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냥 버리질 못하니
설에 시댁에서 무를 대여섯 개가 받아 왔었다.
냉장고에도 먹던 월동무가 있었다.
받아 온 무는, 여러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은 탓에
뒷 베란다에 던져 두고는 잊고 있었다.
냉장고에 남은 무를 그럭저럭 다 먹고 나서
며칠 전에 아들녀석이 콩나물국을 끓여달라 하기에
뒷베란다에 던져 놓은 무 봉지에서 무 하나를 꺼내왔다.
설 지난 지도 한 달이 넘었고,
그 사이 큰 추위는 물러갔고,
어느 덧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이 왔으니,
무라고 멀쩡할 리는 없다.
짐작대로 무를 잘라보니 바람이 들어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무의 대가리부분은 싹이 쏙 나서 꽃망울을 만들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구멍이 적은 바깥쪽 부분을 잘라 국에 넣고
나머지는 음식물쓰레기 봉투로 직행....
싹이 난 대가리 부분도.... 음식물 쓰레기 봉투로....쓩....
던졌는데......
꽃망울이 나를 쳐다보고 울려고 한다.
나.... 꽃봉오린데.... 징짜 버릴꼬야?? 흑흑흑....
에휴... 알았어....
당근이는 다시 무대가리...아니고 꽃봉오리를 음식물쓰레기봉투에서 꺼내서
이빠진 그릇에 물을 담아 어디 한 번 꽃 피워봐라...고 씽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놓곤 또 이래저래 바빴던지라 이 아이를 잊어먹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설거지통 앞에 서니 시들시들 다 죽어가고 있다.
에구.....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인생 쓴맛만 보고 있는 춘자 때문인지.......
아니면 있는 힘 다 쥐어짜내면서 교실에서 버티고 있는 아들 때문인지.....
미안하다... 급히 물을 채워 주었는데 한 이틀동안 생기없이 축 쳐져 있더니
어제 저녁에 보니 기운을 차려서 꽃망울을 꼿꼿이 쳐들고 있다....
그래... 니도 꽃인데, 씨앗은 못 만들더라도,
끝장엔 버려질 값이라도, 꽃 한 번 피워봐라...
꽃봉어리의 의지를 본 당근이는 이 아이를 씽크대에서 볕 듬뿍 받는 거실 화분들 사이에 놓아 주었다.
아마도 2016년 즈음...
금귤이 많이 나오는 철이었다.
당근이 딸램은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데, 금귤도 역시 좋아한다.
한살림 금귤은 마트에서 산 것보다 훨신 싱싱하고 달고 향도 좋다.
당근이와 딸램은(아들녀석은 사과만 먹음) 앉은 자리에서 한 봉다리를 다 먹고
씨앗만 수북하게 남았다.
엉뚱한 짓을 한 번 씩 해 줘야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당근이가
또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씨앗 여남은 개를 들고 흙만 담긴 빈 화분에다 씨앗들을 묻었다.
야들아... 여기서 싹이 나올까 안 나올까? 한 번 심어보자.."
그래놓고는 새해가 되고, 늦봄이 되어서
베란다 청소나 할까 싶어 베란다로 나갔는데
씨앗 묻었던 자리에 소복하게 금귤 싹이 났다.
알고 보니, 남편이 미리 알고 있었고, 물도 주고 있었단다.
이런 과묵한 남편같으니라고!!!
금귤 싹은 무럭무럭은 아니고, 더디지만 분명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걱정이 되는 것이다.
정말 싹이 날까, 싶어 열개 가까운 씨앗을 한 자리에 묻었던 탓에
싹도 한 자리에 소복하게 자라고 있어서
서로 부대끼며 자랄 걸 생각하니 일찌감치 옮겨 심어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남편더러 다른 화분에 하나씩 심어 달라고 몇 달 졸랐는데 도통 하지를 않았다.
까짓거, 그럼 내가 하지...
그리하여 2월 중순쯤...당근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뿌리 다치치 않게 몇 뿌리는 작은 화분에 옮겨 심고,
몇 뿌리는 원래 화분에 널찍하게 자리잡게 위치만 옮겨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옮겨 심은 금귤묘목은
뭐가 잘못됐는지, 대부분 말라 죽고
원래 화분에서 자리만 옮겨 준 두 개와
작은 화분에 심은 한 개만 살아남았다.
거실에 다른 화분들 사이에 잇는 금귤 묘목이
방금 보니, 연두색 새 잎을 피워올렸다.
아이, 이쁜 것...................!!
이렇게 살아서 새잎을 피워주니 고맙다.
