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쓰는 소설 5

in #kr-pen6 years ago

  조카를 데리고 다음날은 정말로 시내에 나갔다. 나가는 길부터 날이 궂었는데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더욱 빗줄기가 굵어져서 조카가 걱정을 했다.

  -엄마도 데려올 걸. 고양이들은 잘 있을까.

  밥을 먹고 우리는 이마트로 갔다. 햄스터는 크기별로 가격이 달랐다. 희정이는 의외로 큰 걸 사고싶어했다. 

  -저 회색 쥐, 저걸 사고 싶어. 제일 튼튼해보여.

  회색 쥐 두마리를 통에 담아 계산대로 들고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카트를 밀고 가던 사람들이 쥐를 보고 돌아갔다. 쥐와 눈높이가 맞은 어린아이들은 엄마손을 잡고 가다 눈 앞의 쥐에 화들짝 놀라 제 엄마 뒤로 숨기도 했다. 회색 쥐들이 바깥을 빤히 바라보며 주둥이를 씰룩대고 있었다. 계산원도 좀 놀란 듯 보였다.

  -이거 햄스터 자리에 있던 것 맞나요? 거의 그냥 쥐 같은데. 

  자기가 고른 햄스터에 반응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민해져 있던 희정이가 폭발했다.

  -아줌마, 계산하라했지 누가 품평질 하랬어요? 존나 깡촌 구석탱이 살면서 아줌마 진짜 쥐 본 적 없어? 아씨 졸라 짜증나네, 이래서 시골살면 안 되는 거야. 알았어 삼촌?

  희정이는 화가 나서 먼저 나갔다. 나는 계산을 하고 따라갔다. 집으로 차를 몰아가는 내내 천둥 번개가 크게 쳤다. 폭우인가, 희정아 기분은 괜찮니, 엄마한테 전화 한 번 해볼까, 내가 말을 했으나 희정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나는 집에서 오들오들 떨며 있었다. 불을 어떻게 때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달 전 내가 구들장 공사를 했다. 어머니 몸에 더 훈훈할 것 같아서 나무를 때어 불을 피우기로 했다. 심사가 틀어진 희정이가 마트에서 있었던 일을 지 엄마에게 격분한 목소리로 알렸다. 나는 둘을 방에 두고 창고로 가서 뗄감이 있는지 보았다. 이번 겨울 혼자 있으면서 불을 거의 떼지 않아 나무가 별로 없었다. 없는 와중에 폭우가 덮쳐 창고 안의 나무를 다 적시고 있었다.

  그럼 뭘 태워야 하지.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창고 안을 더 뒤적이다가 어쩔 수 없이 마당으로 나갔다. 지금 연탄이라도 좀 사러 나가봐야 하나. 비닐 하우스에 고양이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큰 비가 내리면 녀석들은 어김없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밥이라도 더 부어주려는 마음으로 비닐 하우스로 갔다. 비닐 하우스 안에서 고양이들이 범상치 않게 앙칼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빗소리를 뚫고 나올 정도로 날카로웠지만 뿌옇게 성애 낀 하우스 벽 때문에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재촉해서 하우스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아이였다. 목에 줄이 묶인 동남아 아이가 살아나서, 살아있는 고양이 한마리를 잡아 찢고 있었다. 아이는 고양이 목을 팔꿈치로 눌러 숨통을 막고 가죽이 찢긴 자리로 손을 넣고 있었다. 아이가 끄집어낸건 시뻘건 덩이리들이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아이 쪽을 향해 털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나 감히 다가가는 고양이는 없었다. 내가 문을 활짝 열고 여자 아이쪽으로 갔다. 놀라 고양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물러났다. 아이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고양이 배에서 꺼낸 고깃덩어리를 먹고 있었다. 나는 말리려고 다가서다가 흠칫하고 멈췄다. 아이가 먹고 있는 것이 그저 창자거나 간 쯤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은 거의 다 자란 새끼 고양이 태아였다.

