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유치장에서 창살 밖을 내다보며.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어릴 때 어머니 몰래 오락실에 가서 5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고 20~30분 정도 게임을 하고, 30~40분 정도 남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께서 항상 '너 이녀석! 엄마 말도 안듣고! 경찰서에 신고해서 감옥에 가두라고 해야겠다!' 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산타영감님이 없다는 것을 이미 어린 나이에 깨우친 나는 그 경고에 굴하지 않았다. '경찰이 무슨 할일이 없어서 나같은 꼬맹이를 가두겠어, 경찰청사람들 아무리 봐도 감옥에 갇힌 초딩은 없더라.' 따위의 생각이 앞선 탓이다. 세상 부모들에게 고하노니 싼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도 더 잘 듣는 법이다.


나와 같이 오락실을 출입하던 친구 녀석의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셨다. 평소 성격도 무섭고 추진력이 대단하신 분이셨다. 친구의 아버지 덕분에 일이 터졌다. 평소에 오락실과 관련된 그 버릇을 고치려고 단단히 벼르시다가 움직이신 것이다. '이 자식, 내 너 한 번 울리고 만다.'는 그의 로켓 같은 의지에 '꼬맹이들을 진짜로 경찰서 유치장에 가둬놓기'라는 목표를 행동으로 옮기셨다. '하면된다'는 그 아저씨의 정신은 동네 파출소의 경찰아저씨와의 무언가 끈끈한 동질감-애 키우는 어른끼리 통하는-을 만나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생각컨데 당시 '우리 애가 탈선하기 전에 겁을 줘야하는데 좀 도와주시오.'라는 부탁에 대해서 아동학대니 월권이니 하는 검열보다는, 좋은게 좋다는 동네 정서를 우선했던 것 같다.


나와 친구는 그 날도 오락실에서 해가 저물도록 총으로 악당을 물리쳤고 장풍으로 두목을 해치웠으며, 팬티만 입은 남자가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며 칼을 던지는 걸 구경한 뒤 사이좋게 빠이빠이를 외치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무언가 모를 싸늘한 분위기, 부모님은 얼굴에 냉소를 띄우며 '야, 전화왔다. 받아 봐."라고 턱으로 전화기를 가리키셨고, 전화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니 낯설고 굵은 목소리가 '어이 학생, 오락실 너무 많이 갔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감옥에 잠깐 와야겠어. 부모님 손잡고 얼른 와."라고 말했다. 하늘이 노래졌다. 이게 사실인가. 에이, 설마 장난이겠지.


그렇게 도착한 도보 5분거리의 파출소, 문을 열자마자 친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오락실 다시는 안 갈게요. 엉엉엉." 설마설마하던 마음은 철창 안의 그 친구 모습에 완전히 무너졌고 귀에는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야한다.'는 경찰아저씨의 목소리가 윙윙거렸다. 둘의 절규가 너무 컸던지 철창 경험은 30분만에 끝났다.


대구시내에 유치장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유치장 체험이라니 어릴적 아찔했던 그런 순간이 떠올랐지만, 갈 곳 없는 주말에 집에서 아이와 인형들고 씨름하는 것보단 시내에서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먹고 오는 게 좋을듯하여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대구중부경찰서(대구 중구 서문로1가 1-4), 경찰서 청사 1층에 경찰역사관이 있다. 좁지만 관람객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있다. 실제 유치장으로 쓰였던 곳을 손봐서 일반인에게 오픈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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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 후 차키와 신분증을 경비초소에 맡기고 출입증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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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좌측의 문으로 들어가면 안내데스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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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관람하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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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판옵티콘 구조, 2층 중앙에 서 있으면 모든 수감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은 아이가 좋아할 내용이 별로 없다. 유치장 한 칸 한 칸을 테마를 정하여 꾸며놓았는데 경찰 복식의 역사, 순직경찰 추모관 등 초등학생 고학년쯤은 되어야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다. 1층으로 내려가면 실제 수감생활과 면회실, 과학수사(지문, 족적)체험실, 탑승 가능한 경찰오토바이, 어린이용 경찰복과 경찰모를 입어볼 수 있는 코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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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아저씨, 미남이시다. 키도 크다. 괜한 열등감에 얼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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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친구야, 와 그랬노. 미안해서 그랬나.
B: 아이다, 친구끼린 미안한 거 없다.


