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이야기]그녀와의 만남 - 술과 함께

in #kr7 years ago

안녕하세요. 그래도널입니다.

벌써 아내를 만난지 햇수로 16년이 되네요.
저보다 더 오래 만나고 지내오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더 오래되어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 봅니다.


누나를 다시 만난건
실연 아닌 실연의 슬픔에 빠져
미치도록 주(酒)신이 그리운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술 사달라는 나의 말에 흔쾌히 숙소 근처 호프집으로 나온 그녀

"여기 소주 두병주세요"

술은 두병 시키면 식어서 맛이없는데... 라며 궁시렁 대려던 찰나
빛보다도 빠른속도로 소주가 나왔고 그녀는 한병을 내게 내밀었다.

"난 술 안따라주니까 알아서 따라 마셔"
"네?"

그 당시 여자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고 멋진 모습에 반한 것도 잠시.
정말 그 당시 아내는 술을 잘마셨고 다음날 내내 잔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술은 말이다. 정신력으로 먹는거야. 남자가 그렇게 정신력이 약해서 어떻게하냐"
"예~예~ 죄송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단 한번도 술로 아내를 이겨본적이 없다. 결혼 전까지 ... 한번도...

워낙 술을 좋아했었던 나였으나
"주 6일 술 월요일은 쉼" 이라는
절제된 주도를 가진 누나를 이기기엔 음주량이나 정신적으로나 한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고
기왕 숙소와 아내의 집이 10분 거리도 안되었던 터라
약속이 깨지면 깨졌다고 만나서 마시고
약속이 일찍 끝나면 일찍 끝났다고 마시고
두어달이 지나니 술을 마시러 만났는지 만나려고 술을 마시자고 하는 건지 모를 정도 였다.

만나다 보면 정든다고
점점 누나에게 호감이 커지다보니
사귀는 건지 아닌건지 모르는 애매한 관계가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 친구들은 다들 눈치 채고 있었다는데 아내가 지독한 형광등이긴 했다.)

같이일하시던 분들은약속이 있어 전부 나가고
나 혼자 숙소에서 캔 맥주를 마시며 뒹굴거리던 목요일 저녁
술마시러 갔으면 따라 가려고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뭐해요?"
"캔맥하고 있지? 넌?"
"어? 나도 숙소에서 캔맥하는데~ 오늘은 약속 없어요?"
"응~ 내일 약속 있고 오늘은 그냥 있어"

일상적인 대화와 어제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서로 떠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애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 이상형을 이야기 하던 중이었다.

"야야 널아"(편의상 이름은 그래도널로 하겠습니다 ㅋ)
"왜영"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누나좀 소개시켜줘바바"
"없는데요? 누나 연하 안좋아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이 누나가 요즘 외롭다"
"제 친구들 다 봤잖아요. 거기서 거기에요 ㅋㅋ"
"아 그러네. 아는 형이나 그런 사람은 없어?."

왜 그랬을까. 그때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을 놓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음… 아! 한명 있어요 소개시켜줄게요"
"진짜? 진짜? 어떤사람이야~ ?"
"성은 그래도요 이름은 널이라는 사람인데요. 어때요?"
"뭐?...야..."

갑자기 찾아온 침묵
나에게는 1년같이 느껴지던 10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전화기 너머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나 안좋아 하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나 좋아해서 술자리에 나오는 거냐고 하니까 아니라고 했잖아"
"아 그럼 어떻게 좋아해서 나간다고 말해요. 초면부터"
"그냥 술 좋아해서 오는 거라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부를 때마다 만나러 갑니까…"

또다시 침묵

"아니야 너 나 안좋아 하잖아"(술에 취한 모양이다)
"아니 그러니까요…"

기억에는 3시간정도가 지났던 것 같다.
계속 그동안 만나면서 좋아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이 있었다고
누나를 다른사람에게 소개시켜 주느니 내가 갖겠다고(유후 ~ ♡)
휴대폰이 뜨거워서 더 이상 볼에 대고 있기가 어려울 때 쯤이 되어서야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은 차분해 졌다.

"그럼 내일부터 우리 사귀는 거야?"
"네~ 우리 이제 사귀어요"

봄내음 가득하던 5월의 어느날 우리는 그렇게 만나기 시작했다.


@floridasnail 님께서 진행하시는 이벤트[[kr-lovelove 포스팅 이벤트 ]](https://busy.org/@floridasnail/kr-lovelove-100-sbd) 덕분에 아내와 만났던 때를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그 덕분에 3일동안 포스팅 못한건 비밀)

실은 사귀자고 해놓고 다음날엔 못만났어요 ㅋㅋㅋ (첫날부터 둘다 선약 있었음...;;;;)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풋풋했던 때네요. 어휴... 어떻게 16년을 만났지 ...
이제는 딸린 두 귀요미들이 있어서 예전같이 꿀이 떨어지지는 않지만요. (대화의 90%가 애들 이야기니까..;;)
어서 퇴근하고 오늘은 아내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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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벤트 덕분에 좋은 기억 떠올리느라 글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덕분에 옛추억 다시한번 떠올려 보았어요^^

제 글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니 조금 더 잘 쓸껄... 괜히 부끄럽네요 ㅜ ㅜㅋㅋ

우와아 달달해요 봄같이 설레는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_^

전 아직도 아내를 보면 설렙니다 ㅎㅎ
늘 두근거림을 가지고 임해야지요 ^^

말투가 궁금해요 어떠셨는지
내일부터 사귀냐는거냐는말
누나도 호감이 있었던거네요 ㅎㅎ
주6일에 월요일은 쉼
포스가 어마어마하시네요 ㅎㅎ

그 말 듣기까지 4시간은 넘게 걸린거 같은데요... 저녁에 통화시작해서 새벽에 끝났...
어후 제가 도리어 당한거 아닌가 싶긴 해요 ㅋ

16년이나 됐지만 생생한 기억인가보네요 ㅎ

아직도 그 보다 전의 첫 만남도 생생한데요 ㅎㅎ
아직은 콩깍지가 벗겨지려면 멀었나봅니다 ㅎㅎ

사랑해 누나~ ^^ ㅎㅎ 읽으면서 제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이유는 뭘까요? 아~ 벌써 4월인데 어떡하죠?

그럴땐 노래를 들으면서 치유하셔야 합니다.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을 들어주세요 ~ㅋ

외롭다...........

외로울땐 고기 앞으로 고고씽~

하앗. ..내 심장 ...

바운스 바운스 ~ 두근대 들릴까 봐~

와!! 너무 달달해서 ㅠ.ㅠ
꿀 떨어집니다...함박 웃음 지으며 글 읽었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좀더 러블리하게 글을 썼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꿀이 떨어진다 느끼시면 교정은 안해도 되겠지요 ㅎㅎ
아직도 꿀이 떨어지니 좀더 숙성(?)해야 겠습니다 ㅋ

오오미... 달콤달콤한 이야기로군요 ㅎㅎㅎㅎ

아마 콩깍지 벗겨지기 전까진 달달하게 가지고 갈거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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