  아이는 나를 의식하지 못하고 윽윽 괴성을 내며 억지로 태아를 뜯었다. 가만 보니 한마리 째가 아니었다. 그 옆에 이미 뜯긴 다른 태아가 있었다. 나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다가, 결국 하우스 사이에 세워두었던 PVC파이프를 잡고 아이에게 휘둘렀다. 아이는 뭐가 날아오는 지도 모르는 채 맞으면서 계속 먹었다. 나는 파이프를 손에서 놓쳤다. 아이의 찢긴 머리에서 흐른 피가 얼굴을 덮었다. 나는 달려가서 발로 아이를 밟았다. 고양이소리와 빗소리와 내 기합소리가 섞였다. 꼭 비맞은 듯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발길질을 멈췄다. 피투성이가 된 여자 아이가 흙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고양이 울음 소리가 어느샌가 들리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빗소리가 세상의 다른 모든 소리를 덮고 있었다.


***


  세시간 뒤, 나, 조카, 누나가 차례대로 샤워를 했다. 방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야 이거 황토 구들이 좋긴 하구나, 아파트보다 더 좋은 거 같아. 이거 오래가지? 

  샤워를 막 끝내고 거실로 나온 누나가 말했다. 우리는 티비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조카는 새로 사온 쥐가 담긴 사육통을 옆에 두고 귀엽다며 계속 보았다. 비도 오고 좋지 않은 일도 있었는데,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누나, 학교에서 농촌체험 활동 오는 거, 여기로 와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어르신들한테 말씀드려놨어.

  -그래, 잘 됐어. 그렇잖아도 여기 아니면 다른 데 알아보기 귀찮았는데.

  우리는 소주를 좀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희정이는 술을 마시다가, 할머니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울적해 하기도 했다. 

  - 집도 이렇게 따뜻하고, 꼭 할머니 품 같아. 근데 이거 무슨 냄새지? 할머니 냄새가 아직 나는 건가? 

  희정이는 이렇게 말하며 꼭 회색 쥐들처럼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곤 웃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각자 방으로 가서 잠들었다.


***


  나는 새벽에 두시 쯤 아궁이를 돌보러 일어났다. 아이의 뼛조각 몇몇이 부스러지다 말고 잿더미 사이에 서 있었다. 나는 불쏘시개로 조각들을 안으로 밀어박았다. 언젠가 이것들도 탈 것이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사방에 베인 것 같았다. 희정이가 할머니 냄새로 착각한 아이의 냄새였다. 다음 주중에 고구마를 넣고 불을 몇 번 때야 할 것 같았다. 썩 좋은 냄새가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남은 핏자국 위에 물을 부어 씻어내고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직 바닥에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래도 해가 뜨기 전엔 장에 가서 뗄감을 좀 가져와야 할 것 같았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들어가는 길에 햄스터 사육장을 들여다 보았다. 햄스터들이 톱밥위에서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나는 거실 불을 켰다. 밝은 빛 아래서 사육장 뚜껑을 열고 들여다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햄스터 두마리 모두, 머릿가죽이 벗겨진 채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었다. 

  내 소리를 듣고 방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희정이었다. 

  -삼촌, 왜 그래?

  - 안 자고 있었어?

  -응. 아니, 자다가 휴대폰 좀 봤어. 왜?

  희정이는 내 쪽을 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사육장을 발견했다. 

  - 뭐야? 이게 뭐야?

  나는 뭐라 설명해야 할 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희정이가 시뻘건 햄스터 시체를 알아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비가 그치고 고요한 새벽이었던 탓에 소리가 바깥까지 잘 퍼졌다. 근처에 있던 고양이들이 뒤따라서 울었다.

하우스에서 들었던 그 날카로운 소리였다. 사방에서 고양이들이 털이 곤두선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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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미안하다 읽고싶었는데 길어서 걍 내렸어 대신 보팅은 줄께

하이 방가 인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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