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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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씩 세간살이를 쌌다 풀었다. 원룸에서 원룸으로,
이번엔 멀리 바다를 건너 제주로 이사를 하며 하나둘 사라져간,
쌓아두고 간직하는 게 짐스러워져서 마지막으로 큰마음 먹고 버린 것 중 하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모아온 편지 상자다.
친구와 돌려쓰던 교환일기, 공책 한 장을 쭉 찢어 보낸 딱지 모양으로 접은 쪽지,
우표가 붙은 편지, 생일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등등
편지를 받은 나이도, 보낸 이도 모두 다른채 한데 섞여 있는 편지들을
풀썩 눌러앉아 하나하나 펼쳐 읽어봤다.
위로, 응원, 사과, 축하. 사소하지만, 나를 지탱해준 이야기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고 편지를 보낸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버리나 싶었다.
그러다 곧, 어지러운 짐 사이 과거의 추억에 눌러 앉아있는 내 모습이 부질없어 보였다.
추억과 기억, 행복하고 소소했던 일들을 짐처럼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니.
반짝반짝한 기억은 마음에 담고, 미련 없이 버렸다.
나의 과거와 추억을 다 버린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하는데
그럴 땐 친구에게 문자라도 보내기로 했다.
추억과 마음은, 이렇게 이어가면 된다.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을 들춰 볼 수 있는 손에 잡히는 편지 같은 게 남았으면 좋겠어요.
제주로 내려오며 오랜 시간의 편지를 미련 없이 버리고 왔는데,
또 다시 편지라니.
손에 잡히는 것,
단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담긴 긴 이야기.
우리는 또 현재의 시간 속에서 편지를 남길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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