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PANic Song -chapter 6] EVIL(2)
혜원은 사진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한 장 씩 펼쳤다. 분명, 여기엔 불법 사채업자나 조직폭력배의 손에 죽임을 당한 피해자 시신에게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
돈을 돌려받겠다는 의지. 채무자를 독촉하고 윽박질러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겠다는 계산된 폭력의 냄새. 이 사진에는 사채업자의 독살스럽고도 지독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느껴지는 건, 순도 높은 적개심, 원한범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하고도 어두운 푼크툼(punctum) 뿐이다.
“그래도 이건… 뭔가 이상한데?”
“그치? 역시 선배는 감이 좋아.”
후배는 가벼운 코웃음으로 혜원의 반응에 답했다.
“처음에는 강력계에서도 옳다구나, 했다나 봐요. 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조직범죄의 증거를 확보했다 이거지. 근데 이게 사건을 조사할수록 이상한 점이 너무 많은 거라. 이 정도 사체 훼손이면 이거 사람을 잡아 족치겠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거잖아? 정말 돈 없어서 토해낼 게 없는 사람을 그 새끼들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죽여서 방치하겠어? 그 독한 새끼들이? 못할 말로 이것들 입장에선 통나무 장사 하나 대동해서 각막 떼고, 콩팥, 심장 떼고, 팔아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다 빼먹고 팔아버리면 그만인 건데 말이에요.”
“맞아. 보통은 그렇게 처리하지.”
“만약 이 사람이 빚쟁이가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없애 버릴 만한 놈이었다고 해도 그래. 그럼 이것들이 미쳤다고 시체를 이런 식으로 버려두겠냐고. 어디 야심한 곳에 몰래 파묻어 버리거나, 시멘트 발라서 바다에 던지거나 시체를 통째로 갈아서 흔적 하나 없이 증발시켰겠지, 그게 얘네 스타일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거야. 시체를 은폐한 것도 아니요, 장기를 빼간 것도 아니요, 보란 듯이 자기들 비밀 아지트 근처에 떡, 하니 시체를 전시해놓다니,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이 새끼들 싹 다 잡아들여 조사를 시작했는데, 강력계 애들도 여기서부터 진도가 안 나가더래요. 사채업자 새끼들은 죽어도 자기들이 한 짓 아니라고 잡아떼지, 추가증거는 안 나오지. 강력계 애들도 처음에는 이 새끼들이 그냥 발뺌하는 걸로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게 이상하거든.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일단 뭐, 어떻게든 수사는 계속되고 있는 것 같지만, 선배도 솔직히 이상하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시체가 발견되는 경우, 선배는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 봐.”
여기 내 손으로 죽인 시체가 있다고 보란 듯 광고하는 꼴이라니, 이건 일반적인 폭력배의 소행이 아니다. 자기과시욕에 취한 사이코패스, 혜원은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으려다 속으로 삼켰다.
“선배, 듣고 있어요?”
“어, 그래. 계속해.”
“알았어요. 그래서 이게, 처음에는 조폭 새끼들 조지는 방향으로 수사를 시작했는데, 이게 뭔가 이상하다 싶으니까 강력계 애들도 일단 이 건은 잠시 유보했다나 봐요. 걔들 입장에서는 예전부터 내사 중이던 조폭 새끼들을 일단 잡아들인 게 더 중요한 일이니까.”
“결국 조폭들의 소행이라는 확증은 못 잡았다는 거네.”
“예, 그런데 그 즈음, 말이에요.”
“그 즈음?”
“이 살인사건이랑 시체유기 건에 관한 수사가 지지부진할 즈음이요. 처음 사건 접수 받은 신고센터를 중심으로 좀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나 봐요.”
“이상한 소문?”
“그게 그러니까, 신고센터에서 강력계 쪽으로 문의가 몇 건 들어왔었다는 거지. 이 사건 신고한 놈 누구인지 혹시 밝혀졌느냐, 뭐 그런….”
“신고한 사람? 그 사람이 왜?”
“그게, 이 사건 신고자가 좀 수상한 점이 많았다나 뭐라나.”
“수상한 점? 어떤 점이 수상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 신고자가 시신이 유기된 장소를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건데요.”
“그게 특별히 문제가 돼?”
“아니에요. 이게 얼핏 들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확실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현장 사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시체 발견 위치가 이름도 없는 야산 중턱 어귀거든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악명 높은 양봉장 근처라 산책로나 등산로 같은 게 따로 있지도 않고…. 그럼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거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발견했다한들 설명하기도 굉장히 껄끄러웠을 거다, 이거지.”
“흐음…”
“그런데 그 신고자 녹취내역을 들어보면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그 장소를 설명해요. 어디어디 양봉장 북쪽 뒷산 도보로 50m 거리, 계곡 내려가는 길목 큰 바위 아래, 솔직히 이런 식으로 현장을 정확히 찍어서 가르쳐주는 신고가 흔하냐고. 산 속에서 그런 엽기적인 장면을 목격했다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기 바쁠 텐데.”
“지형지물까지 활용해 가며 매장 위치를 설명했다?”
“예.”
“그건 확실히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네.”
“그렇죠? 게다가 그 신고 말인데요. 휴대폰도 아닌, 공중전화로 신고가 접수됐단 말이죠.”
“공중전화?”
“그렇다니까. 전화 위치추적 결과 그 제보자, 매장위치와는 제법 떨어진 시내 공중전화에서 신고를 넣었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산에서 시체를 처음 봤다면, 바로 휴대폰을 때렸겠지. 그게 아니면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거나. 그게 상식적이지 않아요?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한참이 지난 다음 유유히 산에서 내려와 굳이 공중전화를 찾아가 신고전화라니, 좆나 수상하잖아요.”
“현장에서 떨어진 공중전화에서 신고전화를 했다….”
“그렇다니까. 그러다 보니 나중에 그런 얘기가 나돈 거예요. 신고한 사람, 혹시 그 놈이…”
“범인 아니냐?”
“…가능한 얘기죠.”
“그럼 이 사진 속 피해자가…”
“맞아요. 사진 속 피해자가 방금 말한 그 사람이에요. 2년 전에 전역해서 사업하다가 사채업자한테 빚진 채 도망 다니던 사람이요.”
이거였군. 녀석이 이번 사건을 연쇄살인으로 확신한 이유는. 범인은 빚 독촉에 시달리던 피해자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꼬리가 잡히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걸까. 그래서 이런 식으로 사채업자들의 비밀 장소를 활용해서….
상념을 정리하기 위해 혜원은 버릇처럼 메모지 한 장을 꺼내어 들었다. 만약 우리의 추리대로 이 사건 신고자가 최근의 살인범이라면, 이 자는 어떻게 양봉장과 사채업자들과의 관계를 알 수 있었던 거지? 이건 또 다른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혜원은 범인과 사채업자, 그리고 양봉장이라는 단어 아래에 굵은 밑줄을 두어 번 그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조금씩 한 곳으로 모이고 있다.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낱알들이 이제 제법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혜원은 애써 들뜬 마음을 다잡았다. 이 모든 게 진짜 동일인의 소행이라면, 세 가지 사건을 엮을 연결고리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