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 함부로 공감하지 않는다
공감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
어떤 영화비평에서 윤리에 대한 문장이 있었다. '연출에도 윤리가 있다. 어떤 고통스러운 실화를 영화화한다고 할 때, 감독은 그것을 '진정' 연출할 수 있으며 배우는 그것을 '진짜' 이해하여 연기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한지 알 수 없는 상태임에도 영화화로 아픔을 묘사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며 그것을 대하는 관객의 눈물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는가?'
한동안 이 말은 내 마음 한 언저리에 얹혀 잘 소화되지 못한 채 뭉텅이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소설에서 그 말은 훨씬 쓴 소화제로 힘겨이 소화됐다. 또 다른 피로감이 눈언저리에 내리 앉았다. 소설의 글귀는 아래와 같았다.
'공감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한 때 슬픔의 심연을 헤집는 몇몇 사건을 지나쳤다. 그 당시 받은 위로는 크나큰 공감으로 다가오면서 앞으로 내가 받은 몫을 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죄의식을 안겼다. 아니, 우선 양심이라고 해두자. 나는 딱 내가 받았던 기억만큼 타인을 위해 아파했고 울었고, 염려했고 그들을 생각했다. 최소한 그들을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공감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내가 받은 것, 내가 준 것들은 모두 무엇이었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무어라 해석해야 할까. 나는 큰 물음표에 부딪쳐 이마 한 가운데 커다란 혹이 났다.
사실 공감은 불가능함이 자명하다. 누군가의 긴 하루를 듣고 같이 화를 내거나 아파하는 것은 상대방의 고단함을 그 자체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고단함에 대입하여 이해했다고 보는 것에 가까웠다. 공감은 실상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공명하는 일이 아니라 내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내 식으로 위로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공감은 불가능했고, 다만 타인의 감정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정도가 '공감'에 근접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우린 외로운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다 자라지 못한 어린 마음이 존재한다. 그것이 때론 응석을 부리며 제 목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우리는 이미 여러 인간관계를 통해 타인이 내 아픔에 진짜로 관심이 있는 건 아님을 겪었다.
그런데도 왠지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누군가 있으리란 기대를 차마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역시나 실망하고선 '고독은 인생'이라는 격언에 어쩔 수 없이 항복한다. 참 쓸쓸한 생애다. 어렸을 때부터 염원해온 어떤 사람, 나의 영혼과 목소리에 귀기울여줄 누군가는 없다. 그것이 첫 번째 진실이 돼버렸다.
그래도 나지막한 희망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우리가 절대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음에도, 원천적으로 마음과 마음 사이에 절대 밀어놓을 수 없는 겹문이 존재함에도 우린 '위로'받았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 분을 내면 같이 분을 냈고 누군가 침울하면 곁에서 걱정했다. 비록 이 또한 타인의 위로를 내 식으로 받아들인 거라며 헛헛할 순 있어도 순전함에 집착하다 질식하기 전에 두 번째 진실을 변호하고 싶다.
공감불가능성을 알면서도 그것에 끊임없이 다가가는 것. 관계는 결국 불완전하다는 한계에도 선뜻 위로를 건네는 것. "어차피 공감 못 하니 부질없는 짓 그만두자"가 아니라 "그래도 우린 외로우니 오늘의 일용한 위로를 나눌 줄 알자."라고 감히 말하는 능력이 사람에겐 가능하다는데서 나는 두 번째 진실을 보고자 한다.
비록 공감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멀찍이서 타인을 위해
점처럼 멀리 보이는 공감을 그려본다. 그 마음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다.
우린 영원히 서롤 모른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론 이 사람이 내가 복통에 시달리는 것조차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게 얕은 서운함과 깊은 외로움으로 자란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서투름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러면 우리가 생각했던 공감의 주변에서 조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 때 필요한 건 공감의 순수성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불완전한 공감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일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우린 절절한 쓸쓸함 속에서도 하룻밤 비 피할 오두막을 발견할 수 있을테다. 우리가 새로이 생각해야 할 공감의 의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고민해본다.
너무나 치명적으로 추운 가을밤이다. 그리고 매일 밤을 그런 추위로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있다. 몸이건 마음이건 거기에 드리운 오한이 뒤집혀 여름더위가 되진 못 해도 최소한 이불 한 장으로 견딜 수 있는 나날이 되기를, 그것을 건네는 손이 내 손이기를 바란다.
마음이 가벼워지며 또한 무거워짐을 느낀다.
