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한국 학계
셀럽 몇 명과 전문가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티비토론을 했나보다. 그런 토론이 긴급하게 편성된다는 것 자체가, 비트코인이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누가 비트코인의 전문가인가. 그런 질문이야말로 유치하다. 비트코인에 대한 논의를 구성하는 구조 자체가 중층적이다.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기술적 요소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둘러싼 산업적 측면들, 그리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경제적 측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트코인으로 생각해보는 국가와 개인이라는 철학적 측면까지, 이 어느 한 측면도 중요하지 않은 건 없다. 이 말은 비트코인에 대한 전문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두가 각자 연구했거나 혹은 생각하던 각도에서 비트코인을 바라보고 논의를 할 수 있다. 거기에 무슨 자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경제학 전문가들과 엔지니어들 중 별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들이 전문성을 제기하며 토론 자체를 가로막는다. 그럼 너희들은 앞으로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마라. 전문성으로 따지자면 과학보다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가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비트코인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려면, 국내 학계의 논의를 보면 될 것이다.
그럼 한국 학계를 살펴보자. 한국 학계는 이미 몇 년전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논의가 엄청나게 활발했다. 검색은 한국교육학술정보을 사용했다. 2018년 1월 18일 현재, 검색어 '비트코인'으로 검색되는 논문은 총 1,815건이다. 이 중 학위논문은 201건인데, 비트코인을 진짜 다룬 논문은 약 30여 편 정도로 보인다. 가장 먼저 출판된 논문은 Jiㄷ Wu의 충남대학교 석사학위 논문으로 2014년에 출판되었다. 논문 제목은 비트코인의 경제학적 분석 : 구매력평가 환율을 중심으로다. 2017년에 들어 점점 더 많은 학위 논문이 등장하고 있는데, 가장 많은 학위논문은 제출한 대학은 연세대학교다.
다음, 국내학술지 논문을 보면, 186건의 검색결과 중 사토시가 비트코인 논문을 출판한 2008년 이후로 좁히면 약 120편 정도의 논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가장 먼저 이 용어를 사용해 논문을 작성한건 엔지니어로 보이는데, 블록 암호 HIGHT를 위한 암·복호화기 코어 설계라는 제목으로 손승일이 한국정보통신학회논문지에 제출한 2012년의 논문이다. 즉, 국내 학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받아들인건 엔지니어와 IT업계라는 뜻이다. 이후 비트코인이 보고서에 종종 등장하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다. 비트코인의 경제학적 분석 : 구매력평가 환율을 중심으로, 주간금융브리프 (2013); 국제금융 이슈 : 비트코인 사용 확산과 미국 감독당국의 대응, 주간금융브리프 (2013) 등이다. 즉, 경제학계나 금융기관에서 IT업계 다음에 비트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후 2014년이 되면 경영학회에서 출판한 첫 논문이 등장한다. 비트코인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전주용, 여은정이 경영교육연구에 출판한 논문이다. 이후 경제학계와 IT학계에서 비트코인이 지속적인 학술 주제로 다루어진다. 경제학계는 주로 금융과 관련된 영향과 규제 혹은 정책에 대한 논의에 집중했고, IT학계는 어떻게 이 기술을 세상에 적용할지를 고민한다. 2017년이 되서야 법학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그 논의의 핵심은 당연히 규제다. 예를 들어 고재종이 <경제법연구>에 실은 비트코인의 규제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 - 우리나라와 일본법을 중심으로 -가 대표적이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학계의 논의는, 적어도 서로 다른 학문체계들이 새로운 기술적 혁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검증하는 좋은 사례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면, 가장먼저 해당 기술에 대한 기예에서의 전문가들, 즉 엔지니어 혹은 과학자들이 그 기술을 검증하고 확장하고 적용하기 위해 움직이다. 태생적으로 과학기술은 유행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5년만 지나도 지식이 쓸모 없어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들, 즉 해당 기술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생기는 문제를 다루는 학문들이 움직인다. 사회학, 경제학, 정책학, 행정학 등이다. 이 학문들은 기술의 세세한 디테일보다는, 기술의 사회적 효과에 관심이 많다. 과학기술자들이 기술이라는 체계 내부에서의 확장에 관심이 많다면, 이들은 기술의 사회적 적용과 교류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법학이 온다. 법은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 잡아 본 적이 없다. 사회가 움직이면 법학이 이를 감지하고 천천히 변화를 준비한다. 법이란 언제나 느리고 신중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문학이 온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면 나는 법이니 말이다.
내가 경험한 한국 인문학계는 유행에 아주 민감하다. 인문학이란 유행보다는 학문의 완결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한국 인문학계는 칸트보다 지젝에 관심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에 흥미가 없는 건지, 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아직까지 인문학자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논의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나마 비트코인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논문은 전명산이 <적정기술>에 2018년 실었는데 제목은 비트코인: 신뢰공학의 탄생으로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전명산은 사회학을 전공한 인물로 최근 블록체인 거버먼트라는 책을 저술했고, 국내에서 블록체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뢰공학이라는 말은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가 2015년 8월 칼럼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한다. 전명산은 이 책을 포함 두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다른 한권은 국가에서 마을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커뮤니케이션 구조 변화에 대하여라는 제목이다. 그는 IT업계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오래전부터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인문학을 구상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신뢰공학에 대한 견해를 옮기며 마친다.
"필자가 블록체인을 신뢰공학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은 신뢰를 제공하는 방법론이 단지 블록체인과 같은 구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란 가시적 산물을 제외하고는 신뢰공학은 아직 미지의 영역에 있지만, 블록체인을 뛰어넘어 신뢰를 구축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탐색하는 학문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신뢰를 제공하는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이제서야 정말 인문학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열렸다고 보는데... 그들은 정작 관심이 없네요. @홍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