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위에 꽃이 핀다

in #kr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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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그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는 노래 가사를 들었다. 뒷 부분은 평범한 사랑 이야기에 자기 연민 밖에는 없었지만 앞 부분은 실로 명곡이다.

십대와 이십대 초반에 힘들었던 시간의 키워드가 나태나 비합리, 자기 연민, 자기애, 열등감과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의 보상심리, 선악의 이분법이었고, 특히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고대하였던 메시아(성경의 그분 말하는 건 아니고 비유적 표현임)에 대한 기대 등이 있다면,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을 관통했던 주제는,

사람을 논박하는 것은 것은 그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나 생사여탈권 정도를 쥐지 않는 이상 반발만 산다는 점,

대부분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별 거 없다는 자기 인식을 가지기보다는, 활기찬 희망과 보다 괜찮은 자기 인식을 가지기 위해 믿음을 가진다는 점,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간의 유대감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한다는 점,

설령 신념에 기한 연대에 의존하는 패턴이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투사한다는 점,

이성으로 윽박지르는 것보다 나를 낮추고 그 사람 기분을 맞추어 주는 것이 쉬운 대안이라는 점 등이 있다.

이제 완전히 나를 직접 먹여살려야 할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얻을 것이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하루에도 수차례 이루어지는 지금은 더 그러하나, 실은 돈 문제가 결부되지 않은 젊은 시절에도 이걸 알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나는 보통 내 말이 맞다고 독설을 휘두르며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게 만들곤 했는데 그렇게 여러 기회를 잃었다.

내게는 지나간 시대의 유물로 취급되던 어떤 행동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 체계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첫째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과, 두번째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가치 체계를 순응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표면적으로 거기에 반하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떤 이슬람 국가의 왕가가 지독한 종교 근본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나라 땅에 있는 석유를 추출할 권리나 토목 사업을 수주하려면 최소한 면전에서는 그걸 비하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만약 세상 유능한 여자 CEO라도 해도 별 수 없이 그 자리에는 히잡을 쓰고 가거나 아니면 다른 남자 직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비즈니스적이지 못했다.

똑똑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똑똑한 맛에 살다가 후회할 일도 많이 만들었다. 특히 투자라는 것도, 아예 새로운 판을 만들어 낼 능력이 없다면 결국 집단의 심리를 읽고 거기 딴 반박자만 앞서 가야 하는데 이론적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미래의 어떤 결과를 단정적으로 기다 부다를 말하는 게 결국 대중과 싸우는 것(심지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으니 엉뚱한 쉐도우 복싱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밖에 더 되지 않았나. 지금 부동산이나 암호화폐를 사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중의 심리에서 살짝 앞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많은 돈을 벌었고 EXIT도 다 했다. 논리적으로 왜 틀렸는지를 열심히 증명해도 가격은 왜 내가 틀렸는지를 논증할 뿐이다. 결과론적 해석에 불과할지 모른다만 사람들이 가진 믿음이라는 것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늘 틀릴 수 있다는 것, 존경받거나 자기 과시를 하려는 욕망(포괄적으로 남을 가르치거나 '교화'하려는 욕망 따위를 포함한다)을 내려놓으면 대단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데 특히 자기 PR이라는 자아팽만감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관심 없이 관찰하는 것의 효용이 크다는 점을 잘 유념해두자. 감정적 상호작용에 휘말리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데 그 말인 즉슨 소시오패스처럼 남을 이용해먹을 궁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남과 감정적 대치점을 만들 정도로 팽팽한 자아를 들고 비즈니스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욕망과 행위가 일치하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고 싶은 욕망이 큰 젊은 시절이라면 무언가 PROFIT을 득하는 결과보다 순간 싸대기를 올려붙일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우선이었겠지만 그래서 지금 후회하지 않는가,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는가, 앞으로도 매 문제에 대한 해답 풀이 과정은 다르겠지만......

실은 정말 놓치고 속이 쓰려 데굴데굴 굴렀던 기회들은 돈이나 투자에 관련된 것들은 아니긴 하고... 또 싸대기를 올려붙였던 그 행동들을 다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고 어딘가 아픈 구석이 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바꾸는 어떤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보다 사람들과 더 잘 지낸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인생, 사랑하는 사람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며 매순간이 즐겁게 지나간다. 다행이다. 수 많은 관계의 종말, 그 위에 세운 여러 무덤의 시체들이 지금 이 화원의 영양분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사람은 죽을 정도의 일이 생기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무덤 위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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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경험이 현재에 영양분이 된다면 후회보다 기회와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네요~!
풍류님은 뭐 다 잘 하시니까 ㅎ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ㅎㅎㅎ 저도 진짜로 뭐든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박히는 글이었어요. 특히 아래 인용구, 늘 잘 읽고 있어요. 감사드려요.

자기 PR이라는 자아팽만감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관심 없이 관찰하는 것의 효용이 크다는 점을 잘 유념해두자.

아 네 읽어주셔서 저도 진심으로 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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