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같은 마음을 불편해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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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5

수면 시작 시간이 새벽 5시까지 밀려났다. 오후 3시는 물론 정오에 마신 커피도 나의 신경에 예민하게 작용한다. 물리적인 출근을 해야 한다면 더욱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겠지만, 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해둔 삶이라 밀리면 밀리는 대로 그때의 컨디션에 맞게 움직이고 있다. 업무 시간을 다 채우고 맞이한 후련한 주말. 집안일을 하고 밤늦은 운동을 하고 들어왔다. 마치 유럽 시간대로 몸이 먼저 가 있는 것 같다. 주간과 야간이 뒤섞인 비행을 한 차례 겪고 나면 이 패턴은 또 어떻게 바뀔지.
지난 주에는 순탄하게 흘러가던 업무가 차질을 빚었다. 거기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좋은 기운으로 정화하느라 꽤 애를 썼다. 그리고 이 사건 덕분에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초인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나의 선한 의도와 꼼꼼한 배려가 되려 의문을 받거나, 그걸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라 시간과 정신을 더 써서 오히려 비효율이 되었을 때, 억울한 감정이 먼저 찾아오고 그 뒤에 화가 따라왔다. 이 '화'라는 감정의 이면을 조금 더 면밀히 바라보고 싶었다. 삶이 순식간에 흙탕물로 변하기 바로 직전의 그 지점. 분명히 거기에 우물이 있다.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을 올바르게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지막지하게 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르게 다루는 사람. 하지만 우리의 바탕이 동물인 이상, 평생에 걸쳐 이를 완벽히 제어할 수는 없다. 다만, 즉각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부정적인 반응을 힘 닿는 데까지 늦추고 늦추고 늦출 뿐. 그러면 사금 같은 작은 화의 알갱이를 얻게 된다. 이를 잘게 부수고 부수고 부수어 아주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너무 자세한 것들이 생각나지 않고, 그냥 뭔가 그런 게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화라는 감정에 접속하니, 그 열기 속에 머무는 기억들이 함께 떠올랐다. 관계를 망치는 화를 내보기도 했고 받아보기도 했다. 나는 그 안에서 엉성하게나마 자라났고, 찢어진 마음이 오히려 넓은 면적이 되어 이해 가능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내가 지금의 관계를 지속하기로 결심한 것도, 상대방과 건강하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삶에 나타나는 모든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감정적으로 지독한 시간을 지나 보내고 더 나은 버전의 인간이 되어 서로의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둘 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비슷한 기대치를 자기자신에게 품고 있다. 지속하기로 결심한 관계가 재밌기도 하면서 의미도 있다면, 더 바랄 게 있나.
지난 주 업무에서 건져올린 화의 알갱이는 금요일 낮에 일을 하면서 모두 부수어냈다. 모든 오해를 풀었고, 일에 대한 나의 기여도에 전혀 손상이 가지 않은 상태로. 사실 관계에서 생기는 중대한 화에 비하면 이런 종류의 화는 너무 가볍고 분명하고 다루기 쉬운 것이라, 연인과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는 웃음이 나왔다. 겨우 그런 일로 불을 키웠다니. 그래도 가볍든 무겁든 화는 일단 우리를 잠시나마 찢어 놓는다. 그걸 다듬고 수선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는 성숙할 기회를 가진다. 좀 더 지속 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잠이라는 연고까지 잘 발라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인간 밖의 영역이다. 최선을 다해 미리 육체를 노곤하게 하고, 잠을 기다리며, 그에게 선택되기를 바랄 수밖에. 하지만 이 또한 불편하지 않은 심리적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니, 괜찮은 인간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