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 - by 빌 브라이슨

in #kr-book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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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지식 + 건강 상식 + 재미


자신이 공부한 과학적 지식을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는 빌 브라이슨을 따를 자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의 수필이나 여행기보다도 과학 쪽 비소설을 더 좋아한다. 지난 번에 읽었던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번 책도 망설임없이 선택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이 두꺼운 책은 제목에 걸맞게 우리 몸 구석구석에 대해 제대로 알려준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있는 몸을 어떻게 하면 더 잘 가꾸고, 더 잘이해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도 가르쳐준다.

소소한 생물학적 지식에서부터,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한 상식, 질병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이 빼곡히 들어있고, 거기에 더불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철학, 세상에 대한 애정도 듬뿍 담겨있다. 물론 재미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힌다.)



출처: 교보문고
한국어판 표지. 영어 원서 표지를 대체적으로 흉내냈다. 깔끔하긴 한데, 제목을 그대로 옮긴 <바디>가 좀 마음에 걸린다. 제목을 좀더 고민했으면 좋았을 걸.


남들이 말 안 하는 걸 말하는 용기 - 인종, 여성, 저평가된 인물들


이 책이 특별히 더 좋았던 것은 바로 남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것들을 콕 꼬집어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자체의 내용도 훌륭하고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남들이 말하지 않는 문제를 언급하는 용기를 너무나 칭찬해주고 싶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다. 그건 책 표지에서부터 나타난다. 대개 인체 해부도 그림은 남성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서에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보인다. 그뿐인가. 남자 해부도의 경우 피부색이 어둡다. 그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바디"가 백인 남성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남녀 모두, 모든 인종의 "바디"를 다 아우르고 있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도 색을 나타내는 우리 피부가 얼마나 얇은 한겹인지, 그 한겹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동양인(몽골인)에 대한 차별의식 때문에 새로 발견된 바이러스에 '몽골'이라는 이름을 넣었던 사례도 굳이 언급하는 걸 보면, 인종 문제에 대해 좀더 각성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인종 문제뿐 아니라 여성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해 의학계가 얼마나 무지하고 등한시했지. 일례로 새로 신약을 개발할 경우 임상 테스트를 거의 남성들만을 상대로 해왔었다는 걸 알려준다. 어떤 약의 경우는 남성들에게는 무해하나, 여성들에게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돼어 결국 시장에서 사라졌는데, 그러기까지 무려 십년이 넘게 계속 팔리기도 했었다. 남자와 여자의 몸은 매우 다르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다.

또한 지금까지 학계에서 저평가되었거나 무시된 이들을 조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단한 발견을 했지만 지도교수에게 업적을 빼앗겨버린 대학원생이랄지,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못받고 사라졌지만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 등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출처: Goodreads
영어 원서 표지. 남자와 여자, 밝은 피부와 어두운 색 피부를 가진 사람의 해부도를 보여주고 있다.


남들이 말 안 하는 걸 말하는 용기 - 일본의 생체실험 만행, 잘못된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의문, 약물 오남용 문제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놀란 것은 일본의 인체 실험 만행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벌어진 인체 실험은 많이 알려졌지만 일본의 만행은 ('731 부대'라는 것까지 확실히 명시하면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더군다나 패전국으로서 당시 만행을 저지른 지도부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까지 콕 찝어 서술하고 있다.

의사들에 대한 제약회사의 전방위적인 로비, 과도하게 비싼 의료비/치료비 등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도 제시하고 있고, 미국의 약물 남용과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미국 인구가 세계에서 4%에 불과한데, 미국인의 오피오이드 사용량이 전체의 80%란다.)


이 책은 집에 한 권 놔두고,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들춰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생물학적 지식과 건강에 대한 상식이 궁금한 사람들 뿐 아니라,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강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를 깨우는 말들


1.

