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 리뷰) 바실리 페트렌코의 서울시향, 이 조합 계속되길 바란다. (18.06.14 롯데콘)

in #kr7 years ago (edited)

지난 글을 보니 22일전이다.
하.. 원래 이럴라고 시작한 스티밋이 아닌데...
확실히 꾸준하다는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주 잠시 미뤄두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렷히 적힌 숫자로 접하고 나니, 얼마나 게을렀는지,
체중계 위의 육체의 무게만큼 현실로 다가온다.
다시 또 다시.

지난 몇회의 공연 리뷰는 일단 엊그제 공연부터 끄적이고 써야겠다.
못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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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렌코'라는 이름에서 오는 광채가 있다.
지금 클래식에는 두명의 젊은 페트렌코가 있다.
그중 하나가 사이먼래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을 이끌 차기 수장 키릴 '페트렌코'
그리고 오늘 서울시향을 지휘할 바실리 페트렌코가 있다.
아무래도 무게는 전자인 키릴 쪽으로 기울어진다.
베를린필이 주는 무게감은 그 어떠한 것보다 크기 때문이다.

자! 그럼 오늘의 페트렌코는 누구인가?
사전 정보가 사실 부족했다.

그의 이력은?
오슬로 교향악단, 로열 리버풀 교향악단,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 무려 3곳의 상임이다.
그리고 러시아 국립 아카데미 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
하지만 딱히 무게감을 주는 이력은 아니었다. 동명이인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42세의 젊은 지휘자치고 많은 경력을 쌓아 올리는 구나 싶었다.
잠시 사전 인터뷰를 보면,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리더인가요.

“러시아에서 배울 때 선생님께 받은 교훈 중 가장 큰 게 ‘지휘자는 지휘봉을 갖고 지휘하지만, 지휘봉은 소리내지 않는다’예요. 즉, 지휘자가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단원들을 통해 소리가 만들어지기에 단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두 번째 가르침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연주할 수 있는가예요. 많은 리허설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연주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없이 무대에 서면 공연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쇼가 될 거예요. 그러니 지휘자는 단원을 존중해야죠. 제가 생각하는 지휘자의 역할은 뭔가 주입시키기 위해 군주처럼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게 연주자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또 지휘자는 작곡가, 관객, 단원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죠.”

음, 공연을 본 후에 읽은 인터뷰였기에 그의 공연과 매치시켜 보면,
정확히 그의 의중대로 지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철학이 뚜렷한 젊은 지휘자.
그의 지휘봉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분명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소리없는 소리. 전체 악단을 조율하는 침묵의 리듬.
그 손끝에서 울리는 외침에 단원들은 숨을 쉬었다.

이쯤에서 공연을 리뷰해보면,
1부는 차이코프스키의 유일한 바이얼린 협주곡. 아주아주 유명한 곡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익숙한 리듬.
하지만 첫 시작은 삐걱였다.
눈에 띄는 삐걱임은 아니었다. 단지 어디선가 미세하게 들리는
쥐가 저 지하 밑에서 나무를 조금씩 갉아 대는 듯한 미세한 불협.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의 연주는 훌륭했다.
테크닉이 필요한 어려운 연주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시향과의 호흡이 미세하게 어긋났다.
한몸으로 움직인다는 느낌보다, 억지로 밀어넣어 하나가 되게 끔 만드는 조합.
어느 누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각자의 역할은 잘 했지만, 각자의 길만을 평행하게 걸어간 듯한 느낌이랄까.
손을 맞잡고 때론 너가 때론 내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균형을 맞추는 자연스런 조화가 보이질 않았다.
물론, 고질적인 롯데콘의 문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베이스의 일정음에서 소리가 뭉게지고, 먹먹한 소리를 냈다.
특히나, 소규모 편성에서 더욱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느낌을 받은 오늘이다.
교향곡을 들을때는 그 소리가 어느정도 뚫고 나오지만, 편성이 작으면 힘이 실리지 못한다.
롯데콘 음향 감독을 좀 만나봐야겠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바주할 그 날을 기다리며....
오히려 에네스가 앵콜로 들려준 바흐가 황홀했다.
바로크에 목석이었던 내 몸이 조금씩 반응함을 느낀다...

2부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었다.
아직 심도있게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파지않은 탓도 있지만,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들은 무언가가 가슴 깊숙한 감정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어릴때 보았던 영화 샤인의 영향 탓일까. 어려운 피아노 연주곡. 여기까지가 그의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을 계기로 조금, 라흐마니노프가 가슴을 비집고 노크하기 시작했다.
페트렌코의 우아하고 섬세한 손짓에 따라 춤을 추는 단원들의 몸짓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 그래! 이조합이다! 이 조합 찬성일세!
공석으로 남아있는 시향의 빈자리가 혹시 그의 자리가 아닐까?
정명훈의 농익은 지휘 아래, 밑바닥부터 성장해서 절제된 품격을 끌어올렸던 서울 시향이,
젊은 지휘자와 만나자 감춰졌던 흥을 드러냈다.
품격의 소리보단 오히려 격정의, 춤의 리드미컬한, 참신한, 통통 튀는,
유쾌한 소리를 들려 주었다.
전자와 후자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연주자는 지휘자의 지휘아래 그 성격이 바뀌는 것이다.

