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민족과 민족주의 - 어네스트 겔너가 말하는 민족주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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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 대한민국 사람, 한민족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물론 한민족(韓民族)으로 정의할 때에는 북한까지 포함하게 되는 문제가 있어 어감의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원래 nationalism은 민족주의로도, 국가주의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국가주의라는 용어는 생소하다.

민족주의는 근대, 특히 서구 근대화의 산물이다. 현존하는 모든 민족주의는 모두 서구 근대화의 직간접적인 산물이다. 이 지점에 상당한 충격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민족이란 역사와 혈통에 의해 수천 년을 지속하며 형성된 것인데 이게 근대 이후에 생긴 것이라니…. 이런 통념이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이게 진실이다. 우리가 느끼는 민족적 일체감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있지 않았다. 우리를 한민족으로 각성시킨 것은 일본이다. 

거짓말 같으면 상상을 해보라. 조선 말의 노비가 양반에게 “당신과 나는 공동의 역사와 혈통,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의 운명체에 속해 있다.” 이런 말을 한다면 노비는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근대 이전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공유하는 역사적-문화적 실체로서의 민족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산업화-근대화한 일본에 조선인이 노출되었을 때, 드디어 한민족이 탄생했다. 책의 저자 어네스트 겔너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정치 단위와 문화 단위를 일치시키려는 움직임이다. 여기서 문화란 지역적으로 분절되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완전히 일체화한 토착 민속문화가 아니다. 문자를 통해 전승되고, 일정한 체계를 갖춘 고도문화다. 그리고 그 문화의 가장 큰 요인은 언어다. 일제에 자극을 받아 문자로서 한글을 고도화하고, 문화를 수집하고, 단군과 같은 신화를 재발견하고, 역사를 체계화하여 일본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진 한국인과 한국 문화가 나타난 것은 근대 이후 일제 강점기다. 이 행위를 주도한 것은 일본 식민지 정치와 경제에서 소외된 식민지 지식인이다. 즉, 일제 강점기 일각의 조선인 선각자들과 엘리트들이 한국 지역문화를 고도문화화하여 만들어낸 것이 한국 민족주의다.

 

여기에 겔너가 말하는 민족주의의 본질이 나타난다.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가 잉태된 후,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문화에 동화하기 힘든 정치적-지리적-문화적 차이에 의해 차별받을 때 일각의 피지배자가 토착 문화를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탄생한다. 오스트리아 치하의 이탈리아, 프랑스 치하의 독일의 군소 국가들이 이런 식으로 근대 민족국가를 만들었다. 서방 식민주의에 노출된 비서방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게 민족주의 국가를 건설하거나, 건설 중이다. 민족으로 각성하지 못한 ethnic group은 지배 문화에 동화되었거나 동화중이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유동적이면서 평등한 근대적 사회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유동적이며 평등하지만 거세된 근대인이 충성할 수 있는 마지막 대상은 그들의 문화다. 근대 국가 안에 사는 사람을 묶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가 무엇이겠는가. 문화다. 동네별로 다른 풍속이 아니라 문자로 전달되고, 보통교육을 통해 공유하고, 근대적 대중 전달 매체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전달되는 그런 고도문화다. 근대세계에서 혈통, 종교가 아니라 문화가 최고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언어다. 따라서 국가는 문화가 필요로 하고 문화는 그가 미치는 영역을 결정해주는 요소로서 국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문화란 내 고용 가능성과 존엄성이 미치는 한계다. 우리는 한국 문화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즉 한국어, 한국인의 관습과 제도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직업을 찾기 힘들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된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숨 쉴 수 있는 국제주의자는 생각보다 드물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사랑한다.

 

한국인은 행운아다. 비교적 거대하면서 조밀하게 거주하고 있는 인구, 근대 이전에도 잘 정리된 역사와 독자적인 문자, 비교적 중앙집권적이었던 근대 이전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지배 엘리트가 한국의 독자적인 고도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인도네시아를 보라. 이 나라 설립의 기초는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험과 식민지기구를 공유한다는 것뿐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치하에서 관료로 일했던 식민지 엘리트가 급히 만든 나라다. 갑자기 찾아온 독립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기구를 경험했던 일부 엘리트를 제외하고 공통의 경험이 전혀 없는 수많은 부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런 나라는 고도문화의 기초인 언어와 문자를 통일하는 것부터 난제가 된다. 국경과 문화를 일치시켜 민족국가(혹은 국민국가)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선전·선동과 조작, 강압을 사용하더라도 쉽지 않다. 이런 나라는 민족적으로 각성하여 독립 국가를 형성하려는 다양한 집단과 다양한 하위문화에 충성하는 사람들 때문에 최선의 생산력을 내는 것도 힘들다. 인도도 네덜란드를 영국으로 바꾸면 비슷한 상황이다.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라가 생각보다 많다. 근대 국민국가를 비교적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 엄청난 행운이다. 한국, 일본, 중국의 신속한 산업화도 이와 떼 놓을 수 없다.

 

민족주의는 강력하다. 근대 산업사회에 유일하게 남은 공감대인 문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문화의 수호자가 된다. 국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문화를 수호하는 보통교육을 유지하고 매체를 독점하는 데 사용한다. 계급이라는 마르크시즘적 지위도 피지배와 지배 사이에 문화적 차이가 없다면 폭발력을 상실한다. 근대 산업화가 민족주의를 만들었지만, 이후에는 서로를 강화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민족국가는 오래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을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특히 정보-통신-연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사회에 충격을 줄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결국 산업혁명이 민족주의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에 준하는 어떤 생산과 기술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민족주의는 다른 무언가로 바뀌는 것일까? 이 책을 집어든 이유중 하나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자면, 만약 민족주의가 약화하거나 다른 무언가로 변화하려면 각 국가의 ‘고급 문화’를 상쇄할 어떤 것이 필요하다. 언어장벽을 무력화하고, 관습의 차이를 최소화하며, 국경을 넘는 직업활동과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할 어떤 기술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국제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실시간으로 통역이 가능한 기술, 국제적인 통화, 기술에 따른 국제적 분업이 상식이 된다면 민족주의의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인류는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위 글과 다른 글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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