You have a meter of it packed into every cell, and so many cells that if you formed all the DNA in your body into a single strand, it would stretch ten billion miles, to beyond Pluto. Think of it: there is enough of you to leave the solar system. You are in the most literal sense cosmic. (p. 5)

세포 하나마다 1미터의 DNA가 들어 있고, 우리 몸에는 수많은 세포가 있다. 만일 우리 몸에 있는 모든 DNA를 일렬로 세운다면, 백억마일, 그러니까 명왕성 너머까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의 몸에는 이 태양계를 넘어설 수 있을만큼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우주적'인 존재들이다.


2.

Just sitting quietly, doing nothing at all, your brain churns through more information in thirty seconds than the Hubble Space Telescope has processed in thirty years. (p. 49)

그저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당신의 두뇌가 30초 동안 처리하는 정보들이 허블 우주 망원경이 30년 동안 처리한 정보들보다 더 많다.


3.

The leading cause of deaths among teenagers is accidents—and the leading cause of accidents is simply being with other teenagers. When more than one teenager is in a car, for instance, the risk of an accident multiplies by 400 percent. (p. 63).

십대들의 주요 사망 원인은 사고사다. 사고사의 주요 원인은 그저 다른 십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한 명 이상의 십대가 함께 차를 타고 있으면 사고가 날 확률이 400% 이상 증가한다.


4.

It is pretty impressive that cartilage lasts as well as it does, especially when you consider that it cannot repair or replenish itself. Think of how many pairs of shoes you have worn out in your life, and you begin to appreciate just how durable your cartilage is. (p. 171).

연골이 치료되거나 재생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연골이 그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인상적인 일이다.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신발이 닳아없어지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면 우리 몸의 연골이 얼마나 튼튼한지 깨달을 것이다.


5.

Until recent times, no other animal on Earth was more likely to die in childbirth than a human, and perhaps none even now suffers as much. (p. 178).

최근까지 지구상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출산 중 사망률이 높진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간만큼 출산 시 고통받는 동물도 없을 거다.


6.

The fact is, you can quickly undo a lot of exercise by eating a lot of food, and most of us do. (p. 182).

실제로는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도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소용이 없어지는데,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


7.

sneeze droplets can travel up to eight meters and drift in suspension in the air for ten minutes before gently settling onto nearby surfaces. (p. 214).

재채기를 하면 그 비말은 8m까지도 날아가고, 근처 표면에 가라앉을 때까지 공중에 10분 동안이나 떠 있을 수 있다.


8.

Cooking frees up a lot of time for us. Other primates spend as many as seven hours a day just chewing. We don’t need to eat constantly to ensure our survival. Our tragedy, of course, is that we eat more or less constantly anyway. (p. 230).

요리를 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유 시간이 많이 생겼다. 다른 영장류들은 음식을 (소화될 수 있도록) 씹는데 하루에 7시간 까지도 소요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먹을 필요도 없다. 물론 우리의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먹고 있다는 데 있다.


9.

“Trans fats are essentially a form of slow-acting poison.” (p. 237)

"트랜스 지방은 기본적으로 서서히 작동하는 독이다."


10.

we are born with the bodies of hunter-gatherers but pass our lives as couch potatoes. (p. 332).

우리는 수렵-채집가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쇼파에서 뒹굴며 삶을 보내고 있다.


제목: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원서 제목: The Body: A Guide For Occupants
출판사: 까치
옮긴이: 이한음
저자: 빌 브라이슨 (Bill Br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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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구절이 브리님과 많이 겹쳐요. ^^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과 사회학이 잘 섞인 책 정말 좋죠. kr-book 태그에 꾸준히 올리시는 모습에 자극 받습니다. 건강하세요 브리님!

역시 좋은 책은 다 알아보죠. ^^
레일라님도 독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만큼 많이 읽으시잖아요.
권태에 빠지지 않는 책과 영화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저도 최근에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저는 이책이랑 우리 몸 보고서를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이렇게 재미있게 배웠다면 학교 생물 시간도 지루하진 않았을 거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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