을 땐 냄새도 거의 안 난다. 물론 취두부를 먹고 트림을 하는 친구에겐 아구창을 날릴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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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대로와 중산가. 규모에 따라 로 또는 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같다.


취두부의 향취에 취해 우리는 중산이라는 이름의 길을 모두 정복했다. 이제 다시 디디추싱과 함께 호텔로 돌아갈 시간. 하지만 명심하라. 민족의 대명절 설에는 귀가하는 차들로 온 거리가 꽉꽉 막힌다.

8시 반에 부른 디디추싱은 10시가 다 되서야 도착했다. 호텔에 와 티비를 켜니 한국의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CCTV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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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이 어딘지 몰라서 읽기 시작했는데.. 글 너무 재밌게 쓰시네요 정말..ㅎㅎ 한참 웃었다능..ㅎㅎㅎㅎ
중국 본토 취두부 맛이 정말 궁금했는데...우선 입에 넣고 봐야하는 거였군요.
대륙적 스케일이 물씬 풍기는 글이네요..ㅎㅎ
다음 여행기도 기대할게요~~

요즘 너무 바빠 글을 통 쓰지 못했네요. 빨리 2, 3일차 여행도 올리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고 대륙의 클라스... 글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보면서 많이 웃았습니당

4일차까지 계속 될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ㅎㅎㅎ 아구창이라는 단어를 한참 바라봤어요ㅎㅎㅎ 평소 글과는 다른 느낌의 단어가 주는 생경함 때문에요ㅎㅎ 저는 연휴에 집에만 있었는데 부럽습니다. 여행기를 보는 것만으로 나름대로 기분 전환이 됐네요. 감사합니다^^

평소 제 글과 결이 좀 다르죠? ㅋㅋ 여행기라서 가볍게 써볼 생각입니다.

ㅋㅋㅋㅋ너무 재밌어요 ㅋㅋ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네요. 취두부는 냄새 때문에 아직도 도전해 보지 못했는데 막상 씹으면 괜찮다니 한번 도전해봐야겠네요^^

취두부도 역시 잘 하는 데가 있고 안 그런데가 있더라구요. 눅눅하면 맛이 진짜 없습니다. 바삭하게 튀겨야 씹을 때 냄새도 적고 맛있는 거 같아요.

땅콩국 사진에서 빵터졌습니다. ㅎㅎ

땅콩국은 윌리 웡카가 만든 음료 같애요. 앵간히 단거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비추입니다.

아, 윌리 웡카를 알아들은 제 자신이 대견해요. ㅋㅋㅋ 그 영화는 두번째 볼 때 재밌더라구요. 조심히 돌아오시길 ^^

취두부를 드시다니 용자십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중국갔을때 취두부 딱 한 입 먹고 '어라? 생각보다 먹을만한데?'라고 생각했다가 이윽고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때문에 못참고 다 버렸더랬죠;;;

저는 한 번 먹고 바로 취두부 매니아가 됐습니다. 홍어보다 냄새가 덜 하더라고요.

ㅎㅎㅎㅎ 너무 재밌습니다. 이런 글도 아주 좋아요! 요즘 다이내믹한 글 스타일 좋아요 좋아! ㅎㅎㅎ

왜 더이상 글이 없으신건지... 대륙에 아직도 계십니까? 궁금해요!

대륙의 설 명절은 또 특별하군요... 윤성빈 선수의 금메달이 하루의 피로를 모두 날려 주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2, 3일차에 이르는 여행기는 피로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ㅋㅋ 곧 올릴게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아조씨가 이륙 전에 취두부를 드셨던 모양이군요.

그건 취두부의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취두부의 창조신 정도의 냄새였어요.

Wow... So nice, i like its, i wish sometime can be to aet that food....
Nice post i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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