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갔다가
동심(童心)은 십자가보다 무겁다고
시인은 썼다. 글귀를 얼핏 보며 김광림은 이중섭을 무어라 여긴 걸까, 되새긴다. 제주 4.3사태가 여전하던 속에 서귀포에 머물던 화가는 늘 게를 그렸다. 화폭의 아이들은 춤추며 놀았다. 제목은 <서귀포의 환상>.
늙은 몸에 든 동심. 붉은 비린내가 나는 땅에서 그는 귤빛 그림을 그렸다. 환상이라 이름 붙인 걸 보니 현실을 몰랐을 리 없고. 다만 저주처럼 아름다움과 그리움이 혈관을 타고 다니는 통에 자꾸 그런 그림이 나온 모양이다.
아버지는 죽기 좀 전까지 글을 썼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였다. 언니를 시켜 세계관 지도를 그리게 할 정도면 허투루 쓰는 글은 아니었다. 까매진 얼굴, 말라버린 몸을 인 채 그는 글을 썼다. 인터넷에 꾸준히 그걸 올렸다.
웹소설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이었다. 7년 전이니 말이다. 근데 남이 시키지 않아도 아버지는, 자꾸만 비어져나오는 상상을 써내리기 시작했다. 병을 얻은 후에야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기가 쓰는 소설에 대해 말할 때마다 빛나던 눈빛. 기억한다. 죽어가는 육체에 유일하게 살아있던 부위.
물론 애달픔이라고만 단정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그 비어져나오는 동심을 겨우 누르는 동안 돈을 버는 건 어머니의 몫이었다. 집안일도 엄마 몫이었다. 십자가보다 무거운 걸 진 채 안방에서 담배만 푹푹 피우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그 얼마나 미워했던가.
그나마 아버지를 반만 닮은 게 다행이라고 여길 때도 있다. 글을 쓰되 내 글만 쓰지 않는 생활, 어떻게든 먹고 살려는 맘이 내 속에 들끓었다. 내 마음이 동했던 글도 시간이 지나면 서운해지는 법인데 그런 동심을 내버려두고선
기자도, 직장인도 될 순 없었다. 다만 무엇이라도 느끼고, 기록하고, 남기는 치열함으로나마 아빠가 내 안에 남아있음을 감사할 뿐이다. 영영 지워버리기엔 가여웠고, 나이가 들수록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했던 사람이니까.
인터넷에 쓰는 글 쪼가리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버지 속으로만 쌓이던 눈물은 풀렸을까, 조금은 늦게 암덩어리가 됐을까.
언제까지 먹고 살기 위한 글을 쪄낼 수 있을까. 영감으로 쓰는 글은 적다는 걸 이젠 안다. 끝없이 관찰하고, 고민하고, 수정하는 반복노동만이 글밥을 먹는 왕도라는 걸 아버지보다 먼저 익혔다.
나를 다루는 노련함과 비축한 체력, 쉼없이 쓰는 버릇이면 된다. 동심에겐 미안하지만. 예수님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33살까지 목수 일을 했다. 열렬히 쓰고, 깊이 표현해 돈을 얻는 길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타이르는 수밖에.
어차피 기억은 얄궂어서 목소리도, 체온도, 추억도 쉬이 바스러졌다. 오로지 이야기하려는 본성만이 끈질기게 남아 아빠가 살았었음을 증명했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생각정리
또한 글만으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똑같은 글에 그냥 풍경사진이 있는 것과 글쓴이 얼굴이 함께 놓인 게 달리 여겨진다. 페이스북에서는 개인 인스타와는 다른 사진으로 교체한 후에야 읽는이의 눈에 들었다.
볼거리가 넘치고 언제든 걸러지는 시절에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 아빠가 지금 글쟁이였다해서 더 수월하게 살았을 것 같진 않다.
이래저래 결국🤔 피부를 타고 흐르는 과민함을 어떻게 조련하고, 화해하며 지내는가의 문제랄까🤨🙄😶
오늘따라 최신글을 읽고 싶어 눌렀는데 인연이 되는 글을 봅니다.
동심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이렇게 애처롭게 느껴지긴 처음이네요. 울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철들지 말라고 하던 그 철없음이 누군가에겐 십자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간만에 마음을 흔드는 글을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에공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 싯구가 저릿저릿하더라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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