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규제해야하지만 블록체인 기술개발은 장려해야한다?
정부 발표도 그렇고, 각종 기사들, 그 기사의 댓글들에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논리입니다.
(가상화폐라는 단어도 제발 암호화 화폐로 바꿔써서 싸이월드 도토리 얘기 하는 사람들좀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나름 이분야에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블락체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데에서 나오는 잘못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암호화 화폐 거래나 투자를 규제하는것이 왜 블락체인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블락체인은 암호화 화폐 없이 유지가 불가능하다
블락체인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탈 중앙 네트워크"에 있습니다. 중앙 기관을 신뢰할 필요가 없고 누구나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노드로서 참여 (채굴)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나 특정 세력에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며 아무리 큰 세력이라고 하더라도 전체 네트워크를 셧다운 할 수 없게 됩니다.
비트코인정도의 거래기록을 하는건 사실 100만원짜리 컴퓨터 한대만 써도 비트코인보다 100만배 빠른 거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싸이월드 도토리같은 경우에는 20여년 전에 나왔지만 현존하는 어떤 암호화 화폐보다도 빠른 거래처리를 할 수 있죠 ㅎ
그렇다면 왜 비트코인은 그렇게 비효율적이고 느린 속도 감수하면서도 수십만대의 값비싼 서버 (노드)들을 사용해야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비효율적인 채굴 과정을 거쳐서 거래를 처리하는걸까요?
만약 제가 비트코인을 발행하고 전세계 하루 수백조의 모든 거래를 제 노트북 한대에서 검증한다고 칩시다.
- 제가 갑자기 나쁜 마음을 먹고 거래의 0.00001% 를 제 지갑으로 보내는 코드를 심어놓는다고 하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하루에 몇 천만원씩을 훔칠 수 있겠죠.
-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세계적인 혼란을 가져오고 싶다면 저희집에 찾아와서 노트북 한대를 부셔버리면 그만입니다.
비트코인은 저 두가지 위조/변조의 문제(1)와 네트워크의 가용성 문제(2)를 채굴(1) 과 분산화(1) 라는 솔루션으로 해결합니다.
분산화
위의 예시처럼 제 노트북 한대만 가지고 거래 서버를 운영한다고 하면 누구든 그 노트북 한대를 물리적으로 부숴버리거나 노트북에 접속해서 코드를 수정하거나 하는 식으로 거래를 위조하거나 네트워크를 파괴 할 수 있습니다.
분산화는 크게 두가지 목적이 있는데
- 하나는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일을 분담하는것이고 (예) 나는 설거지할게 너는 빨래해
- 다른 하나는 데이터를 중복 저장함으로서 데이터가 날아갈 일을 막는것입니다 (예) 외장하드에 사진 백업
비트코인이 수십만대의 노드에 똑같은 데이터 (블록체인)을 저장하는 이유는 후자입니다.
거래를 위조 하려면 컴퓨터 한대가 아닌 수십만대의 데이터를 동일하게 위조해야하며,
네트워크를 파괴하려고 하면 수십만대의 컴퓨터를 강제로 셧다운 시켜야 하기 때문에
해킹에 대한 안전성과 네트워크를 전복시키려는 세력들로부터 수십만배 더 안전해지는거고 참여하는 노드들이 많아질수록 안전성은 비례해서 증가하게 됩니다.
채굴
하지만 분산화는 기술적으로 아주 어렵습니다.
예를들어 제가 동창회 회비를 관리하는 엑셀파일을 잃어버리거나 위조될 가능성을 낮추려고 USB 100개에 백업을 해놨다고 가정해보면,
- 저는 한개의 기록을 추가하려면 100개의 USB에 있는 엑셀 파일을 수정해야 하므로 시간도 오래걸리고,
- 누군가 저 몰래 몇개의 USB에서 데이터를 조작해서 복사본간의 데이터가 불일치 한다고 하면어떤것이 맞는건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암호화 화폐에서 저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안한 기술이 블락체인의 채굴과정입니다.
채굴 (mining)과 합의 알고리즘 (consensus algorithm)을 기술적인 설명 없이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비트코인과 같은 PoW의 경우)
돈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없다 (Money can't be faked)
입니다.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기록 (채굴)을 하려면 엄청난 양의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도록 만들어놨습니다. 이 계산은 어떤 의미있는 계산이 아닌 그냥 단순히 어렵기만 한 수학 문제인데요, 이는 블록을 만들어내는 (거래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얼마 이상의 돈 (전기세)을 썼다는걸 증명합니다.
다시 위의 동창회 회비와 100개의 USB 예로 돌아가보면,
만약에 한개의 USB에 있는 엑셀파일을 수정하려면 1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해봅시다.
누군가 동창회비를 횡령할 목적으로 100개중 51개의 USB에 있는 데이터를 조작하게 되면 제 입장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가 진짜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조작에 성공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51개를 조작하는 비용이 5100만원인데, 그로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그보다 적다고 하면 조작을 할 이유가 없겠죠.
자, 그럼 이제 저희는 파일 수정을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해킹에서 안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새로운 정직한 회비 기록을 하나 작성하려고 해도 매번 100만원의 돈이 필요해져버렸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해킹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으나 아무도 새로운 거래를 기록하려고 하지 않겠죠.