정명훈 지휘자가 떠나고 시향 그들을 지휘했던 여러 지휘자들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미래를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한 순간 미래가 떠오르는 찰나의 순간. 생각도 못했던 감정과 생각이 뇌를 스치고,
결론을 내버렸다. 서울시향과 페트렌코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1, 2 악장을 숨쉴틈없이 파고든 격정의 파도가 생각의 문을 노크했고,
3악장의 부드러운 선율에서 확신을 주었다.
격정과 부드러움의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지휘자는 많지 않다.
악장이 나뉘어 있지만 그 여운은 분명 남기에 혼재 될 수 밖에 없는 소리의 감정이. 정확히 분절된 채, 각자의 독립적인 감흥을 전달한다.
전 악장의 여운을 이어가면서도 또다른 깊이로 그 여운을 지워가는 것.
오늘 페트렌코의 라흐마니노프에서 느낀 감정의 수확이다.
특히 3악장의 클라리넷의 선율에 조용히 눈을 감고, 여름으로 넘어가기전
찬기운을 적당히 머금은 풍성한 햇살에 온 몸을 던지고 미소짓는 셀프 VR을 경험했다.

지휘자의 지휘는 정확했다. 춤을 추면서도 정확히 지시했고, 그 지시에 단원들은 또 정확히 소리를 내어 주었다. 관악의 소리가 공간 탓!!에 조금 묻혀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완성한 연주였다. 모두가 실수없이 잘.
실수없는 연주를 얼마만에 본 것인가....

팀파니스트는 시향 단원이 된것인가? 전에 말러 연주때 슈텐츠의 객원이라고 생각했던,
하얀 뽀글머리 팀파니스트가 오늘도 앉아있었다.
연주를 잘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너무나 반가웠다.
노다메칸타빌레의 팀파니스트처럼 뽀글머리 존재감을 계속 드러내 주길.


(사전 인터뷰) 서울시향의 첫 인상은 어떤가요.

“매우 좋았어요. 잠재력이 많고, 이를 표현하려는 의지가 강한 악단 같았어요. 다른 악단보다 연령대가 젊더라고요. 방금 리허설을 끝내고 왔는데, 마지막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이었어요. 극적으로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부분이라, 그 긴장감과 악보상의 코드가 한꺼번에 폭발해 울컥했죠. ”


그래, 나도 울컥했다.
지휘자의 감정과 실제 관람객의 감정이 통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소리없는 지휘봉을 들고, 서울시향을 계속 지휘해주었으면 좋겠다.
매달 그와 시향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현재 서울시향에는 상임지휘자가 없는데, 상임지휘자의 덕목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좋은 음악인이어야 하고 단원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개개인을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들을 조화로운 오케스트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또 사회적인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지휘자여야 합니다. 가장 큰 지휘자의 역할이라면, 오케스트라는 지역사회의 일부이기에 지휘자가 관객과 더 많이 교류해야 해요. 정부·언론과도 긍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더 높은 곳만 지향하려 하지 말고, 현실 속 사회를 더 빛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덕목과 동시에 항상 배려와 존중을 갖춰야 합니다. 강압적, 군주적으로 이뤄나가는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옳소!!!!!!!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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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나의 저급한 리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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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지켜야 할 클래식 공연 관람 에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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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 리뷰) 스타콘서트 :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with Tamas Palfalvi (180330 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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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 리뷰)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의 차이코프스키 No.5 (180323 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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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셨네요 ^^
페트렌코(키릴)가 래틀을 넘을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 언젠가는 해낼지도 모르죠 ㅎ
뒤의 페트렌코(바실리)는 아직은 제겐 낯설군요. 젊은 혈기가 있으니 조금 더 좌충우돌하면 다듬어질 날이 오겠지요.
좋은 공연리뷰 잘 봤습니다 .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래틀도 과거엔 참 혈기 왕성한 젊은 지휘자였으니까요 ㅎ 세대교체를 즐겁게 지켜보는 것도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것도 즐겁습니다!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조율님 돌아오셨네요 !!!!!!
자신의 철학과 의중대로 지휘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페트렌코 지휘자는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요. 직접 듣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ㅠㅠ

반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정말 오랜만에 음악에 흠뻑 빠져서 하루 종일 즐거웠던 날이었어요~
올해도 좋은 공연 많으니 조금만 시간내 보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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