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숙명은





우리의 숙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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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피로가 덜 풀렸는지 새해 둘째 날인 일요일은 잠으로 범벅이 되었다. 10대 때부터 매년 12월 31일은 1년 동안 썼던 일기를 전부 읽어보는 시간을 꼭 가지는데 2021년 일기들은 정말로 완독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시점에서 지난 해를 덩어리로 감지해보면 '그래, 열심히 살았지' 싶은데, 하루하루 치열하게 쓴 일기를 다시 보니 이런 일정과 긴장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려고 애쓴 흔적들이 역력했다. 물론 힘든 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있어서 잘 버텼지만 다시 살아보라고 하면 절대 다시 살아볼 수 없을 한 해인 걸로 결론을 내렸다. 휴!


1월 1일. 년도가 바뀌어서인지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당일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잘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에 잠이 깼다. 일출을 볼 계획은 없었지만 이왕 눈이 떠진 김에 엄마와 집 앞에서 타오르는 해를 보고 왔다. 일찍 깬 잠을 보충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들떠 눈이 감아지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막혔던 왼쪽 귀가 공연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해가 꼭 그러했으면 좋겠다. 막혔던 것들이 조금씩 뚫리는 해. 결국은 뚫고 나아가는 해. 아, 맞다. 지난 번에는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결국 뚫어버리자는 것은 또 너무 애쓰자는 말인가. 그렇다면 감당 가능한 노력 끝에 약간의 운이 더해져 조금은 쉽게 뚫렸으면 좋겠다. 그리 바람이라도 가져본다.


이른 점심을 먹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나름 나에게 주는 선물이니 스스로를 대접하는 기분으로 좋은 옷을 입고 그동안 눈 위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하지 않았던 눈 화장도 조금 올려보았다. 옆 좌석 사람들이 머리가 아플까봐 향수를 뿌리는 것은 그만 두었다. 공연장에 가니 옆에 앉은 여자들이 전부 진한 향수를 뿌리고 와서 최종적으로는 내가 가장 많이 어지러웠지만, 나라도 맨 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월 1일의 햇살은 정말 따스했다. 연인과 가족 관람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와중에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티켓을 수령하고 공연 시작 30분 전에 입장이 이루어졌다. 무대의 장막에는 푸른 빛이, 관객석에는 노란 빛이 퍼지고 있었다.


오후 2시. 불빛이 꺼지고 너무나 익숙한 서곡(Ouverture)이 들려왔다. 내 자리는 왼쪽 편 맨 앞에서 두 번째 줄이다. 예매를 하고서 찾아보니 극 중 시인이자 해설가인 그랭구아르(Gringoire)가 주로 왼쪽에서 많이 등장하여 왼쪽을 '그랭구아르 좌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불이 밝혀지고 무대 위에 누워있던 그랭구아르가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 앞에 배우가 있으니 10년을 기다려왔던 공연을 보고 있다는 게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내가 본 타임에는 존 아이젠(John Eyzen)이 그랭구아르 역을 맡았다. 그의 노래에 맞춰 장막이 올라가고 노트르담 성당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으로 볼 때도 이 장면에서 늘 전율을 느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울컥해서 심장에 손을 올리고 봤다. 무대가 꽤 가까워 배우와 눈이 마주쳤는데 환하고 능청스러운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많은 유명한 곡들도 좋아하지만 신부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향한 정념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의 갈등을 독백으로 토해내는 '파멸의 길로 나를(Tu vas me detruire)'이라는 곡을 참 좋아한다. 초연 배우인 다니엘 라부아(Daniel Lavoie)의 연기가 궁금했긴 했지만 내가 본 타임에 연기했던 솔랄(Solal)도 번뇌하는 프롤로 역을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해서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곡 사이에 쉬는 텀 없이 빠르게 전개되고 1막과 2막 사이의 인터미션 시간도 10분 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뮤지컬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게 지나갔다. 결국 나는 인생에 언젠가는 이 뮤지컬을 볼 운명이었다. 나중에 소중한 사람들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Cast

콰지모도(Quasimodo) - 안젤로 델 베키오(Angelo Del Vecchio)
에스메랄다(Esmeralda) - 엘하이다 다니(Elhaida Dani)
프롤로(Frollo) - 솔랄(Solal)
클로팽(Clopin) - 제이(Jay)
페뷔스(Phoebus) - 지안마르코 스키아레띠(GianMarco Schiaretti)
플뢰르 드 리스(Fleur de Lys) - 엠마 르핀(Emma Le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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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아(ANArKH, Fatalite, '숙명')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작자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성벽에 쓰여있는 한 그리스어를 보고 이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다.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을 뜻하는 아나키아.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이 뮤지컬에 왜 이토록 매료되었는지 생각해보니 이야기의 다양한 요소와 상징들이 내 인생과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집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기도 하고 그 시절 내 눈에 엄마는 프롤로 사제 만큼이나 엄격하고 독재자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한껏 주눅 들어있고 사제에게 길들여져 있는 콰지모도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점점 그것을 성취해나갈 때 나는 에스메랄다였기도 했고, 엄숙하고 착한 딸과 스스로의 운명을 발현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할 때는 프롤로가 되기도 했다. 내 속에 세 인물이 모두 존재하니 이 뮤지컬이 그토록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보고 싶었던 사촌 언니를 만난 밤, 언니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더욱 단단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숙명을 이겨내는 것, 그렇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사는 것 모두 내 능력이라고. 이 악물고 하고 싶은 일들, 해야 하는 일들 다 해내는 게 단단해지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있는 것들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 굳이 애써 잡고 있는 것들이니, 우리에게 숙명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만들어진 덩어리가 아닐까 한다. 이 숙명을 어떻게 굴려봐야 하나. 아니면 이 덩어리를 가만히 두고 아름답게 가꿔야 하나. 그 또한 나의 '선택'이라니. 나의 숙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정 앞에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것 뿐이다. 에스메랄다가 그저 살기 위해 몸을 내어주지 않은 용기. 그랭구아르가 시대를 읊는 용기. 프롤로가 오랜 세월 쌓아온 종교적 신념을 저버리는 용기. 클로팽이 에스메랄다를 지키기 위해 뛰어든 용기.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뒤따라간 용기. 그 단단함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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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이겨낼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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