- 2014.10.17 #쮼
나는 당신에게 함부로 공감하지 않는다.
퍽 서러웠던 적이 있다. 당신이 저만치 멀리 서서 내게 이르길, 내 마음을 다 아노라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 발자욱도 떼지 않은 채 저만치에 서있었다. 나는 그게 서러워, 메아리도 받아치지 못하고 울었다. 공감은 내게 너무나 비싼 보금자리와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섣불리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누구라도 슬퍼하는 듯할 때 불현듯 옛일이 떠올라 마음이 달떴다. 얼른 달려가 당신을 안아주겠어, 그런 맘으로 나는 누구보다 먼저 발걸음을 뗐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 그렇게 외치며 다다다 달려가 당신을 안아주면 그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감정의 원근감은 껴안은 그 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한 자리에 선 두 개의 점이었다. 와락 껴안으면 당신의 눈물이 그칠 줄 알았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었다. 나는 당신의 아픔을 몰랐다. 여전히, 어차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 깨친 채 스르륵 팔을 풀었다. 아,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걸까.
'하나가 아니라 둘이어도 좋아. 외로울 수 있다면.'
이제 아무 것도 모르겠노라 고백한 내게 당신은 한 치 멀리 서있다. 우리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살아요, 내게 외로움을 허락한 그 말이 왜 내 맘을 덥히는 걸까. 이제야 당신에게 필요한 건 내 소식 하나였음을 본다. 당신 때문에 외로우나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진실을 붙잡는다. 아, 눈물겨운 당신.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눈길이 닿는 어디쯤에 머무르며 보이지 않는 사랑을 전하는 일이 내게는 아직, 영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눈동자를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익힌 후에 드디어 나는 당신을 존중하는 첫 옹알이를 읊었다.
'나는 당신의 삶에 대해 함부로 공감할 수 없다.'
- 2016년 초여름에. #쮼
예전에 공감에 대해 썼던 두 글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 또한 타인의 고됨에 선택적으로 공감해왔다.
그러면서 내 옹이를 지나치는 무심함에 쉬이 절망했다.
4년 전에 불가능한 일을 포기하지 말자고 적었고
2년 전에는 타자와 조심스레 연대하자고 적었으니
올해는 같은 단어로 또 다른 글을 적어야지 싶다...:)
세삼하게 무심한 사람, 무해한 어른이 되자....!ㅠㅠ
슬픔은 안개처럼 불분명해서 내가 무엇에 대해 슬퍼하는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상황에 대한 슬픔이었지만 그 아래엔 슬픔을 더 슬픔으로 느끼게 하는 과거의 기억들이 있었죠. 근원의 근원을 나도 알지 못하는 데 남이 어떻게 알아줄까요? 나는 그저 남이 날 위해 울어줬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었습니다.
근원의 근원....! 좋은 표현이네요=) 어쩌면 남이 내 속을 다 알아채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혹은 말씀하신대로 내가 나를 다 안다는 자만일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공감이 타자화 되고 고립된 개념이라면 그 길로 가기 위해서 수많은 이성과 사고와의 소모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가 볼 만한 길이긴 합니다. 다만 공감이라는 커다란 집합안에 나와 누군가가 조금씩 교집합하고 있다고 간주하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요?? 생각하게 해 주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선 글은 다소 다크할 때 썼던 거에요ㅎㅎ일년 뒤에는 좀 더 넉넉해지고, 교집합을 만들어가네요:) 힘 덜어내기 중이랄까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혹시 프로 작가님이신가요? 이런 분을 이제야 알아보게 되다니 제 한달의 스팀잇 생활이 부끄러워지네요. 글 너무 잘 읽었고, 섣부르게나마 "공감"한다고 말씀드리면 안되는거죠 ㅋㅋㅋ 팔로했어요. 잉여, 평범, 가난이 장래희망이라니요!!! 와우!! 멋져요!! 자주 글 만나러 올게요!
헛 저는 스팀잇 쓴지 얼마 앙댔어요! 공감해주셔서 설레네요🦄🦄(?!)ㅋㅋ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아웃스탠딩이라는 매체에서는 기사를 쓰고 있어요:)
어떤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내가 언젠가 그 감정을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란 말을 어디선가 자주 들었어요. 우리 그래도 아름다운 진실을 믿어보심이..ㅋㅋㅋ사람들은 나에게 공감하고 있다고
조금씩 오래 공감하다보면 퍼즐이 얼추 맞춰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상대에게 들이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해질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