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용도로 책 본문내용 남깁니다.
p.381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유학은 우리 민족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는 큰 축을 담당하였다. 특히 국정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에게 통치 이념과 문물 제도의 강령을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유학의 몫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삼국 시대부터 우리나라는 통치 계급의 인물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유교 경전을 교재로 사용하였고, 관리를 임용함에 있어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를 선발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따라서 그러한 과정을 거쳐 배출된 인물들은 자신의 지식 기반인 유학이 가르치는 바에 따라 그 시대의 사회를 이끌어 가려 했을 것이며,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유학의 인간관과 사회관에 깊이 뿌리를 둔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다만 고려 시대 이전에는 유학이 인간의 정신 세계나 우주자연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논구하는 경지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으며,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처하는 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실천윤리의 정립과 교화에 주력하였으므로, 조선 시대 이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사변적인 철학 이론을 남기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려 시대 이전의 유학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고대, 중세 사회의 교육 및 행정 제도의 성립 과정에서 유학이 담당한 역할과, 유학을 공부한 그 시대의 지식층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사회화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이 주목된다.
p. 227
고려 시대까지 지배 이념으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려 왔던 불교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전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신흥사대부들은 유교적인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유교 이외의 사상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정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더욱이 불교는 단순한 이단 사상의 하나가 아니라 자신들이 뒤엎은 고려 왕조의 지배 이념이었다는 점과,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대중들 속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척결해야만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불교의 가르침 자체를 부정하면서 아예 지상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였다.
주자학을 국가 이념으로 하는 조선 왕조의 개국과 더불어 시행된 일련의 억불 정책은 그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교의 존재당위성을 확보하면서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사상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조선 시대의 불교인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기화의 <현정론>과 저자가 분명하지 않은 <유석질의론>은 조선 전기의 불교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자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