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본질에 대한 질문 (1) : 화폐란 무엇인가?

in #kr7 years ago (edited)

뉴비 철학자입니다. 스팀 경제에 대한 세 번째 글입니다. 

오늘은 암호화폐의 본질에 대한 고찰의 출발점으로서 '화폐의 본질'이 무엇이지 살펴보는 포스팅을 합니다. 

암호화폐(cryptocurrency)는 화폐(돈, money)일까요, 주식(stock)일까요, 징표(token)일까요, 상품 (commodity)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요? 최근에 이 질문과 관련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저는 이 주제를 철학적으로(주류 경제학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이 문제를 살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지은 "삼성이 아니라 국가가 뚫렸다: 들뢰즈, 과타리 이론으로 진단한 국가, 자본 그리고 메르스"(길밖의길, 2015)라는 책의 한 대목(54~58쪽)에서입니다.

우리는 보통 화폐를 '지불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환의 매개'라는 것이지요. 나와 주인은 화폐를 매개로 커피를 교환한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점에 이른 화폐의 본성을 가리고 있습니다. 화폐의 본질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신용'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이 주장의 근간이 되는 내용을 제 책을 인용함으로써 대신합니다. 보기 편하게 편집을  바꾸었습니다. 풀어쓴 글이 아니어서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차분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화폐란 무엇인가?


‘노동가치설’이란 가치가 노동을 통해 생산된다는 통찰로, 스미스(Adam Smith)나 리카도(David Ricardo) 같은 고전 정치경제학자가 발견했으며 맑스(Karl Marx)도 적극 수용했다. 맑스는 "자본"(Das Kapital) 1권에서 “추상적 노동”을 고찰한다. 설명이 필요할 독자를 위해 짧게 설명해 보자. 

사람들은 다양한 구체적 노동을 한다. 쌀농사도 짓고, 베도 짜며, 집도 짓는다. 이런 일들은 모두 인간의 생산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바로 이 공통점 때문에 이 활동들은 하나로 묶일 수 있는데, “추상”은 본래 (공통된 특성 따위를) “뽑아낸다”는 뜻이기에 그 공통 활동을 “추상적 노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전 정치경제학자나 맑스가 분석하려 했던 것은 “부(富)”의 원천이라는 문제였고, 그 문제틀 내에서 “추상적 노동”의 발견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가치는 추상적 노동이 구체적 형태로 행해짐으로써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생산된 가치의 양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해당 사회의 평균 노동 능력이 얼마의 시간 동안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측정 가능하다. 그리고 이 평균 노동력의 사용 시간에 근거해서 생산물들 간의 등가교환이 정당화된다. 상품의 성립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맑스는 이로부터 “노동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자본가가 구매할 때 지불한 노동력의 가치(“임금”)와 생산된 재화의 가치(상품의 “가격”) 간의 차이(“잉여가치”, 증대된 가치)가 착취되는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앞에서 임금노동을 하게 될 때 임금보다 항상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이 내용과 관련된다. 

하지만 노동가치설을 자본 일반의 운동과 관련해서 보면 명백한 충돌이 생긴다. 자본 일반의 운동은 아버지 자본이 자식 자본(이윤, “잉여가치”, 증대된 가치)을 낳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만이 자본의 본질을 규정한다. 반면 노동가치설을 따르면 자본의 증식은 오직 노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자, 생각해 보자. 다른 방식으로 자본의 증식이 일어날 수는 없는 걸까? 

이 대목에서 들뢰즈(Gilles Deleuze)와 과타리(Felix Guattari)는 “화폐”의 본성에 주목한다. 화폐는 단일한 본성을 가진 실체가 아니다. 화폐는 실제로는 완전히 상이한 본성을 가진 이종적(異種的) 존재물을 부르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폐는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이다. 노동가치설에서 상품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바로 이 화폐를 통해서이다. 임금, 상품 가격, 이윤 등은 모두 이 화폐로 측정된다. 반면 이와는 완전히 다른 화폐가 있는데, 그것은 “금융” 차원에서 존재하는 화폐이다. 이 화폐는 은행이 기업에 “대출”함으로써 탄생한다. 이 화폐는 부채관계의 성립을 통해, 즉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채권 형태로 등록되고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채무 형태로 등록되면서, 기업 통장에 탄생한다. 오늘날 기업 대출은 실물 담보 없이도 이루어지며,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과 같은 형태의 신용 대출이 주를 이룬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미래 이윤을 담보로 천문학적 액수의 대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화폐의 창조라 할 만하다. 