블록체인의 개념은 비트코인 이전에도 있었지만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해킹을 어렵게 만들자니 네트워크 유지비가 올라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수수료가 말도 안되게 높아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 화폐를 고안해 냄으로써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채굴자들이 거래를 기록할때 특정 인플레이션율만큼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거래를 기록할 동기부여 (보상)를 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로인해 거래 참여자들이 엄청난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채굴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코인의 발행 없이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유지할 동기부여가 사라지게 되므로 분산화된 블락체인의 개념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은 그 발행된 코인이 거래소에서 특정 가격에 거래가 되어야
채굴자들은 그 코인을 팔아서 네트워크 유지비용을 대고 일정 부분의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참여하고 싶어하는 채굴자들이 더 많아져야 네트워크의 안정성도 더 올라가서 블락체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것이죠.
PoS (Proof of Stake) 코인의 경우에는 조금 방식이 다른데요,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코인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 (이해 당사자들)은 기록을 조작할 이유가 없다
라는건데요, 만약 대시(Dash)의 마스터노드들이 담합해서 거래 기록을 조작한것이 밝혀지면 대시는 순식간에 가치가 증발해버릴것이고, 가장 큰 손해를 보는것은 가장 큰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마스터노드들이 될거라는 전제입니다.
변하지 않는 공통점은
코인의 발행 없이는 블락체인은 유지될 수 없다
라는 겁니다.
여기까지.. 제 부족한 필력으로 인해 잘 이해가 되셨을지 모르겠지만,
요는 코인과 블락체인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ICO나 코인 발행 안하고도 블락체인 기술 개발 할 수 있다
라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블락체인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꼭 ICO를 하고 토큰을 발행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독립적인 블락체인을 운영해야 하는건 아니거든요.
자금 조달이야 기존의 방식대로 VC (벤쳐캐피탈)을 통해서 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처럼 스팀 블락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dApp들을 만드는 회사라면 굳이 ICO를 할 필요도 새로운 토큰을 발행할 필요도 없죠.
하지만 저희가 스팀이나 이더리움같은 새로운 블락체인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면 새로운 블락체인을 만들어야 하고,
그 블락체인 네트워크를 유지 할 노드들이 필요하고,
그 노드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줄 새로운 코인의 발행이 필요합니다.
요즘 발행되는 코인들중에 대부분은 사실은 이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블락체인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방식에 비해 ICO를 통해 자금을 유치하는 방식이 자금 규모나, 마케팅적인 측면 등 여러모로 회사에 훨씬 유리하기때문에 굳이 새 코인을 발행하지 않고 그냥 이더리움이나 스팀등 기존의 블락체인을을 써도 될것을 일부러 새 코인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죠.
필요 이상의 자금 조달을 위해 의미없는 ICO를 하는것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에 대한 규제를 우리나라처럼 "ICO 불법"으로 정해버리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더리움이나 스팀같은 새로운 블락체인 플랫폼이 나오는 길을 막아버리는것이기도 하고,
거래소를 폐쇄하는건 그나마 다른 플랫폼들 위의 소소한 앱들을 만들고 있는 회사들의 수익성이나 자금 흐름도 막아버리는 일입니다.
"블락체인 기술 개발은 장려하지만 가상화폐는 사기가 많으니까 거래를 못하게 해야한다" 라는 말은
"건축 기술 개발은 장려하되 부동산 거래는 사기가 많으니까 부동산 거래는 못하게 해야한다" 와
다를 바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통해 더 건전한 방향의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글 정보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쓰고 싶은 글을 써주셨네요. 공감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B2B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 밖에 없는 private blockchain을 두고, 암호화폐는 필요없다고 얘기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제 관점에서 조금 다른 부분은, 사토시는 인센티브 모델을 만들고 그걸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암호화폐를 생각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엉뚱한 상상을 해보자면 인센티브로 암호화폐 대신 쌀이나 금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니까 안 되는 것이지요.
인센티브 모델이 100% 암호화폐 뿐이라고 해버리면 논리적인 공격을 당하는 지점이 되기 때문에, 인센티브 모델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암호화폐라고 보는 관점도 필요합니다.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ㅋㅋ
하지만 요즘 많은 블락체인 프로젝트 등이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도 그렇지만
블락체인과 오프라인과의 접점에서 실제 재화가 오고갔는지는 프로그램적으로 게런티가 안되고 제 3자 (authority)의 개입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토큰의 발행 밖에 방법이 없을것 같기는 하네요 ㅎ
코인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니가 자꾸 공격당하더라구요. 돈을 주자거나 거래 요청에 우선 순위를 주자거나(IOTA의 경우 채굴은 없지만 거래가 곧 일종의 채굴이 되는 방식이죠.)
채굴을 비영리재단에 맡긴다거나 AI가 대신 하는 상상도 있었습니다.
코인 외의 다른 모델을 고민해보는 것은 좋은 시도입니다만, 그렇다고 코인이 타도해야할 대상은 아닌데 말이죠. 주어진 생태계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다보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겠죠.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유인없는 투자, 개발이 어디있겠습니까. 코인 투기가 많다고해서, 블록체인 기술 개발의 원료가 되는 코인을 없애는건 어불성설인 것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원래 사람 간의 네트워크도 금전적인 보상이 없으면 돌아가기 정말로 힘들죠. 사람과 컴퓨터가 같이 묶여돌아가는 블록체인 역시 금전적인 보상이 없으면, 컴퓨터에게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일을 해달라고 일을 시키겠습니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블록체인과 코인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이쪽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ㅎㅎㅎ
저도 모르게 정독해버렸네요~
갑자기 이말이 생각나네요~
김치는 건강식이다. 맵고 짠 음식은 건강을 해친다
정독하게 되는 깊은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님덕분에 조금더 비트코인에 대해서알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