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방랑] 페루 산타크루즈 트레킹, 아름다운 것들은 느긋하게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일까 - 1편
길이 7,200킬로미터. 히말라야 산맥의 3배로 지구상에서 가장 긴 산맥. 남아메리카의 시작과 끝.안데스 산맥은 수많은 산군(山群)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으뜸은 블랑카 산군(Cordillera de Blancas). 5,000미터 급 봉우리가 500개, 6,000미터 급 봉우리만 해도 27좌.
그녀를 만난 것도 블랑카 산군에서였다. 그녀에게선 안데스의 냄새가 났다. 얼음산, 에메랄드빛 호수, 연둣빛 풀숲, 고원에 피는 야생화, 여우비 사이 무지개, 맑은 시냇물.
- 내 이름은 마르가리타랍니다. 여러분과 함께 3박 4일 동안 ‘산타크루즈 트레킹’을 할 가이드죠. 우리는 하루 15킬로미터 정도를 걸을 겁니다. 도시락과 물이 든 배낭만 챙기고 나머지 짐은 당나귀에게 맡기고 바로 출발해요!
강렬한 햇볕에 그을린 피부, 새까만 눈동자, 작은 키의 여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마르가리타가 ‘여러분’이라고 부른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영국에서 온 여행자들. 페루에서 가장 유명한 ‘산타크루즈 트레킹’은 우아스카란 국립공원을 말발굽 모양으로 도는 코스. 그녀는 반시계 방향으로 바케리아를 출발해 3박4일간의 여정이 끝나는 카샤팜파에 지금 막 도착한 참이라는데, 우리 일행을 데리고 다시 시계방향으로 돈다니!
- 마르가리타, 하루 쉬지도 않고 힘들지 않아요?
- 전혀. 산이 나의 집인걸요!
우리가 와라스(Huaraz)에서 타고 온 미니버스엔 오늘 산행을 마친 여행자들이 옮겨 타고, 이제 우리가 산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짐을 당나귀에 싣는 걸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 새파란 하늘. 뜨거운 햇살.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차가운 계곡. 우리는 낭떠러지 옆 가파른 길을 올랐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며 사람들 숨소리가 거칠어질 무렵 나타난 평지. 설산이 보이진 않았지만 자연의 품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U자형 계곡 가운데로 오솔길이 펼쳐졌다. 호숫가에 이르러 우린 런치박스를 꺼냈다. 치즈 샌드위치, 바나나, 초콜릿, 쥬스. 당나귀에 짐을 싣고 온 마부 출로와 마틴이 우리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제 캠핑장까진 편평한 초지가 이어진다며 저마다 제 보폭에 맞춰 걷다가 텐트가 보이면 오늘 산행이 끝이라고 했다. 걸음이 빠른 사람은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띄엄띄엄 걸었다. 보랏빛 야생화에 마음을 뺏긴 나는 자꾸만 뒤쳐졌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닿은 야마코랄(Llamacorral) 캠핑장. 이미 출로와 파블로가 텐트 7개의 텐트를 다 쳐두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드디어 석양에 반짝이는 설산의 새하얀 머리가 보였다. 고도 3.650미터.
아침에 일어나 요리사 에르네스토가 지은 밥을 먹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출로, 마틴, 에르네스토가 텐트를 걷고 뒤따라오기로 했다. 여행자들이 산타크루스 트레킹을 왜 ‘황제 트레킹’이라고들 부르는지 이해가 갔다.
투어비용을 치른 여행자가 할 일이라곤 그저 안데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걷는 것 외에는 없었으니까.
개 한 마리가 따라왔다. 캠핑장을 오가며 여행자를 따라다니는 개라고 마르가리타가 알려주었다. 이름은 룰루, 룰루는 일정한 거처 없이 트레커를 따라 캠핑장을 오가며 먹이를 얻는다고 했다. 같이 길을 가자고 한 것도 아닌데 앞서다가 사라지는가 싶으면 다시 나타났다. 주인이 있는 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개도 아닌 이상한 ‘경계’에 있는 개였다.
나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떠올렸다. 비록 집에서 기르던 개라도 어떠 계리로라도 한번 집을 떠나 '야성'에 눈 뜨고 나면 두 번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안락한 잠자리와 맛있는 먹이 대신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시스템에서 벗어나버린 사람도 다르지 않으리라.
하얀 바위들로 둘러싸인 아톤코차 호수를 지나 얼마나 더 걸었을까 다시 오르막이다. 2시간쯤 지나 마르가리타가 갈림길에서 물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알파마요 전망대가 나오고 직진하면 오늘 우리가 묵을 캠핑장이 나온답니다. 혹시 힘들어서 캠핑장으로 바로 가고 싶은 사람 있나요?”
아무도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들은 바론 일행 중 반은 고산증세로 떨어져 나간다고 하던데 투덜대는 이도 없고 다들 생생하기만 하다.
1962년 산악인들 사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로 선정되기도 했던 알파마요는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사 ‘파마운트사 로고’의 설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너무나 흡사한 모습 때문에 붙은 별칭일 뿐.
‘오호! 멋진 걸!’
감탄사를 내뱉기 무섭게 먹구름이 피라미드 모양을 한 봉우리를 뒤덮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좀처럼 느긋하게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걸까?
봄꽃이 그렇고, 우리의 청춘이 그렇듯이.
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우산챙기세요
고마워요, @virus707님, 도 환절기 감기 조심,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