바로 이 화폐 창조 능력이 자본주의의 운동의 본원지이다. 물론 은행도 하나의 기업이므로 이런 종류의 대출에는 많은 안전장치가 따른다. 은행이 채권자가 되는 것은 이윤이 발생한다는 조건이 갖춰질 때뿐이다. 궁극적으로는 국가와 중앙은행이 기업의 신용 보증인 역할을 한다. 국가와 자본의 공모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국가의 초월적 권력은 바로 발권력(發券力)과 치안력을 통해 작동한다. 돈이 부족하면 더 인쇄하라. 치안을 통해 사적 소유와 시장 기능을 보호하라. 

물론 설명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실제로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려면 상품이 생산되어야 하고 나아가 완전히 판매되어야 하리라.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시점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주기적으로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위기의 참된 원천은 여기에 있다. 왜 과잉생산이 생기는가? “과잉”이란 팔리는 것보다 더 많다는 뜻일 뿐이다. 구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팔릴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다 못 파는 것이다. 과잉생산은 화폐를 창조하기 위한 조건이다. 자본은 자신의 유일한 목표인 자기 증식을 위해 위기를 내적으로 조성하며, 위기를 통해 늘 뚫린다. 이 얼마나 변태적인 괴물인가. 

그런데 맑스는 임금이 어떤 수준에서 책정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노동을 안 해서도 안 되고 못 해서도 안 되는 수준을 유지하는 일이다. 일당(日當)이 굳이 다음 날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면 공장은 가동될 수 없다. 일당이 너무 적어 노동자의 자기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질병, 쇠약, 죽음 등) 공장은 가동될 수 없다. 맑스는 지불되어야 할 임금의 최소 조건을 통찰했다. 자본은 임금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시간을 관리한다. 역으로 노동자는 삶의 시간을 돈과 바꾸어야 간신히 연명할 수 있다. 여기서 “일당(日當)”은 주급, 월급 또는 연봉이라고 바꿔 말해도 상관없으며, 현대의 노동자는 모두 이 원칙에 의거해서 관리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본가도 자본의 가장 충실한 종노릇을 하고 있기에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노동자가 자본의 종이라면, 자본가도 자본의 종인 건 매한가지이다. 단지 더 직급이 높은 종일 뿐. 이런 식으로 자본은 모든 사람의 삶의 시간을 관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풍요 속의 빈곤이란 재화의 빈곤이기 전에 시간의 빈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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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가령 창수가 갑돌이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 먹고 "너에게 5000원을 빚졌다. 이 쪽지의 소지자에게 5000원어치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적은 쪽지를 갑돌이에게 줍니다. 갑돌이는 영수 네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 먹고 창수에게서 받은 이 쪽지를 줍니다. 영수는 창수 네 집에 가서 이 쪽지를 주고 저녁을 얻어 먹습니다. 창수가 써준 쪽지는 '너에게 빚졌다'는 채무증서이고 이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갑돌이와 영수가 수용했다는 점에서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인정하는 신용'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창수, 갑돌, 영수가 행동으로 창출한 '신용 네트워크가 화폐 현상'이다. 즉 화폐는 애초부터 신용이다. 이렇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창수가 국가일 때, 바로 국정화폐가 된다고 이해할 수 있죠. 채무증서를 지불수단으로 신뢰하는 순간, 개별적 노동이 보편적 노동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추상'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고요.

좋은 비유와 설명 감사합니다~

자세히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에 훨씬 보탬이 되네요.

뭘요.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것들을 가지고 꾸며본 상상입니다. 2013-14년경에 이 내용을 여러가지 출처를 번역하고 해제를 쓰면서 공부해 보려다가 실패하고 다른 것들만 번역하고 있네요.

팔로하면서 글 애독하겠습니다.

어이쿠, 선생님. 그러시면 가뜩이나 허튼소리 전문가인 저로서는 손가락이 떨려서 잘 못 적을 것 같아요. (사실 스팀잇에 고무되시는 모습에 저도 많이 고무되고 반가웠습니다. 헤체로시스님과 더불어 계정을 판 직접적 동기이기도 하구요. )

처음부터 손가락에 너무 힘 주지 말고 써보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스팀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보내주신 스팀달러 잘 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후원은 @woo7739이 안내해 주셔서 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기여하겠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유형의 글입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더 좋은 글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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