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다치다

in #kr-writing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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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뉴비로 얼마 간 '열심히' 활동하다 갑자기 사라지고, 그렇게 잊혀져갈 때쯤 불현듯 나타나 이렇게 생존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웃 스티미언들께서는 저를 기억 하실는지요. 사실 기억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뉴비 티를 벗지도 못한 채로 어디 갔다가 또 뉴비 티 못 벗고 나타난 셈이니까요. 염치 없는 바람이지요. 그럼에도 어쨌든 저는 이웃분들을 못 잊고 돌아왔습니다. 모쪼록 '미워도 다시 한번' 아닐는지요.

남의 집 들어가듯 우물쭈물 눈치보다 슬며시 접속했더니 세상에, @sleeprince 님께서 댓글로 안부 물어주셔서 순간 울컥,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세계에선 떠돌아 다니느라 집이랄 게 없는 지경인데 여기선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드네요. 스티미언 분들과 오래 교류해왔던 것도 아닌데 묘한 일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과 활발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경험이 스스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슬그머니 들어와 타임라인 위에 모르는 척, 이렇게 뻔뻔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사실 아무도 큰 관심은 없으시겠지만, 근황 보고를 드립니다. '바빠서'라는 말은 뭔가 저 자신에게도 무책임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요. 일단, 목을 다쳤습니다. 갑작스러운 통증과 마비가 쏟아들어져 와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자목 증후군'이라는 흔하면 흔한 병인데, 목이 심하게 굳어있어 두 차례에 걸쳐 목 부근 여기저기 주사를 맞고 교정운동을 다녔습니다. 사람이 평소에 그렇게 목 근육을 많이 쓰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목이 2~30도 이상 옆으로 안 돌아가는데, 침대에 한번 누우면 통증 때문에 몸을 돌리거나 다시 일어나기 위해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눕고 일어나기만 하면 신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게다가 걸을 때마다 자연스레 몸에 진동이 오는데 그럼 곧바로 목에 통증이 가해져 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몸 어디를 움직이든 목 근육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 곳이 없다시피 해서 신기하고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자연스레 생활의 많은 부분들을 놓아버리게 되더군요. 스팀잇에 접속하지 않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출퇴근하고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잠들고 하는 것 외에는 몇 주간 몽땅 생략된 생활을 해왔습니다. 삶의 활기란 사소한 부분들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비추어보건대, 흡사 돌멩이처럼 지내온 셈입니다. 아, 체조도 하고 베개도 바꾸고 의자 등받이도 구매하긴 했네요. 덕분에 지금은 꽤나 나아졌습니다. 인간이 몸뚱이 외에 다른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생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음, 언급할 만한 일이 하나 더 있었네요. 세네 명의 사람들과 인감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근 수 개월 간 빠져나와야지 다짐해왔던 그룹이기에 후회하진 않지만 퍽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왔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도저히 제 성정과 맞지 않는 성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술, 노래, 주식, 골프를 몹시 애정하는 '호쾌한' 이들로, 업무 관계 상 자주 만났고 이래저래 형님 동생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술자리에 노래방에 이끌려 나갈 때마다 뭔가 갉아먹히는 기분에 시무룩하곤 했습니다. 자정 넘어서까지 함께 있다 귀가해 자고 일어날 때면 숙취와 더불어 알 수 없는 자괴감에 시달리던 나날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무섭게 시달렸습니다. 드센 남성들로 구성된 '가부장적' 그룹의 분위기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탓도 있습니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다 개입해 들어오는 그 권위주의적 표정들에 말이죠.

뻔한 말이지만 어쨌든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기함을 넘어 신비롭기까지 한 것은, 환경적 여건 때문이라고는 해도 그토록 상극이었던 이들과 긴 시간 함께 떠들며 지내올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내심 잃기 싫었던 사람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들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했던 게 더 컸지만 말입니다. 결국 근무지가 멀어지자 연락을 줄이는 방법으로 끊어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들 중 한명으로부터 절교선언을 받기에 이르렀지요. 저를 만나지 말 것을 내부적으로 종용했다고도 들었습니다. 연락 줄였다고 절교를 선언하는 데까지 갈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깔끔하게 정리된 셈입니다. 마음이 아릿하긴 하지만요.

이런 나날을 보내고 빙빙 돌아 지금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삶의 변곡점에서 늘 경험하는 바이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 글쓰기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치사하다'고 느낍니다. 인정하기 힘든 모멸감임니다. 평소 그리 글쓰기를 하네 마네 하면서도 가장 가까워야 할 시간에 도리어 글쓰기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글쓰기가 제게 복수한대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고쳐나가야 할 일이지요. 좀 더 쓰고 읽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다시 이것저것 다시 써보려 합니다. 회복의 시간입니다. 또 한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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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제가 프린스님한테 키티펑크님 왜 안오시냐고 해서 쓰신 댓글일걸요?ㅎㅎ 잘 오셨습니다.

에이 제가 먼저 제이미님 글 캡쳐해서 제이미님이 먼저 찾으셨다고 훈훈한 상황 만드려고 했는데.

역시 생색은 딱콩ㅠ

헛 그랬군요ㅋㅋㅋ 두 배로 감동인 것입니다... 제이미님 다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ㅎㅎ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목을 다치셨었군요. 바쁘면 괜찮지만 혹여 어디 크게 다친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걱정의 절반이 실현되어 있었군요ㅜㅜ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미님이랑 기억해주신 게 돌아오는 용기를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ㅎㅎ

목을 다치셨다는 제목을 보고 클릭을 하게되었네요! 저도 1년전에 목디스크 진단받고 고생하다 지금은 불편은 하지만 그런데로 괜찮네요! 하루빨리 통증에서 해방되시길 바래요!

의사선생님이 목디스크 위험성 이야기 하셨을 때 안그래도 철렁 하더라구요. 현대인의 고질병이라니... 아무튼 얼른 완벽히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많이 알게된 느낌 이네요.
아픈 목이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 거네요
자주 뵈러 오겠습니다.
좋은글 많이 적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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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비에서 사라져서 뉴비로 돌아오는...... 제가 더 할걸요.!
저도 오랜만에 다시 활동 시작하며 안부 남길겸 찾아왔습니당!
일자목 증후군 때문에 고생 하셨겠네요. 이제 앞으로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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