면회 창구 아랫부분에 작은 문이 있어 기어서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아이가 애 엄마와 화장실에 갔을 때 나 혼자 양쪽을 왕복하며 영화 '친구' 연기에 몰입했다. 두 손바닥으로 아크릴을 치며 "동수야!" 외치려는 순간 초등학생이 날 쳐다보고 있길래 험험 하며 얼른 나왔다. 아크릴 유리창으로 편지 한 통 정도는 주고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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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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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가니 갑자기 나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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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식사를 재현해놓았다. 밥과 시금치, 김치, 시래기국만이 식판을 채우고 있다.
고기는 어디로 갔는가,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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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님, 혹시 털실내화는 없나요? 제가 수족냉증이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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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좌측으로는 설거지하는 개수대, 우측으로는 변기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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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고 싶은데 문을 열어주질 않는다. 여보, 문 좀..



참 작은 공간이다. 방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옆에는 대엿섯명의 우락부락한 덩치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밥 먹으려니 변기에서 냄새가 올라오고, 창살 밖으로 시선을 두려니 2층의 간수와 눈이 마주치고. 어디 눈 둘 곳도 없고, 움직이지 못하니 식사시간인들 즐거울리 있을까. 끼니마다 꾸역꾸역 입에 넣기는 하지만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시간감각도 없을터. 이 느낌을 아이에게 설명해주고 싶었다. "나쁜짓하면 여기에 갇혀서 나가지도 못하고 맛 없는 밥 먹고 엄마아빠 못 봐."


제목에 낚여 들어오신 분께 드리는 사과의 말씀, 유치장에서 창살 밖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긴 했으니 용서해주세요.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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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영화 친구의 대사가 줄줄
유치장의 느낌이 제대로 전달 되었을까요? 아이입장에서 엄마아빠 못 본다는 건 엄청난 공포인데...

그 말에 감정이입해서 듣진 않더라고요. 고개만 한 번 끄덕. 이번에 말 해놓고 나서 아차 싶었던 게 이런 말을 하는 게 과연 좋은가 싶긴 합니다. 나쁜짓 하지마라, 거짓말 하지마라 등의 말들.

예전에 소설 쓸 때 유치장 풍경이 궁금해 관련 이미지를 구글링하다가 발견했던 곳이네요. 이렇게 보니 감회가 참 새롭네요ㅎㅎ

유치장 체험이라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주말에 가족끼리 나들이 다녀오는 모습 보기 좋네요 :^) 저도 기회가 되면 유치장 체험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작가가 되려면 일상적이지 않은 장소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는군요. 가족끼리 가기 좋은 코스였습니다. 옆의경상감영공원과 근대문화 관련 전시관들. 혼자 왔다면 그 옆의 '무궁화백화점'도 한 번 들러봤을 것 같네요. 언젠가 시내나왔다가 저기는 무언가 싶어서 들어갔는데 내부 구조가 특이해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거든요. 침침하면서도 눅눅한, 영화 속의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입니다.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대구님 ㅠㅠ 저는 산타가 있다고 믿는데요 ㅋㅋ

검정 고무신 ㅠㅠ
진짜 유치장 체험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너무 신기해요.

이야기의 배경이 검정고무신까지 내려가나요ㅜㅜ천사들의 합창 쯤의 시기라고 해두겠습니다. 요즘 별별 박물관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런 체험도 생기게 되네요. 앞으로 더 신기한 체험관, 박물관이 많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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