집에 식물을 많이 키우고 싶었는데, 화원에 갈 일 하나 덜어주어서 고맙다..ㅋㅋ
장난으로, 호기심에 심었으나, 장난이 아니라며 싹을 틔운 금귤 씨앗에게
장난으로 심어서 미안하다고.... 그러나 너네들 장난 아니게 잘 기르겠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얘들아, 나 장난 아니거등?? 너희들 잘 키워 줄게...
그러니까, 너네들도 장난 아니게 잘 자라서
장난아니게 금귤도 쫌 선사해 주겠뉘??
미세먼지로 시야도 뿌옇고, 기분도 뿌연 일요일입니다.
스팀시세도 뿌옇다고................ㅠㅠ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무싹도 물을 주니 다시 살아나고
장난으로 심어 본 금귤 씨앗도, 나는 장난이 아니라며 당당하게 싹을 틔워
새잎을 피워올렸네요..
스티미언들의 열망, 스팀시세도 곧.... 머지않아 곧.... 살아날 겁니다.
암요............살아나기만 합니까?? 재크의 콩나무처럼 하늘까지 솟아날 겁니다.
모두 즐겁게 일요일 오후시간 보내세요!!
와 대박!!저희도 아이보여주려 토마토 씨앗을 뿌려 새싹부터 슬금슬금 키가 커지더니 열매를 못맺고 가버렸네요ㅠ 다른분들보면 토마토는 쉽게 키우시던데 ㅋ 언제고 다시 도전해야겠네요~
토마토가 의외로 키우기 까다로울 거예요.. 순도 따 줘야 하고.. 볕이 적으면 웃자라기도 하고요...ㅎㅎ
그래도 쑥쑥 자라는 거 보는 재미가 참 좋지요..
언제 다시 도전해 보세요...^^
우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전 식물하고는 사이좋게 못 지내는것 같아요 ㅜㅜ 동물하고는 대화도 가능한데 말이죠 ㅋㅋ
에빵님..
사이좋게 잘 지내는 아이들하고 사이좋게 지내시면 되지요...ㅎㅎ
우중충한 얘기들 뿐인데 새싹을 보니 마음이 좋아집니다 ^^
요즘 좀 그렇죠.....??
스팀이 계속 고꾸라지고 있어서 다들 예민하신 것 같아요..ㅜㅜ
멀법사님 마법 좀 써 보세요... 아직 거기까진 안 되시나요....힝힝 ^^
식물이 잘 자라는 집에서
사람도 잘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요
당근님 댁에 행복이 가득 찾아왔네요^-^
맞아요...사람이 잘 되는 집인 것 같아요....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ㅋㅋㅋㅋ
결국 사람도 식물과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잘난 척 해봐야....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요....ㅎㅎ
뭔가 희망적인 글이예요 >_<
새싹은 언제나 희망을 상징하지요
아이들도 자라고 금귤도 무도 스팀시세(?)도 자라서 모ㅡ두가 행복해지는 봄이 되길바래요♡
무엇보다... 스팀이 하늘을 향해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며
오늘도 이 아이들에게 물을 줍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군요^^ 언니 멋져요~ 생명이란 것은 참 신기? 신비한 것 같습니다. 싹을 틔운 것도 정말 대단해요! 남편 분께 박수를!!!!ㅎㅎ
그리고 공감되는 게 있어요!ㅎㅎ 왜 쌍둥이들은 한 배에서 같이 나와놓고 먹는 식성이 그렇게나 다를까요~ 저도 과일 줄 때 두 종류를 놓고 1호는 사과만 먹고 2호는 귤만 먹은 적도 있어요~ 참 희한해요~ 엄마는 번거롭구요~~~~하하
아하하하하
동시에 생겨서 동시에 태어난 것 외에는 정말 다 다르죠...
쌍둥이로 묶어 하나로 생각하지 말라는 저희들 나름의 표현이 아닐까요...ㅎㅎㅎ
저 무순 사진을 보니
저도 무 대가리를 버리지 못하고
접시에 담아 순을 기릅니다.
꽃이 맺히는 걸 보며
애끓는 모성애를 생각하며
한동안 먹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소소한 일상
감사합니다.
오늘 보니 꽃대궁이 쑥 자라서 꽃이 피었어요..ㅎ
노랑색 꽃이 필 줄 알았는데 흰색 꽃이 피었답니다..
jjy님 무싹도 꽃대궁을 올리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어디 빈 땅이 있으면 심어볼까...싶은데
요즈음의 제가 그다지 한가하지를 못해서 어떡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